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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복지국가, 사회정책

3장_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1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시작 - 18세기부터 1945년까지

3장 복지체제 분석을 위한 이론과 관점

 

1절 문제제기

아날학파는 역사를 설명하는 데 어떤 단일한 원리를 거부한다. 대신 서로 상이한 요소들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관점은 아날학파를 다른 역사학파들과 구분하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한다면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 대한 연구 또한 단일한 이론적 프레임에 근거한 설명보다는 다양한 이론의 조합이 필요하다.(142)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온전히 설명하려고 한다면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과 관련된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143)

 

2절 세계체계관점,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관점

 

1. 세계체계관점

(체계system와 체제regime에 관한 설명은 148-149 참고)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란 지극히 일국적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들은 일국적 관점에 근거해 있다. 복지국가 형성과 관련된 초창기 이론인 산업화론은 복지국가가 산업화 과정에서 가족, 교회, 지역사회 등과 같은 분배를 담당하던 전통적 기제들이 해체되면서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산업화론은 복지국가의 형성을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했다. 산업화론은 일견 복지국가 형성의 원인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보편적 과정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일국적 관점을 지양하는 것처럼 보인다.(145) 그러나 산업화론이 산업화를 자본주의 체제의 보편적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산업화를 일국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산업화론은 산업화 수준이 높을수록 높은 수준의 복지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 산업화론은 개별 국가의 경제 발전 수준이 복지국가의 발전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간주한다.(146)

산업화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권력자원론과 ()제도주의 또한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일국적 차원에서 설명한다. 권력자원론은 서구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일국 내의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연대 여부 등으로 설명한다. ()제도주의도 복지국가의 성격을 비례대표제, 시장경제의 성격(조정시장경제 대 자유시장경제) 등과 같은 국민국가 내부의 문제로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세계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인식했던 마르크스주의자도 일국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146)

복지국가를 일국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복지국가를 세계체계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축적이라는 지상과제와 국민국가 내에서 사회복지를 추구하는 힘들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146) 비록 유럽의 사례(주로 영국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일국적 시스템이 아닌 세계적 시스템이며 이러한 자본주의의 세계체계적 성격은 개별 국가에서 시민의 복지와 관련되어 있다.(147)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국민국가의 분배체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다. 1980년대부터 가시화된 세계화과 국민국가의 자본에 대한 통제권을 약화시키고 시민의 생활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복지국가를 약화시켰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비벌리 실버는 복지체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노동방식이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논증하고 있다.(147)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은 한국 사회의 내부 요인만이 아닌 자본주의 세계체계라는 외부 요인과의 관계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147)

 

2. 근대세계체계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관점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일한 사회체계로 세계체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러스틴은 사회변화는 하나의 사회체계 안에서만 논의될 수 있고, 그 하나의 세계체계가 자본주의 세계체계라고 했다.(149) 또한 유일한 분석단위로서 세계체계는 분리될 수 없는 6개의 벡터들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는 국가 간 체계, 세계생산구조, 세계노동력구조, 세계 인간복지의 양상, 국가의 사회적 응집력과 지식구조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유일한 사회체계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이며 자본주의 세계체계 내에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국민국가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국민국가 단위의 정치체제는 독립된 단위가 아닌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변화는 다른 하나의 변화와 연동될 수밖에 없고, 일국의 변화조차 유일한 분석단위로서 세계체계의 변화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복지체제도 마찬가지다. 복지체제의 형성과 변화도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6개의 벡터 중 하나인 세계 인간복지의 양상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세계체계의 다른 벡터들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성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150)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대략 1450년부터 1640년까지 장기 16세기 동안 유럽에서 탄생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이후 확대 과정을 거치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세계체계로 확대되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곧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공동체를 자동적으로 포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은 자신의 세계체계관점에서 세계에 대한 정의를 했는데, 월러스틴의 세계는 페르낭 브로델의 유일한 세계(The World)가 아닌 하나의 세계(A World)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150) 세계체계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노동 분업에 포괄된 국가 및 공동체만으로 구성된 세계인 것이다. 만약 어떤 국가 또는 인간 공동체가 자본주의의 세계적 노동 분법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족적으로 생활한다면, 해당 사회는 더 이상 세계체계에 포괄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세계경제와 관계없는 고립적이고 독립적인 생존 단위를 월러스틴은 소체계로 구분했다.(151)

다른 하나는 세계경제의 구성과 관련된다. 세계체계관점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세계경제 내에서 (기축적 분업에 의해) 상이한 역할과 위계적 관계를 가진 핵심(중심), 반주변부, 주변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부는 선도산업(당시 가장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산업)이 집중된 곳으로, 고부가가치와 고이윤이 실현되는 지역이다. 주변부는 식량과 원자재와 같은 생필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핵심부가 선도산업을 통해 높은 이윤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으로 원자재와 식량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세계경제의 기축적 분업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생산과정 간의 이윤 창출의 규모와 독점화 수준을 반영한다. 중심부에서 이루어지는 생산과정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선도산업으로 독점 또는 준독점 상태에 있기 때문에 많은 이윤 확보가 가능한 반면,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생산과정은 상대적으로 한물간, 더 이상 독점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산업으로 경쟁자가 쉽게 진입할 수 있/어서 경쟁이 심해 독점이 불가능한 생산 영역이다. 세계경제의 기축적 분업은 부등가교환체계로,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창출하는 잉여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지속적으로 유입되게 한다.(151)

··· 핵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는 이미 종속이론이 제기했던 관점이다. 월러스틴의 독창성은 핵심부와 주변부로부터 구분되는 반주변부를 개념화했다는 점과 핵심주, 주변부, 반주변부 지역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반주변부는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필수적 구성요소로 핵심부와 주변부의 중간 교역집단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반주변부는 핵심부와의 관계에서는 불평등한 분업의 희생자지만, 주변부와의 관계에서는 불평등한 분업으로 이득을 얻는 지역이다. 반주변부는 중심부가 될 수도 있는데, 역사적으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패권의 변화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반주변부라는 개념이 반주변부를 핵심부와 주변부로부터 구별하는 이론적·경험적 준거 없이 쓰이고 있다는 점은 한계다.(152)

 

3. 근대세계체계에서 시간()와 패권(hegemony)의 순환

세계경제의 시간 변화(경제의 팽창과 위축)와 관련해 브로델과 월러스틴의 기본 가정은 세계경제가 45~55년 주기로 팽창과 위축을 반복한다는 콘트라티에프 순환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세계경제는 팽창과 위축을 반복했다. 그러나 팽창과 위축이 45~55년을 주기로 반복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 세계경제의 팽창과 위축을 콘트라티에프의 순환 주기로 설명하는 것은 세계경제의 팽창과 위축을 관찰과 실증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주기 자체가 동인인 것처럼 보는 신비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받는다.(152) 더욱이 월러스틴이 이야기하는 주기는 아무리 관대하게 보아도 서유럽에나 적용될 수 있고 서유럽에서조차도 주기의 시발점은 같지 않다. 조반니 아리기도 브로델이 이야기한 장기 순환과 콘트라티에프 순환 모두 상품 가격의 장기 변동에서 도출된 불확실한 이론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경험적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더 나아가 아리기는 브로델이 주장한 장기 순환과 자본주의적 축적 간에는 어떠한 역사적·논리적 관계도 없다고 평가했다. 아리기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화를 콘트라티에프 순환 대신 체계적 축적순환개념으로 대체하고 이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헤게모니 순환을 설명한다.(153)

아리기는 근대세계체계에 대략 지난 600년 동안 네 번의 체계적 축적순환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체계적 축적순환이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의 화폐1(M)-상품(C)-화폐2(M')의 순환을 해석한 것인데, 화폐1은 유동성, 유연성, 선택의 자유를, 상품은 상품 생산을 통해 이윤을 얻고자 투자된 자본을, 화폐2는 확대된 유동성, 유연성, 선택의 자유를 의미한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축적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이러한 새로운 축적구조가 곧 세계적 규모의 축적구조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축적구조가 세계적 규모의 축적구조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축적구조를 뒷받침하는 국가 간 체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이 새로운 국가 간 체계가 만들어질 때 새로운 세계패권이 등장한다. 아리기는 체계적 축적구조가 새로운 국가 간 체계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네 번의 체계적 축적순환, 국가 간 관계에 근거한 패권국가의 출현, 세 번의 패권의 순환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154)

근대세계체계의 첫 번쨰 순환은 제노바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시기적으로는 브로델이 장기 16세기라고 부르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반에 이르는 기간이다. 제노바를 네덜란드, 영국, 미국과 같은 국민국가로 보기는 어렵지만, 아리기가 제노바의 시대를 첫 번째 순환이라고 명명한 것은 제노바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류가 역사적 사회체계로서 자본주의의 탄생을 목도했기 때문이다.(155) 아리기는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근대국가 간 체계의 네 가지 중요한 특징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네 가지 특징 중 주목해야 할 특성은 세 번째 특성으로 언급한 새로운 축적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첫 번째 패권지역인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는 보호비용을 일종의 군사 케인스주의처럼 산업화함으로써 보호비용을 수익으로 전환시키는 체제였다. 용병을 고용하기 위해 군사비를 지출하지만 용병은 소비와 세금을 통해 도시국가의 세입을 늘리고 이는 다시 새로운 군사비 지출을 가능하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두 번째 순환은 네덜란드가 패권을 차지하는 16세기 말에서 18세기까지다. 아리기는 조직혁명의 관점에서 볼 때 네덜란드의 패권이 북부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패권과 상이했던 점은 네덜란드가 그들 자신의 보호를 생산한 것이었다고 했다. 사업조직과 정부조직이 혼합되면서 네덜란드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완전히 내부화한 것이다.(156)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제노바의 자본가계급이 축적할 수 있는 규모보다 더 큰 축적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리기는 사업조직과 정부조직이 하나의 조직으로 혼합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사업조직과 정부조직이 분리되어갔기 때문에 발전이라기보다는 한걸음후퇴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157)

세 번째 영국 패권의 순환기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말까지다. 영국 자본주의는 조직혁명 차원에서 생산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체계적 축적체계를 대신한 새로운 체계적 축적체계를 만들었다. 생산비용 내부화의 핵심은 산업주의로 나타났다. 네덜란드는 세계체계의 교역을 장악했지만 상품을 직접 생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영국의 축적체계는 소위 산업주의라고 부르는 생산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원료 조달에서 생산까지 생산비용을 내부화하고, 이를 통해 네덜란드보다 더 큰 규모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157) 영국 패권시대에 들어서면서 근대세게체계는 처음으로 교역보다 생산이 자본에 더 많은 이윤을 주는 영역이 되었다. 브로델은 이러한 현상을 자본이 교역에서 생산으로 이동해 자기영역을 벗어났다고 표현했다.(158)

네 번째 체계적 축적체계는 미국 패권의 시대다. 대략 19세기 말에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시기다. 미국은 영국의 축척체계를 지양하고 새로운 축적체계와 국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패권 장악에 성공하게 된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법인기업을 통해 거래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새로운 축적구조를 만들었다. 거래비용은 원료를 구입하고 이를 가공해서 최종 단계의 상품으로 만드는 중간 단계들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미국의 체계적 축적체계는 영국이 가족기업에 의존해 생산비용을 내부화했던 것과 달리 법인기업을 통해 생산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하뱋 거래비용을 내부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축적체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체계적 축적체계는 정치적으로는 냉전체계, 경제적으로는 브레튼우즈 협약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이라는 국가 간 체계를 통해 공고화되었다. 현재 우리는 거래비용을 내부화한 체계적 축적체계와 국가 간 체계에 기초한 미국 패권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역사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체계적 축적체계의 역사적 순환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158) 한국(조선)은 영국 패권이 쇠락하고 미국 패권이 떠오르던 시기에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편입되었고, 미국 패권의 절정기에 산업화를 이뤘으며, 미국 패권이 위기에 처한 시기에 복지국가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159)

 

4. 근대화론, 종속이론, 그리고 세계체계

월러스틴의 세계체계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5년 이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국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담론은 근대화론으로, 근대화론은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제3세계 국가들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길을 따른다면 종국에는 선진국처럼 부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영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전형으로 삼아 모든 사회가 전통사회에서 도약준비기를 거쳐 도약기, 성숙기, 대중소비 사회에 이르는 나계적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고 주장했던 월트 로스토의 5단계 이론이 대표적인 근대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과 같지 않았다. 유럽-미 대륙과 아시아-아프리카 간의 불평등은 1910년대 식민지 시기보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20년 동안 더 확대되었다. 세계 교역에서 제3세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했고, 교역조건이 불리해지면서 수출증가율도 확연히 감소했다.(159)

종속이론은 이러한 현상을 저발전의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159) 대표적 종속이론가인 사미르 아민은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핵심부와 주변부 국가 간의 부등가 교환과정으로 정의하고, 이로 인해 주변부 국가들은 산업화된 핵심부 국가들과 교역하면 할수록 점점 더 저발전이라는 경로에 고착화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종속이론이 저발전의 발전에 의해 영영 종속적 지위에 고착될 것이라고 단언했던 제3세계 국가들 중 일부가 경제발전을 이루어내면서 종속이론은 그 정당성을 위협받았다.(160)

월러스틴의 세계체계관점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핵심원리가 불균등한 교환이라고 인식했다는 점에서 종속이론과 유사하지만 교환의 주체인 핵심부 반주변부, 주변부의 위치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종속이론의 한계를 넘어 이론이 현실 자본주의에 좀 더 부합하도록 구성했다.(160)

 

5. 세계체계관점의 지적 계보

세계체계관점의 계보는 세계체계관점을 한국 복지체제 연구에 적용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크게 보면 세게체계관점은 아날학파, 제국주의론, 종속이론, 칼 폴라니 등 서구 사회과학의 지적 유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아날학파, 특히 브로델의 연구는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세계체계를 세계제국과 구별하는 핵심 개념인 세계경제라는 개념도 브로델이 지중해를 연구한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인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에서 처음 사용한 지중해 세계경제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161)

특히 시간 개념은 브로델이 월러스틴의 세계체계관점에 미친 가장 중요한 영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브로델은 시간을 거의 변화지 않는 초장기지속, 그보다는 짧은 장기지속(대략 수세기에 해당하는 시간대), 장기지속보다 짧은 중기적 시간대인 콩종크튀르, 사건사에 해당하는 단기로 구분했다. 중요한 관점은 이 네 가지 시간대가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장기가 거의 변화하지 않는 시간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브로델의 시간대는 실질적으로 삼분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162) 이러한 브로델의 개념은 월러스틴의 시간대의 핵심적 준거가 된다. 실제로 월러스틴은 사건이 아닌 중기적 시간대인 콘트라티에프 순환을 중심으로 세계체계를 분석하고 있다.(163)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세게체계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적 유산이다. 브루어는 월러스틴의 세계체계관점을 제국주의에 관한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 중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20세기 초 루돌프 힐퍼딩, 니콜라이 부하린, 블라디미르 레닌, 폴 바란 등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제국주의론과는 차이가 있다. 제국주의론의 핵심은 단순히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정치적, 군사적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의 지배라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국주의론의 핵심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경쟁이라는 투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은 세계체계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국가들 간의 투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부하린의 이론은 세계체계관점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163)

힐퍼딩이 자본의 집중과 집적을 하나의 과정으로 접근한 데 반해, 부하린은 이를 자본의 국제화와 국민화라는 두 과정으로 접근했다. 부하린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는 상품 생산이 핵심인데, 상품 생산은 생산자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용을 전제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유통과 교역이 전제된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에서는 국제적인 상호의존성과 국민국가로의 분할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러한 부하린의 인식은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단일한 세계경제로 통합되어 있음에도 정치적 측면에서 다수의 독립적 정치체들도 분할되어 있고 세계경제 내에서 유통과 교역이 중요하다는 세계체계의 인식과 유사하다. 정리하면 세계체계관점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은 상품 생산과 세계적 차원의 시장경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하린의 인식을 공유한다.

프랑크와 아민의 종속이론도 세계체계관점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세계체계관점은 전후 서구 사회과학계의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은 근대화론의 대항담론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프랑크와 아민의 세계체계 구상과 밀접한 교류 속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164) 프랑크의 공헌은 첫째, 3세계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의 오류를 비판하고 대안적 담론으로 종속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선진지역과 후진지역의 불균등성을 인식했지만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두 지역의 생활수준의 격차가 점진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프랑크가 논증한 것과 같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생산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두 지역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둘째,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발전이 중심부와 위성부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프랑크의 주장은 월러스틴의 세게체계관점에서 핵심부-반주변부-주변부의 형태로 정식화된다.

아민도 프랑크의 저발전의 발전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자신의 세게체제이론을 전개한다. 아민도 프랑크와 유사하게 세계체제를 중심부와 주변부로 구분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아민이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신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이윤 극대화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같은) 모순을 주변부로 이전시켜 중심부 체제 내의 모순을 완화시켰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민의 주장은 생산, 재생산 등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벡터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세계체계관점을 상기시킨다. 더욱이 아민의 주장은 현실세계에서 왜 복지국가가 유독 서구 선진산업국가들에서만 공고화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체제 내 모순을 이전시킬 곳이 없는 저개발국가와 개발도상국가에서 복지국가화가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165) 아민의 주장의 핵심은 세계체계의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부등가 교환으로 인해 두 지역 간의 임금 격차가 생산성의 차이보다 커져 주변부의 저발전이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아민의 주장은 자본축적을 세계체계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해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 또한 일국적 차원이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폴 스위지도 세계체계관점의 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임금노동, 노예노동, 농노노동 등 다양한 노동방식이 공존할 수 있다는 세계체계관점은 1950년대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세기적 논쟁에서 스위지가 모리스 돕의 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과 논거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 관련해 돕은 상업적 영향력(외적 요인)을 무시하지 않았으나 내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위지는 이행에 있어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돕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로 상업교역이 발달했음에도 영국을 포함한 유럽 대륙의 많은 지역(주로 동유럽)에서 봉건제가 약화되기보다는 농민에 대한 봉건영주의 강제적 부역이 강화되는 등 봉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던 사실을 들어 스위지를 비판했다. 반면 스위지는 교환경제의 확대가 곧 봉건제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으며 교환경제는 농노제, 노예제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방식과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스위지의 주장은 자본주의 세계체계 내에 다양한 생산양식이 공존할 수 있다는 세계체계관점과 유사하다.

둘째, 중심과 주변으로 구성되는 (일국의 범위를 넘어서 국가 간 관계를 포함한) 경제체계는 이미 1950년 출간한 논문에서 스위지가 주장한 개념이다. 그는 다양한 노동방식이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동방식은 각 지역이 교환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상이하다는 점을 지적했다.(166) 교환관계의 중심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임금노동이 강화되는 반면, 교환관계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다른 노동방식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스위지는 세계체계관점의 중요한 분석 틀인 (정확하게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중심과 주변 간에 이루어지는 기축적 노동 분업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167)

세 번째 관련성은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계의 출발점으로 제기한 장기 16세기라는 설정과 관련된 것이다. 장기 16세기의 시간대는 대략 15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에 이르는 근 200년의 시기로, 서유럽 경제사에서 그 시기 생산양식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시대다. 봉건제는 종식되고 상품 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출현해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 생산양식으로 등장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시기다. 스위지는 이 시기를 봉건제와 자본주의의 중간 시기로 전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이라고 불렀다. 월러스틴은 장기 16세기를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본격화되기 위한 준비기로 규정했다. 스위지는 이 기간을 자본주의도 봉건주의도 아닌 시기로 설정한 반면 월러스틴은 이 시기를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둘의 인식이 상이하다고 할 수도 있다.(167)

1950년대 초반에 스위지가 돕을 비판하기 위해 제기했던 (1) 동시대의 노동방식에 다양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고, (2) 이러한 차이가 교환관계의 우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와 관련되며, (3)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는 장기간에 걸친 이행기(전자본주의적 상품 생산)가 필요했다는 주장은 1970년대에 월러스틴이 정식화한 세계체계관점에 계승되었다.(167)

큰 틀에서 보았을 때 폴라니의 사상은 두 측면에서 세계체계관점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폴라니는 자본주의 분석을 일국적 차원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개별 국민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힘과 국가의 보호주의 행위로 대표되는 계급들의 투쟁을 세계경제라는 차원으로 확대해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폴라니는 자본주의를 세계체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체계관점은 폴라니의 선구적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분배로 대표되는 국가의 보호주의 정책들은 단순히 국민국가의 내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의 확산 및 결합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는 폴라니의 주장은 세계체계관점에서 한국 복지체제를 분석하려는 기원과 궤적의 의도를 지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방법론이다. 폴라니는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면서 단지 추상적 수준에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실증적 분석을 했다.(168) 이러한 폴라니의 선구적 연구방법은 비교역사연구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정리하자면 세계체계관점은 마르크스 이래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더 나은 대안사회를 고민했던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의 유산을 계승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169)

 

6. 세계체계관점을 둘러싼 쟁점: 복지국가와 관련된 논의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세계체계관점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하나는 봉건제가 단순한 암흑시대가 아니라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하게 된 핵심 조건이었다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과 시대에도 존재했는데 왜 1450년에서 1650년 사이에 유독 서유럽에서만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서유럽 봉건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169) 다른 하나는 불균등 발전에 대해 일국적 현상이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점이다.(170)

 

1) 분석 단위로서 세계체계

월러스틴에 따르면 세계체계관점에서 분석 단위는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데, 이는 16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의미한다. 세계체계관점은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모든 부문들을 하나의 세계로 보며 이들은 개별적으로 분석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170)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인 한국은 독립적 분석 단위가 될 수 없다. 한국 복지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유일한 분석 단위로 상정하는 세계체계관점은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부분들 간에 차이가 없고 부분들 간의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 사회(또는 국가)의 특성은 세계체계의 영향을 받지만 세계체계라는 외적 변수만이 한 사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세계체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세계체계지만 독립적인 정치경제적 국가(단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체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세계체계는 변화하고, 그 변화는 바로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는다.(171)

하나의 세계체계가 존재하는 것이 곧 단 하나의 분석 단위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월러스틴의 주장과 달리 근대세계체제를 보면 분석 단위로 핵심부, 반주변부, 주변부에 속해 있는 국가들을 비교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헤게모니 변화와 관련한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비교,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 독일과 미국의 비교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171) 그렇기 때문에 찰스 레긴의 지적과 같이 월러스틴의 논의와 세계체계에 대한 실제 분석을 보면 세계체계는 유일한 타당성 있는 자료 단위가 아니라 유일하게 타당성 있는 설명 단위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므로 세계체계관점을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 적용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다. 세계체계의 분석 단위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면 세계체계-동아시아-한반도-한국이라는 중층적 분석 단위에 입각해 한국 복지체제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172)

유일한 분석 단위로서 세계체계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총체성이다. 총체성은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핵심 개념으로, 블록과 소머즈에 따르면, “특수한 사회적 역동성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전후 맥락을 제공해주는 사회적 전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총체성은 비교역사분석들이 공유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다. 마르크 블로크는 봉건사회,Ⅱ』에서 총체성 개념을 사회의 각 부분이 구조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사회의 한 부분에 대한 이해는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정의한다. 페리 앤더슨 또한 역사에 대한 이해는 총체적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는 전체로, 역사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총체성은 찰스 틸리의 지적처럼 개별 사회가 독립적 실체라는, 19세기의 사회 변동과 이로부터 유래한 20세기의 잘못된 가정을 부정하는 것이다.(172)

세계체계관점에서 홉킨스와 월러스틴은 총체성의 개념을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세계체계의 벡터들로 정의한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조화된 틀을 제공하는 과정들의 복합체인데, 사회적 행위들은 모두 이러한 세계체계의 벡터들이라는 구조화된 틀 안에서 발생하게 된다. 홉킨스와 월러스틴은 구분할 수는 있지만 분리할 수 없는 근대세계체계의 벡터로 국가 간 체계, 세계생산구조, 세계노동력의 구조, 세계 인간복지의 양상, 국가의 사회적 응집력, 지식구조를 언급하고 있다. 총체성의 관점에서 보면 한 벡터의 변화는 반드시 나머지 벡터들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그러므로 복지체제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며, 한국 복지체제 또한 다른 벡터들과 구분해서 그 특징이 기술될 수 있지만 다른 벡터들과의 연관성을 배제한 채 독립적인 것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173)

 

2) 세계체계의 시간적 전제조건

세계체계관점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시점을 규정하는 것이다. 월러스틴은 그 시기를 장기 16세기라고 부르는 1450년부터 1650년까지의 시간대로 정의한다. 하지만 밀란츠의 지적처럼 왜 “16세기 이전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세계체계관점을 지지하는 논자들의 대답은 모호하다. 일부 학자들은 월러스틴이 주장하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16세기에 발생했다는 기술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173) (프랑크, 윌킨슨)

··· 정리하면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16세기를 전후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16세기에 형성된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그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의 기원과 세계체계의 성립 시점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은 물론 어떤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할 수 있는지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월러스틴의 입장은 단호하다. ··· “프랑크와 같이 자본주의의 기원을 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자본주의를 역사 전체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 ··· 프랑크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자본주의는 역사적 분석을 위한 개념으로서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불필요해진다는 것이다.(175)

 

3) 세계체계관점의 이론적 정합성

월러스틴 자신은 세계체계는 이론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또는 분석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월러스틴의 목적은 거시이론의 일반화가 아니고 세계체계라는 관점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적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세계체계관점이 월러스틴의 주장처럼 이론이 아니라면 세계체계관점이 이론적 정합성을 결여했다는 비판 또한 성립하기 어렵다.(175) 그러나 세계체계관점은 월러스틴 자신이 이론으로 인정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이론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 세계체계관점에 이론적 정합성을 요구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176)

브루어는 세계체계관점의 문제 중 하나로 세계체계가 총체성을 강조하는 데 비해 세계체계의 총체성을 구체적인 사실과 연결시키는 이론적 고민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브루어에 따르면 월러스틴은 노동력을 완전한 상품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노동력의 상품화가 곧 임금노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월러스틴은 임금노동은 노동이 동원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이며,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상품화된 노동에는 임금노동, 노예제, 강제현금, 차지농 등 그 성격이 상이한 형태의 생산양식이 뒤섞여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전자본주의와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고, 인간 노동력의 상품화란 곧 임금노동자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노예제, 농노제 등을 임금노동과 함께 자본주의의 노동 동원양식에 포괄하는 월러스틴의 주장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브루어가 제기한 비판의 핵심은 월러스틴이 자본주의세계체계만이 유일한 분석 단위라고 주장한 이상 노예제, 농노제 드ᅟᅳᆼ과 같은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어떻게 자본-노동이라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계급관계와 함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세계체계를 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176)

백승욱은 월러스틴의 세계체계관점이 자본주의의 내적 동학을 충분히 분석하지 않았고, 마르크스가 제기한 노동에 대한 실질적 포섭의 문제를 정치적 포섭의 문제로 대체했으며,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지역 간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176) 또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기추세의 개념도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177)

월러스틴은 역사상 존재했던 사회주의 또한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일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월러스틴은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반주변부로 규정한 것 이외에 왜 사회주의 체제가 자신의 지향과 상반된 특성을 가진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구성 부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월러스틴이 최근 발간한 저작들에서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운명이 다했고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주장과 추정만 있을 뿐이다.(177)

월러스틴의 세계체계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자본주의의 기원으로부터 시자가해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따른다면 자본주의는 임금노동자와 자본가로 이루어진 생산고나계를 의미하지만, 브로델의 방식을 적용하면 자본주의는 생산양식과는 무관하게 독점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이 반드시 임금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관계에 기초한 생산양식일 필요는 없다.(177) 자본주의에 대한 모호한 정의가 세계체계관점에 대한 비판의 여지를 넓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178)

 

4) 세계체계관점과 젠더관점

다른 주류 이론들이 그렇듯이 세계체계관점 또한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생산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의 부등가 교환에 기초한 체제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명백히 몰성적이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생산노동에 의해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은 생산노동만이 아니라, 마리아 미즈의 표현처럼 수면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무급재생산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생산체제이자 교환체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젠더관점과 세계체계관점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젠더관점에 근거한 세계체계관점을 상상해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구 복지국가는 물론 홍콩, 한국 등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돌봄은 점점 더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고, 전지구적 돌봄 연결구조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국민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돌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178)

낸시 프레이저는 (복지국가의 전통적 분석 단위가 되는) 국민국가에 기초한 주권개념은 국경을 경계로 정치적 공간을 분할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는 정의의 문제에 침묵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돌봄으로 대표되는 정의의 문제는 국민국가만의 정치적 공간에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체계 내에서 핵심부, 반주변부, 주변부 간에 이루어지는 부등가 교환은 단순히 상품(재화)에 제한되지 않고 용역(서비스)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국가 간 무역체계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 세계무역기구(WTO)’로 전환된 가장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또한 미국으로 대표되는 핵심 국가들은 최근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자본의 이윤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 자본주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생산노동만이 아닌 돌봄노동에 주목하고 있는 젠더관점과 자본주의를 하나의 체계로 간주하는 세계체계관점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179)

 

3절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

기존의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서구 사회의 경제·정치·문화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이론, 개념, 지표를 준거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분석했다. 한국 복지체제의 전망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도 사실상 서구의 경험으로부터 유추된 것이 현실이었다.(179) (: ‘한국 복지국가 성격 논쟁’)

 

1.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우리가 갖는 근본적 의문 중 하나는 왜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에도 북서유럽과 같은 국가복지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한국 학계의 대답은 대체로 북서유럽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험에 단단히 얽매여 있다. 한국 학계는 북서유럽에서 전후 경제성장과 함께 확대된 국가복지를 복지체제 발전의 정상적 궤적으로 상정하고 북서유럽과 비교해 한국에 없는 요인을 찾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북서유럽에서 전후 국가복지 확대를 설명하는 주요한 변수인 권력자원과 제도적 유산이 한국에는 없거나 취약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법은 북서유럽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한국 사회에 강제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다.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과 역사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설명해야 한다. 기원과 궤적에서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을 취하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180) 하지만 그것은 결코 복지국가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 대한 보편성을 부정하고 한국적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관점이 아니다.(181) ···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복지체제가 걸어왔던 역사를 한국 내부의 요인들과 자본주의 세계체계와 같은 외부의 요인들 간의 밀접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181) ···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은 단순히 한국 사회 내부의 요인들만을 중심에 놓고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설명하려는 접근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부 세계체계론자들의 관점처럼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의해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이 결정된다는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182)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은 내부적 요인들과 외부적 요인들을 모두 고려하고 이 둘 간에 밀접한 상호관계가 있다는 관점을 취하자는 것이다.(182)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을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은 서구 사회가 동아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충격-반응 접근법의 관점, 근대화론, 제국주의 관점이 있다.(183) 충격-반응 접근법에서는 동아시아 사회(구체적으로 중국)의 변화를 서구의 충격에 대한 동아시아 사회의 대응으로 이해한다. 근대화론도 충격-반응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대화론은 근대화와 관련된 서구의 경험(과학기술, 산업혁명 등)을 동아시아 국가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비서구 사회의 변화에 접근한다. 제국주의 관점도 충격-반응 접근법과 근대화론과는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를 서구 중심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1970년대 북한 학계와 이후 한국 학계에서 제기된 내재적 발전론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 접근법은 한국의 근대화가 지체된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이라는 외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반응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184)

기원과 궤적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적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낮은 사회지출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떠한 역사적 필연성도 없다는 관점을 취할 것이다. 익숙한 방식은 복지국가의 전형으로서 서구 복지국가의 특성을 검토해 서구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현재의 한국과 비교하는 것이다.(184) 기원과 궤적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을 지향한다는 것은 한국 학계에 만연한 접근 방법을 가급적지양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185)

마지막으로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은 한국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데 있어 한국의 사회·경제·문화·정치의 역사적 맥락에 근거한 변수를 개념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한국만이 갖고 있고 서구는 갖고 있지 않은 고유한 무엇을 찾아 변수로 만들고 이를 근거로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구별된다.(185) (: 유교주의 복지국가) ··· 한국을 서구와 구분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서구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공통의 변수가 있어야 하고, 그 변수가 한국과 서구에서 각각의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한국 또는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동아시아 국가들에만 해당하는 변수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일 뿐이다.(186)

핵심은 한국 사회는 물론 서구 사회의 복지체제를 공통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개념(변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이지만 특수한 이론화와 개념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러한 관점으로 한국 복지체제를 분석하겠다는 것이다.(187)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기원과 궤적에서는 한국 사회의 변화, 구체적으로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외부 충격과 내부 동학이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될 필요가 있고, 한국과 서구 복지국가를 분석할 수 있는 보편적 이론화와 개념화가 필요한 동시에 (모순적이지만)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반영하는 이론화와 개념화 또한 필요하다는 관점을 취할 것이다.(187) 역사적 자본주의가 유럽을 떠나 세계로 확장된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는 외부(자본주의 세계체계)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반응만이 아닌 한국 내부의 동학에 의해서도 변화했다. 한국 복지체제는 큰 틀에서 세계체계의 일반적 성격에 의해 규정되지만, 세계체계의 규정성으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있다.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은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설명하기 위해 한국 사회의 내적 요인은 물론 외적 요인을 고려하는 동시에 이 둘 간의 관계를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로 간주하는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188)

 

2. 가능성의 한계

한국 중심적 관점에서 강조하는 한국 복지체제가 갖는 자율성은 브로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한계내에서 보장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은 당시 한국 사회가 놓여 있는 국내의 조건에 따라 그 확장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 한국 사회는 주어진 가능성의 한계를 한국 사회 내부의 권력관계의 변화와 역사적 제도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결정적 국면또는 점진적 변화를 통해 확장할 수도 있다.(188) (*가능성의 한계를 설명하는 그림은 지금까지의 설명과 다소 모순적임 - 인용자)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능성의 한계가 변화했다면, 그 가능성의 한계 내에서 변화의 폭을 설명하는 변수도, 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변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 중심적 접근 방법(서구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변수와는 상이한)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고유한 변수가 무엇인지를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도출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과 서구 복지체제를 비교하는 데 있어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변수만이 아닌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변수가 두 체제를 비교하는 공통의 변수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각은 역사학계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제기된 관점이다. (윙의 대칭적 시각, 포머란츠의 상호비교) 기원과 궤적은 이러한 관점을 한국 복지체제 연구에 적용해, 복지국가 형성과 변화에 관한 유럽 중심적 선입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긍정적인 것은 이러한 관점이 이미 한국 복지체제 또는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연구하는 국내외 연구자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190) (: 개발주의와 보호주의)

 

4절 젠더관점

전후 서구 복지국가의 주요한 복지는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질병, 노령, 산업재해 등으로 인해 소득을 상실한 남성 생계부양자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제도화되었다. 가족 내에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성 간 불평등과 여성이 수행하는 무급노동은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었음이에도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전후 복지국가의 확대는 성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다, 비록 1970년대 이후 북유럽을 중심으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확대되고 젠더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지만,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라고 여겨지는 북유럽에서조차도 여성은 여전히 불평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

복지국가가 성 평등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소득보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확대된 복지국가가 성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 복지체제는 성 불평등과 관련해서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기원과 궤적을 젠더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주된 이유는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서 성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젠더 문제가 어떤 식으로 은폐되고 다루어졌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생존은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단순히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노동으로 불리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존재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191)

 

1. 젠더관점

젠더관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다. 그것 자체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젠더관점은 사회를 바라보는 고정된 렌즈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으로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반영하는 역동적인 렌즈다.(192) ··· 제인 프리드먼은 페미니즘을 하나의 통일된 개념이 아니라 여러 사상들과 현실의 여러 행동들로 구성된 다양하고 복수적인 조각들의 묶음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고 젠더라는 개념에 공통의 인식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 젠더는 신체적 차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생물학적 성(sex)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젠더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존재하지만, 젠더는 사회적·문화적·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성적 차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젠더관점을 적용한다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차이가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 어떻게 나타나며 은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젠더관점을 적용한다는 것은 정책의 수면 아래에 감추어진 젠더 불평등이 한국 복지국가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93)

 

2. 연구 방법론으로서 젠더관점

젠더관점을 한국 복지체제 분석에 적용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는 기원과 궤적이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에서 주류의 경험과 삶만이 아닌 비주류의 경험과 삶을 포괄하는 의식적 노력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비주류란 단지 여성을 의미하기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차별받는 모든 소수자를 의미한다. 젠더 개념 자체가 주어진 것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젠더는 성 차이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젠더가 타고난 것이 아닌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의미는 성 불평등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인위적 결과라는 의미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불평등도 인위적 불평등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불평등이 인위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목적의식적인 행위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젠더 문제를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같이 단지 성 간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벨 훅스가 지적한 것처럼 젠더 불평등에 내재된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성이 교차하는 복합적 불평등의 문제를 간과하고 젠더 문제를 단지 주류 여성과 남성의 단순한 이분법적 문제로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194) 젠더관점을 적용한다는 것은 한국 복지체제의 분석에 단지 성과 관련된 문제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과제를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195)

두 번째는 기원과 궤적의 분석 대상이 되는 정책과 제도들을 소위 공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노동시장과 이와 관련된 사회정책으로 제한하지 않고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가족의 영역 또한 분석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이라는 개념에 생산노동만이 아닌 재생산노동을 포함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적 전통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기원과 궤적은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분석을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구사회위험에서 가족 영역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위험으로 확대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불균등하게 놓여 있는 젠더관계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온전한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서구 복지국가들이 1970년대부터 노동시장으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가족 영역에서 성별 분업의 해체를 사회정책에 반영해나가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현대 복지국가의 변화를 반영하는 뒤늦은 작업이기도 하다.(195)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에 대한 연구를 젠더관점에서 분석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인위적으로 구분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해체하고 복지국가에 대한 재이해와 재개념화를 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196)

 

3.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렌즈, 젠더관점

복지국가가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가시적 벡터 중 하나라면, 젠더관점은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지속시키는 자본축적의 보이지 않는 벡터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국민국가 차원이 아닌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세계체계 논의에서도 (여성의 무급노동으로 대표되는) ‘자본축적의 보이지 않는 기제에 대한 인식은 불충분하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젠더관점은 생산노동의 불균등한 노동 분업에 근거한 세계체계관점을 불균등한 재생산노동의 분업으로 확대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이론적 틀이다. 마리아 미즈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본주의 축적체계는 빙산경제모델과 같다.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라고 불리는 자본과 임금노동은 실제로는 자본주의 전제 축적체계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대부분 생산활동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무급가사·돌봄노동, 불법이민자의 저임금노동 등과 같은 공식적인 경제의 수면 아래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잠겨 있기 때문에, 젠더관점을 취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축적 과정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수면 아래 감춰져 있는 노동 없이는 단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196) 젠더관점은 수면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빙산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해준다.(197)

특히 젠더관점은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또는 주변부 지역의 국가들이 중심부 국가를 따라잡으려는 시도가 신화에 지나지 않으며, 그 과정 또한 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성 억압을 지속시킨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197)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핵심부에 위치한 자본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발생하는 계급모순을 완화하기 위해 이윤은 떨어지지만 필수적인 산업을 제3세계로 이전시키고, 3세계에서는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여성에 대한 이중적 착취(노동시장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집단인 동시에 가족 내에서 여전히 무급노동을 수행하는 집단)를 실현하고 있다.(198)

젠더 불평등을 국민국가 차원이 아닌 세계체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 낸시 프레이저의 주장을 빌리면 젠더 문제는 국민국가가 아닌 전지구적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민국가는 국경으로 정치적 공간을 분할해 경계를 가로지르는 정의의 문제에 대해 침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198)

기원과 궤적에서는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성 불평등이 단지 국민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야기하는 현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젠더관점에서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적 기원과 궤적을 분석하게 되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나타나는 돌봄의 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핵심부, 반주변부, 주변부 사이에 이루어지는 불균등한 돌봄녿농의 분업의 사슬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199)

 

5절 권력자원론

 

1. 권력자원론과 제도주의 이전의 논의

발테르 코르피에 따르면, 권력자원론은 권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네오마르크스주의, 기능주의, 다원주의 등 이전의 이론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정식화되었다.

복지국가의 기원에 대한 산업화론은 산업화, 도시화 등으로 전근대 사회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했던 지역사회, 교회, 가족 등과 같은 전통적 제도들이 해체·약화되면서 전통적 제도들이 담당했던 재생산 기능을 대신할 주체로 복지국가가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모든 사회체제는 ()생산이 지속될 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는 전근대 사회의 전통적 분배 기제인 교회, 지역사회 등의 기능적 등가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화론으로 대표되는 기능주의적 접근은 왜 산업화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복지국가의 핵심 정책들이 제도화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200) ··· 경험적 연구는 전후 복지국가의 확대와 경제성장은 서로 유의미한 관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201)

한편 좌파(주로 네오마르크스주의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과 관련된 복지국가의 정치적 측면을 강조한다.(201) 네오마르크스주의 또한 복지국가의 기능적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기능주의 관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가 단기적으로 자본의 이해에 반해 국가복지를 확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복지국가가가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는 자본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풀란차스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에스핑-앤더슨은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에 두 가지 반론을 제기한다. 하나는 네오마르크스주의는 자본축적을 저해할 수도 있는 복지지출을 왜 GDP20~30% 수준까지 지출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정치적 정당성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왜 복지국가가 필요했는지를 네오마르크스주의는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에스핑-앤더슨의 비판은 보는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될 수 있다. 먼저 GDP20~30%를 재분배에 지출하는 것과 자본축적이 상호 배치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 따르면,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GDP 대비 사회지출이 20%를 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도 자본축적은 계속되었다. 다른 하나는 에스핑-앤더슨의 주장처럼 동유럽 사회주의를 복지국가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월러스틴과 같은 세계체계론자들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세계체계와 분리된 독립된 체계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202) 사회주의 체제도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하위 구성 부문이기 때문에 이들 체제에서도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분배체계, 즉 서구의 복지국가에 준하는 기능적 등가물이 존재한다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203)

다원주의와 엘리트주의는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원주의의 핵심 주장은 권력이 특정한 집단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다양한 집단들에 (불균등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권력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집단에 분산되어 있다는 것은 복지국가를 움직이는 권력 또한 다양한 집단에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주의는 권력이 다양한 집단에 분포되어 있다는 다원주의 주장을 비판하고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올슨과 오코너가 지적한 것처럼 엘리트주의의 주장은 국가권력이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집중되어 있고 자본주의 국가를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구로 해석하는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 유사하다. 엘리트주의의 입장에 따른다면 복지국가는 자본가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창조한 의도된 기획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203)

 

2. 권력자원론

권력자원론의 핵심 질문은 왜 복지국가가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왜 복지국가들이 상이한 복지체제로 발전했을까?”라는 질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를 거치면서 이론화되기 시작한 권력자원론만큼 전후 서구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잘 설명해주는 이론은 없었다. 권력자원론의 영향력은 에스핑-앤더슨의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에서 정점에 이른다. 대부분 복지체제 유형 논의는 직·간접적으로 에스핑-앤더슨의 세 가지 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이론적 성과가 세 가지 체제로 정형화되었던 그 시기에 권력자원론은 새로운 이론적 도전에 직면한다.(204)

코르피에 따르면, 1950년대 사회과학자들 간의 논쟁은 권력이 어디에 있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다원주의 대 엘리트주의 간의 논쟁이었다. 권력자원론은 권력을 둘러싼 1950년대의 논쟁을 비판하면서 정식화되었다. 권력자원론은 권력자원을 어떤 행위자(개인 또는 집단)가 다른 행위자를 처벌하거나 보상을 줄 수 있는 능력 또는 수단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다언주의와 엘리트주의의 권력에 대한 인식과 유사해 보인다.(204) 하지만 권력자원론은 다원주의와 (네오)엘리트주의 등과 비교해 적어도 네 가지 측면에서 상이한 인식을 갖고 있다. 첫째, 권력자원론은 다원주의와 엘리트주의와 달리 권력의 행사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권력의 소재에 상대적으로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다원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주요한 관심은 권력의 소재보다는 권력의 행사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핮지만 권력의 소재와 행사는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를 상호 배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권력자원론은 다원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력의 소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둘째, 권력자원론은 다원주의에 비해 권력이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원주의도 권력자원이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이론의 불균등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다원주의가 이야기하는 집단 간 불균등한 권력 분포에서 집단은 계급과 같이 상대적으로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유동적 개인 또는 집단이다. 반면 권력자원론에서 집단은 계급으로 상대적으로 집단적 정체성을 갖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자원은 폭력적 수단, 자산, 인간의 노동력인데, 폭력적 수단은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 있기 때문에 불균등의 문제는 주로 자산과 노동력 간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205) 자산은 상대적으로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동원과 집중이 용이한 반면, 노동력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산되어 있으며 동원과 집중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처럼 자산을 소유한 계급과 노동력을 소유한 계급 간의 권력이 구조적으로 불균등하게 놓여 있다.(206)

셋째, 권력자원론은 계급동원과 계급연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다원주의와 (네오)엘리트주의 등과 차이가 있다. 권력자원론이 계급동원과 계급연대에 주목한 것은 자본과 비교해 노동의 취약한 권력자원의 특성을 반영한 이론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206) 집중과 동원이 어려운 노동력만을 소유한 노동계급이 축적 가능하고 동원과 집중이 용이한 자산을 가진 자본가계급에 대항해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동원과 다른 계급과의 연대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계급은 노동계급이 절대 다수가 아닌 상황에서 동원과 집중의 대상을 중간계급으로 확대해야 했다. 실제로 노동계급의 권력자원의 크기가 유사하다고 해서 유사한 복지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스웨덴, 덴마크와 호주, 뉴질랜드의 사례)

하지만 노동계급이 당파성을 버리고 소자산가인 농민 또는 중간계급과 연대하는 계급연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담 쉐보르스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이 직면한 어려움을 정리하면서 노동자 정당이 비노동계급과 연대할 경우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207)

권력자원론에서 권력은 사회적 관계에 선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권력의 주체들 간의 이해는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결정된 불균형을 어떻게 유지하고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208)

마지막으로, 권력자원론은 권력을 공간과 시간의 변수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원주의, 엘리트주의 등과 구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불균등한 권력 분포는 예외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지만 그 구체적 양태는 시간과 공간(국가 또는 지역)에 따라 상이하다.(208) 권력자원론이 권력자원을 고정된 실체로 접근하기보다는 공간과 시간에 따라 상이하고 변화할 수 있는 변수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정치적 함의를 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권력자원론에서는 서구 복지체제가 하나의 유형으로 수렴되지 않고 상이한 복지체제로 분화된 원인을 각 복지체제의 상이한 권력자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209)

권력자원론에서 상정하고 있는 핵심 권력자원인 노동계급이 여전히 (남성) 제조업 노동자를 상정하고 있다면, 권력자원론은 남성중심적 복지국가 이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계급연대를 고려해도 전통적 노동계급에 기초한 권력자원론은 비서구 국가들에서 형성·확대되고 있는 복지체제의 성격은 물론 현재 서구 복지국가의 변화 또한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 전형적 제조업 노동자는 복지국가에서 전통적 지위를 잃어가고 있고, 비전형적 노동자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서비스 분야에서 여성 임금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209) 돌봄의 책임이 없다고 (암묵적이건 명시적이건) 간주되었던 남성 노동자가 아닌 돌봄의 책임이 있다고 간주되고 있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로 복지체제를 둘러싼 권력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210)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코르피는 계급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과 젠더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를 권력자원론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전통적 노동계급의 권력자원에 기초해 만들어진 복지국가는 계급 평등만이 아닌 젠더 평등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주장이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서유럽에서는 이미 사회정책을 둘러싸고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와 남성 제조업 노동자 간에 계급을 가로지르는 분열과 대립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원론은 왜 서구 복지국가들이 지금과 같이 다양한 체제 유형으로 분화되었는지를 설명했다는 점에서 산업화론이나 구조기능주의의 설명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권력자원론은 복지체제의 형성과 변화를 정치경제적 문제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의 형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했다. 하지만 권력자원론이 현재 비서구 사회의 복지체제의 형성과 발전과 함께 서구 복지국가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권력자원에 대한 새로운 확장된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210) 특정한 계급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시민, 여성, 이주민 등 새로운 주체와 복지체제의 형성과 변화의 관계를 설명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211)

 

6()제도주의

신제도주의는 198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수렴한다는 이론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했다. 핵심 주장은 세계화와 같은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 현상임에는 분명하지만 국민국가의 자본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수렴론에 대한 실증적 반증이라는 것이다. 신제도주의는 개별 국민국가의 자본주의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반영하듯 제도주의 관점에서 복지제도를 분석한 연구들은 제도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원과 궤적에서는 제도가 결정적 국면에서 만들어진 결빙된 유산이지만 결정적 국면이 아닌 일상적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점증적 변화의 누적된 결과라는 입장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제도의 존속은 곧 제도가 처음 설립된 그대로 충실하게 재생산되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가 자리 잡고 있는 정치적·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데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원과 궤적은 신제도주의를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으로 수용하지만, 신제도주의가 갖는 정태적 경향을 비판하고, 한국 복지체제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들의 전략적 선택을 통해 제도의 한계를 넘어 변화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체제를 만들어 가는 경로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유산이 만든 구조라는 가능성의 한계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한국 사회는 주체의 전략적 선택으로 그 가능성의 한계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211)

 

1. 권력자원론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의 다양성

권력자원론은 1980년대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으로 인식되었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두 가지 비판에 직면한다. 하나는 복지체제의 형성 및 전개와 관련해 자본의 역할을 간과했다는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체제를 정치적 측면에서 조망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다. 먼저 자본의 입장을 강조하는 논리는 복지체제를 형성한 중심 정치세력이 노동계급이 아닌 자본계급이었다는 것이다. 쉐보르스키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자본의 주체적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어깨 위에 올라탄 복지국가의 확대 또한 자본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다.

자본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하나는 복지국가의 형성과 관련해 노동과 자본이라는 두 주체의 역할을 균등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웬슨은 자본이 사회민주적 정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노동계급의 힘에 길들여진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1930년대 사민당이 집권한 것은 노동계급과 농민의 연대가 자본가계급을 패퇴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사민당 집권에 대한 자본의 강력한 반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212) 자본은 단순히 약하기 때문에 노동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계급을 가로지르는 연대가 자본에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타협했고, 따라서 사민당과 같은 좌파정당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 자본은 복지국가의 형성과 확대에 핵심적 참여자였지 수동적 대상이 아니었다. ··· 고용주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고용주가 잔여주의 복지국가를 지지했다는 경험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213)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생산체제의 다양성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생산체제론은 권력자원론이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의 이해에 반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대규모 분배정책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었는지를 해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복지국가의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 설명은 권력 자원의 분포가 왜 국가 간에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도 설명하지는 못했다고 비판한다. 더욱이 권력자원론은 보편적 선거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전제하고 복지체제의 다양성을 설명하지만, 북서유럽에서 높은 수준의 분배체제는 참정권이 보편적으로 제도화되기 이전에 이미 제도화되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의 형성과 확대에 관한 권력자원론의 설명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213) 그렇기 때문에 생산체제론이 현재 서구 복지체제의 다양성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복지국가 또한 생산체제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분할 수 있으며,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산업생산의 기능적 보완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214)

생산체제론은 모든 사회제도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제도는 다른 제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월러스틴의 세게체계관점과 유사하다. 다만 생산체제론은 생산체제와 복지체제가 밀접한 상보적 관계에 있지만 생산체제의 변화가 복지체제의 변화를 결정한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생산체제론은 권력자원의 다양성이 아닌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다양성이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214) (자본주의 생산체제로서 조정시장경제와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설명은 214-217 참고)

자본주의의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생산체제론은 복지국가의 다양성을 경제적 측면에서 검토했다는 점에서 권력자원론이 다루지 못한 복지체제의 성격을 조망했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성립과 발전이 생산체제론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자본의 필요에 의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코르피는 자본주의 다양성 논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고용주들은 복지정책의 제도화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 코르피는 이 밖에도 국가복지를 확대하려는 사민당의 시도에 자본이 어떻게 반대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코르피는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자들의 비판은 잘못된 인과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다양성 접근은 권력자원론으로 수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217)

 

2. 제도로서 정치경제

선거제도의 비례대표성은 복지국가의 크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경험적 연구들은 비례대표제와 복지국가의 친화성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비례대표제가 좌파정당에게 유리한 정치적 기회를 제공해 좌파정당의 집권 가능성을 높이고 집권한 좌파정당이 국가복지를 확대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제와 복지국가의 관계는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왜 비례대표제가 좌파의 집권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제공하는가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이유는 강력한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중위투표자 명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례대표제는 양당제보다는 다당제 구조를 만들고, 다당제 구도에서 정당들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 충실한 정책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은 다당제하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기 때문에 집권을 위해 다른 정당과 연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비례대표제가 계급연대를 쉽게 하는 조건을 형성하게 되고 좌파의 집권과 복지 확대 간에 긍정적 상관관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 집권에 이로운 비례대표제는 누가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주장이 공존한다.(218) 생산체제론자들은 생산체제와 비례대표제가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된 것은 자본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제도화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자본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조정시장경제체제를 제도화했다는 것이다. 반면 알베르토 알레시나와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다양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비례대표제가 자본과 우파에 대한 노동과 좌파의 투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 하지만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고 해서 모든 국가에서 국가복지가 확대된 것은 아니다.(219) OECD 회원국들의 사례를 보면 선거제도의 비례대표성은 OECD 회원국들과는 반대로 GDP 대비 소득이전지출과 부적관계에 있다. 이러한 결과는 비례때표성 자체가 국가복지의 수준을 결정하기보다는 비례대표제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도입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노동계급과 좌파의 강력한 정치적 세력화를 수반해 도입된 비례대표제만이 국가복지 확대와 긍정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220)

 

3. 세계화와 자본주의 세계체계

세계화는 권력자원론과 제도주의 같이 일국적 변수를 중심으로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이론들이 여전히 설명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220) 올슨과 오코너는 세계화 시대의 권력자원론에서는 계급, 인종, 젠더, 정치제도 전반에 걸쳐 심도 깊은 점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국민국가를 전제한 복지국가의 이론은 세계화 시대에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적절한 이론이 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이동성 증가는 자본이 국민국가에 기초한 복지국가의 존속을 위한 제 계급들과의 타협에 참여할 동기를 감소시키고 있는 것 같다. 세계화는 국민국가가 자본에 가하는 제약을 약화시켜 노동과 자본의 힘의 관계를 자본에 이롭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후 복지국가의 핵심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완전고용은 개별 국민국가에 자본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해주고 상품교역에 대해서는 자유화하는 브레튼우즈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체계 하에서 수립된 분배체제였다. 하지만 일국적 차원의 완전고용은 자본과 상품 모두가 자유화된 현재 세계경제에서 더 이상 가능한 선택이 아니다. ··· 세계화는 국가 간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국민국가가 사회지출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221)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복지국가는 세계화로 인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카젠스타인에 따르면, 북유럽 복지국가는 수출지향적인 개방경제에 대한 대응이었다.(222)

세계화와 복지국가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고령화와 같은 인구학적 착시를 고려해도 주요 복지국가들의 사회지출은 세계화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 일반적으로 대응은 복지체제의 성격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차이의 중요한 이유는 상이한 권력자원의 구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세계화가 아니라 고령화, 탈산업화 등과 같은 후기산업사회의 변화가 복지국가를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주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222)

*세계체계관점에서 한국 복지체계를 설명하려는 것은 단순히 세계화(또는 지구화) 변수를 고려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 세계체계관점을 한국 복지국가 연구에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본이 세계화된 현재의 현상을 상수로 반영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체계의 변화, 즉 국가 간 정치, 경제, 문화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한구구복지국가의 변화에 적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세계화는 ···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지 세계화 자체가 국민국가의 분배체계를 변화시키는 독립변수는 아닌 것이다.(223)

세계화를 단순히 복지국가를 설명하는 변수 중 하나로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또 다른 오해와 관련 있다. 세계체계가 자본, 상품,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하는 세계화와 동일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세계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본, 상품,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의미의 세계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본, 상품, 노동의 자유로운 교역과 이동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도, 월러스틴의 개념에 따르면 핵심부, 주변부, 반주변부로 구성된 세계체계, 아리기의 개념에 따르면 특정한 국가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국가 간 기축적 분업이 이루어지는 세계체계는 성립된다.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자본의 이동이 통제된 체계도,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자본, 상품,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신자유주의 체제도 모두 자본주의 세계체계다. 복지체제는 이러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받고 변화하고 있다.

복지국가 연구에 세계체계관점을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본, 상품, 서비스에 대한 규제 또는 자유화라는 변수를 복지국가 연구에 포함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복지국가를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역사적 변화의 맥락에서 이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세계화의 수준이 낮았던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도, 세계화의 수준이 높았던 1, 2차 세계대전 이전과 현재에도 개별 국가가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갖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국민국가의 분배체계에 중요한 규정력을 갖고 있다.(224) 슈워츠의 지적처럼 20세기 말에 다시 출현한 세계화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며, 분배체계로서 복지체제의 지위와 역할을 변화시키는 원인은 더더욱 아니다.(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