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한국 복지체제 연구의 성과와 한계
제1절 문제제기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에 대한 분명한 합의는 없다.(68) ···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묘사는 연구자들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한국 복지체제의 모습이 카멜레온 같은 것(모든 복지체제 유형의 특성을 부분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개발국가를 넘어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의 시작점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이행 시기의 복지 확대는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이든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는 방식이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그 방식과 관계없이) 다양한 방식의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복지국가로의 이행은 대규모의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한다.(69)
한국에서는 서구와 같이 계급의 역관계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고 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복지를 확대하는 방식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복지는 현재의 필요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확대되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때때로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상이한 계급들의 대립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계급의 역관계가 복지정책의 제도적 모습을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였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69)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규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70)
제2절 한국은 복지국가인가?
1. 복지국가는 서구의 발명품
거의 대부분의 사회과학적 논쟁들이 그렇듯이 “한국을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답을 내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한국이 복지국가인지의 여부에 대한 논의는 한국 복지체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이 복지국가인지의 여부에 따라 향후 한국 복지국가의 확대 과정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들이 상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복지국가인지의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그 시작부터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친다. 복지국가는 서구, 구체적으로 북서유럽 사회의 사회·경제·정치를 반영한 역사적 구성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구와 상이한 사회·경제·정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서구적 기준에 근거한) 복지국가를 논하는 것은 문제 설정 자체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72)
에스핑-앤더슨의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는 복지국가체제를 철저히 서유럽의 계급연합의 역사로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서유럽 각국의 계급연합의 역사적 차이가 서유럽 복지국가들의 상이한 성격을 결정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더불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들이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세계체계분석을 지지하는 논자들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서유럽의 발명품인 동시에 16세기부터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핵심부 국가들의 분배체계인 것이다. 복지국가를 이러한 시각에서 정의하면, 한국과 같은 비서구 사회에서, 그것도 20세기 대부분을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주변부와 반주변부에 놓여 있었던 한국을 복지국가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논란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서구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서구 사회의 발명품으로서의 복지국가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서구 사회와 병행해 비서구 사회에도 복지국가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주변부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 경제성장, 정치·사회·경제적 권리의 신장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910년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코스타리카 등에서 이미 복지국가의 요소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스리랑카에서는 이미 1930년대에 교육, 건강, 복지를 기반으로 하는 복지국가가 출범했다고 한다.(73)
하지만 복지국가의 성립 여부는 건강, 소득이전 프로그램 등 몇 가지 복지정책을 제도화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유무를 기준으로 복지국가를 판단하게 되면 전자본주의 사회의 분배기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분배기제를 등치시키는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 전자본주의 사회의 분배정책과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정책이 기능적 등가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능적 등가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곧 복지국가의 성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국가는 서구 사회에서 산업자본주의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분배체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또한 탕이 지적한 것과 같이 시민권에 근거하지 않은 분배는 가부장적인 온정적 시혜이지 근대적 의미의 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안 고프의 분류를 적용하면, 전근대적 또는 제3세계의 복지체제는 비공식적 복지체제 또는 비보장적 체제로 분류되고, 현재 서구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립된 분배체계를 공식적 복지국가체제로 분류할 수 있다.(74)
복지국가는 근대국가의 선형적 발전 단계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다. 독재(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복지국가의 기본 속성이 탄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절 사실이다. 많은 학자들이 복지국가는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하지만,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정책은 국가에 대한 노동자들의 충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제도화되었다. 오스트리아의 권위주의 정권인 에두아르트 폰 타페 정권에서도 산재보험을 도입했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러시아도 미국에서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훨씬 전인 1918년부터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75)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성립의 관계 또한 복지국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논의가 달라진다. 포라트는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은 주로 북미와 유럽에 집중되어있고 이 지역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상기시킨다.(75) 또한 포라트는 (서구적 의미에서 민주화되지 않은) 비서구 사회의 복지에 대한 영어 문헌은 빙산의 일각 정도로 적기 때문에 영어권 학계에서 비서구적(권위주의적)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복지국가를 민주주의와 시민권과 연결시켜 설명하려는 것은 서구적 경험에 근거해 복지국가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복지국가란 서구의 기획물이며, 서구가 창조해낸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역사적 산물이다.(76)
2. 복지국가의 요건
한국이 복지국가 단계로 진입하고 복지국가를 공고화해가고 있는 단계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이 어떤 복지체제인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79)
제3절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 논쟁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국내 학계의 논쟁이 벌어지기 이전에, 한국 복지국가에 대한 연구들은 주로 서구 복지국가를 하나의 동질적인 체제로 상정하고 이에 근거해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과 전략 등을 살펴보았다. 반면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국내 학자들의 논쟁에서는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 논의에 힘입어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진 (사회보험의 대상을 보편적으로 확대한) 제도 확대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새로운 제도 도입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논쟁에서는 더 이상 과거의 연구와 같이 서구 복지국가를 하나의 동질적인 복지국가군으로 상정하지 않았다.(80) 성격 논쟁은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진 복지 확대에 힘입어 한국을 복지국가로 규정하고, 그 성격을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 유형(자유주의, 보수주의, 사민주의)과 비교하면서, 한국이 어느 유형에 더 가까운지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81)
1. 보수주의 복지체제
복지국가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주로 산업화된 국가들, 특히 서유럽 사회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 또는 제3세계 국가들은 서구 학자들의 복지국가 비교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은 예외적이었지만, 일본 또한 선진 산업국가라는 점에서 한국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을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 유형과 비교한 2000년대 초반의 연구는 비서구 국가이자 선진 산업국도 아닌 한국을 복지국가로 정의하고 서구 복지국가와 동등하게 비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당시 논쟁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에 근거했을 때 한국 복지체제가 서구의 세 가지 유형 중 어느 유형과 유사한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복지 확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의 문제다. 한국 복지국가의 유형과 관련된 논쟁을 주도한 논자는 크게 보면 한국 복지국가를 서구의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한 유형이라고 주장하는 논자, 신자유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하는 논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혼합된 유형으로 구분하는 논자로 구분된다.(81)
한국을 대륙유럽의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한 유형이라고 주장한 대표적 논자는 남찬섭이다. 남찬섭은 첫째,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회보험도 수익자들이 재원을 분담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하다고 했다. 둘째,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을 위한 특수직 연금이 존재하고 이러한 특수직 연금의 계층화 효과가 낮다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보험이 직역별로 세분화된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하다. 더욱이 한국의 사회보험은 비정규직, 자영업자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배제함으로써 사회보장의 계층화가 크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자격을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가족의 부양 책임을 제도화한 부양의무자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한국의 복지체제가 가족책임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82)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관점에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은 한국 복지체제를 보수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보수주의 복지체제가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성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복지체제를 보수주의의 틀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 해석 및 방법론과 관련해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82)
먼저, 특수직 연금의 존재와 한국 복지체제의 관계다. 특수직 연금의 존재는 한국의 연금체계까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같이 적업별로 분리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대표적 실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농니장기요양보험 같은 다른 사회보험제도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전국민(또는 전체 임금노동자)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 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잇다. 연금도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교직원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국민은 직역에 관계없이 국민연금이라는 단일한 보험체계에 포괄되어 있다. 특수직 연금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복지체제를 대륙유럽의 직역별로 분리된 조합주의 방식의 사회보험 체계와 유사하다고 평가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또한 한국 사회보험에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만 가지고 한국을 보수주의 복지체제로 분류할 수는 없다.(예: 미국)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보수주의적 계층화로 해석할 수 없다. 공적 사회보장으로부터의 배제는 보수주의의 특성이 아닌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성으로 볼 수도 있다. 더욱이 한국은 보수주의 복지체제는 물론이고 자유주의 복지체제보다도 GDP 대비 민간보험 총수입 비율이 사회지출비율보다 큰 국가다.(83) 민간보험이 사회보험보다 더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를 보수주의 복지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도 크고 실증적 근거도 취약해 보인다.(84)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기준은 복지의 책임을 가족에게 강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가족(책임)주의는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가족책임주의의 특성이 아니라 남부유럽 복지체제의 가족책임주의의 특성이다.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가족책임주의의 특성은 국가가 공적 지원을 통해 (성별 분업에 근거한) 전통적 가족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지, 국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단순히 복지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의 가족책임주의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양의무자기준을 근거로 한국을 보수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할 수는 없다.(84)
더욱이 북서유럽에서 보수주의 복지체제를 형성했던 사회적 동인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관찰되지 않는다.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핵심은 지역 공동체의 상호 책임에 근거한 복지체제인데, 한국은 유럽의 봉건제가 갖고 있던 것과 같은 강력한 상호 책임을 제도화한 적이 없다. 실제로 유럽은 국민국가를 만들어가기 위해 봉건적 질서를 해체하고 중앙집권적 체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필요했지만, 한국은 근대 이전부터 상대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력한 노동조합의 힘이 보수주의 복지국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한국 복지체제를 보수주의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근거다. 오히려 한국에서 복지 확대는 서유럽과 달리 중간계급의 계급정치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유럽의 복지체제와는 상이하다.
한국 복지체제가 보수주의 복지체제라는 주장은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비판받았다. (에스핑-앤더슨의 복지체제 유형의 핵심 준거[탈상품화, 계층화]를 사용하지 않고, 남부유럽의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페레라의 논거를 혼용)
한국 복지체제가 부분적으로 ‘보수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을 보수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하기에는 한국의 사회·경제·정치의 역사적 맥락이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상이한 것은 물론이고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또한 서구의 보수주의 복지체제와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85)
2. 신자유주의 복지체제
한국 복지체제가 신자유주의 복지체제라고 주장하는 대표적 논자는 조영훈이다. 조영훈은 김대중 정부에서 복지 지출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확대가 한국 복지체제의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강화했다고 평가한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첫째,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복지 확대는 국가 책임을 확대했기보다는 민간의 역할을 강화한 것이고, 둘째, 직접적인 복지 확대보다는 노동연계복지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셋째, 김대중 정부가 복지를 확대했음에도 빈곤과 불평등이 감소하지 않은 것은 복지 확대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넷째,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진 사회보험의 확대가 국가의 직접적인 (재정적) 책임을 확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복지체제는 신자유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조영훈이 한국 복지체제의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언급했던 특성을 남찬섭은 한국 복지체제를 보수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영훈은 티트머스와 에스핑-앤더슨을 거명하면서 한국에서 공적 사회보험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민간보험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신)자유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한다. 손호철 또한 한국에서 민간보험의 비중이 공적 사회보험보다 크다는 점을 들어 한국 복지체제를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국 복지체제를 자유주의로 규정하는 주장은 부분적으로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복지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국 복지체제가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86) 가장 중요한 논점의 하나는 (신)자유주의의 성격과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자유주의(화)는 복지국가의 축소를 의미한다. 단순화하면 자유주의 복지체제는 시민의 복지와 관련해서 국가보다는 시장을 포함한 민간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로 서구 복지국가에서 신자유주의화가 명백하게(?) 국가복지를 축소하고 민간(시장)의 역할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론자들의 주장은 비록 김대중 정부에서 복지가 확대되었지만 이러한 복지 확대가 민간의 역할을 강화했기 때문에 1997년 이후 한국 복지체제를 신자유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87)
쟁점은 김대정 정부 하에서 국가복지가 확대되었음에도 이를 신자유주의화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한국은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는 동시에 민간의 역할 또한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서구 복지국가의 신자유주의화와는 상이한 모습이다. 사회지출 증가, 형식적이지만 사회보험이 보편적으로 확대, 시민권에 기반한 공공부조의 제도화. 사회지출이 확대되었다는 것이 곧 반신자유주화의 근거는 되지 않는다.(87)(예: 마거릿 대처 정부의 사회지출) 특히 한국의 경우 1998년과 1999년 GDP 대비 사회지출이 5.1%, 6.1%로 (상대적으로) 급격히 증가한 데에는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발생한 사회문제(예. 실업과 빈곤의 증대)를 완화하기 위한 응급조치적 성격이 강했다.(88)
신자유주의 논자들의 또 다른 주장은 민간보험의 규모다. 일반적으로 민간보험은 공적 사회보험과 대체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민간보험의 크기는 공적 사회보험과 반비례관계에 있다고 주장된다. ··· 그러나 주목할 점은 GDP 민간보험총수입 비중이 복지체제 유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사민주의 복지국가들의 민간보험 비중이 자유주의 복지체제보다도 높다는 점이다.(88)
한국 복지체제는 성숙한 복지국가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아무것도 없던 단계에서 이제 막 복지가 확대되는 단계에 있다.(89) 심지어 한국이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잔여주의 원칙에 입각해 복지를 확대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국가복지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모든 복지제도는 그 수준과 성격이 다를지라도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90)
김연명이 주장하는 ‘국가책임 확대’는 김대중 정부에서 나타난 국가복지 확대의 현상을 ‘기술’하는 용어로는 적당하지만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은 아니다. ··· 국가책임 확대는 사회지출이 증가한 현상을 기술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국가복지 확대는 때로는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고 비재정적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90) ··· ‘국가복지 확대’의 용례는 현상에 대한 기술로 제한되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의 복지 확대를 설명하는 적절한 개념이 되기 어렵다.
장하준이 지적하는 것처럼 익숙한 신화의 하나는 시장이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전학파 경제학에 반대하는 많은 저명한 학자들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시장은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지원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복지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국가의 의도된 계획과 지원 없이 자유주의 복지체제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실제로 한국에서 민간보험의 성장은 세금 공제와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 인하와 같은) 공적 복지의 약화 등과 같은 국가의 의도된 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결과다. 민간보험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 곧 작은 국가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현상적으로 작은 국가가 곧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자유주의 복지체제라고 주장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91)
한국 복지체제가 자유주의 복지체제라는 또 다른 근거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복지 확대가 주로 (근로와 연계된) 공공부조와 같은 저소득층을 위한 잔여적 제도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굮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과거 생활보호제도에 비해 권리적 성격이 강화되었는데도 이를 단순히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과 연계된 복지를 확대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화라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공공부조를 시민권에 근거해서 제도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복지의 확대를 체제적 수준에서 보편적으로 확대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91) 시민권에 기초한 공공부조제도의 확립은 신자유주의 복지체제의 강화가 아닌 한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전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 아직 서유럽 복지체제와 같이 자신의 고유한 특성이 분명해지는 성숙한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발달된 서구 복지국가의 재편 과정에서 논쟁이 되는 국가 역할의 축소와 시장 역할의 강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한국과 같은 복지발전도상국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92)
1997년 이후 복지정책의 제도적 확산을 보면, 한국 복지체제는 사회보험의 제도적 성숙에 따라 보수주의적 성격이 강화될 수도, 시장의 역할이 중심이 되는 자유주의 복지체제가 될 수도 있다. 아직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다. 한국 복지체제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특성으로 인해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기술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한국 복지체제의 동태적 모습을 포착해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쟁점은 김대중 정부의 복지 확대가 중장기적으로 한국 복지체제에 자유주의적 성격을 강화했는지 여부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신자유주의화 논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특성을 김대중 정부에서 찾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공적 사회보험의 보편적 확대, 건강보험의 통합,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등 새롭게 만들어진 제도적 유산이 한국 복지체제의 자유주의적 속성을 강화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해 한국 노동시장에서 불완전 고용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화, 나아가 복지체제의 신자유주의화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와 이후 정부들에서 이루어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인하, 공무원연금 개혁, 영리민간병원의 도입 시도, 사회서비스 바우처제도 도입, 노인요양서비스의 민간시설 중심 확대 등은 한국 복지체제의 자유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 제도적 유산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92)
3. 혼합유형?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복지체제 중 어떤 유형도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두 주장 모두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부분적으로 타당하고 부분적으로 부적절할 뿐이다. 한국 복지체제를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했던 논의들을 보면서 한국 복지체제는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실제 여러 학자들은 한국 복지체제를 특정한 서구 복지체제 유형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두 개 이상의 특성이 혼합된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스핑-앤더슨은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의 중국어판 서문에서 동아시아 복지모델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혼합된 유형 또는 제4의 복지체제의 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1997년 이후 한국의 복지 확대가 주로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족(책임)주의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으며 특수직역 연금에 대해 (국민연금과 비교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등 보수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민간보험의 규모가 크고 보육과 돌봄 등에서 시장의 역할이 크며 사회지출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데 반해 공공부조의 비중은 크고 시민권에 기초해 공공부조를 제도화했지만 (조건부 수급과 같은) 노동연계가 제도화되었다는 사실 등을 들어 한국 복지체제가 자유주의 복지체제의 특성 또한 갖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94)
한국 복지체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특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실시된 보편적 학교급식과 박근혜 정부에서 실시된 아동보육료의 보편적 지원, 가정양육수당 등은 공적 전달체계의 확대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전통적 성별 분업을 강화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급여 대상이 보편적이라는 점만은 사민주의 복지체제의 보편성을 부분적으로 담지하고 있다. 직역이 통합된 건강보험 단일체제도 전 국민을 하나의 조합에 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사민주의 복지체제의 특성을 갖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ㅁ나의 특성이 아닐지도 모른다.(예: 영국)(94)
4. 비판적 정리
1) 비판 1: 총체성이 사라졌다
에스핑-앤더슨의 기념비적 저작이 출간된 1990년 이후 거의 모든 복지국가 (비교)연구들은 에스핑-앤더슨의 복지체제 유형화 논의를 인용하고 있다.(95) 한국과 같은 제3세계 복지체제에 대한 연구에서도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는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한다.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가 광범위하게 인용될 수 있었던 데에는 캐슬의 주장과 같이 에스핑-앤더슨의 비교연구가 복지체제의 전형적 유형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 연구 이전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복지국가 비교연구들은 체계적인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또는 이론적으로 복지정책의 특성을 비교하거나 사회지출 수준을 단순 비교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에스핑-앤더슨의 비교연구의 핵심은 서구 복지체제들의 다양성을 서구 사회·경제·정치의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복지국가를 다른 사회적 벡터(정치, 경제 등)들과 무관하게 사회지출의 수준, 복지정책(프로그램)의 특성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국민국가)를 구성하는 주요한 벡터들의 총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서구 복지체제의 다양성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국내 연구자들은 에스핑-앤더슨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 대신 국내 연구들은 에스핑-앤더슨이 서구 사회의 역사성에 기반해서 도출한 현상적인 지표(탈상품화와 계층화)와 특성만을 한국 복지체제와 단순 비교하는 방식으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에 관해 논의를 전개했다.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 논쟁’ 같은 방식의 연구는 한국 복지체제를 총체성의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시도했던 이전 연구들과의 (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분적인) 단절을 의미했다.(96) 몇 편의 논문들은 한국 복지체제를 총체적 시각에서 접근했던 이전의 전통 위에 있었지만, 이러한 연구 경향은 한국 복지체제의 유형 논의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주목받지 못했다.(97)
2000년대 초 성격 논쟁 이전의 연구들은 비록 서구 ‘복지국가’를 동질적인 하나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한국 복지국가를 총체성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했다.(97)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해 분석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비판적 관점에서 보면, 석줙 경험과 그에 근거한 변수를 사용한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 논쟁은 기존의 한국 복지체제 연구의 총체성이라는 시각과 이론적 성과를 계승하지 못했고 (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총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퇴행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연구가 2000년대 초의 유형화 논의로 빨려 들어가기 전까지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과 형성과정에 대한 분석은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정치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더욱이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동태적 관점이 아닌 정태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은 한국 복지국가 성격 논쟁의 중요한 한계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과 관련된 연구가 서구의 복지체제 유형화 논의로 편향되었던 경향이 이후 후속 연구들에 의해 지양되었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한국 사회의 총체성에 입각해 분석한 연구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98)
2) 비판 2: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이 필요했다
에스핑-앤더슨이 구분한 세 가지 복지체제 유형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념형’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복지체제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섞여 있는 혼합형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만약 모든 복지체제가 부분적으로 혼합유형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모든 복지체제가 혼합적인데도) 각각의 복지체제를 배타적 유형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 구분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혼합유형을 기존의 복지체제와 병렬되는 독립적 유형으로 받아들인다면, 혼합형을 이념형 중 하나로 구분하는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 논쟁을 통해 제기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혼합형으로서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은 관련된 몇 가지 제도적 특성에 의해 지지될 뿐 혼합유형을 지지하는 합의된 기준은 없다. 어떻게 보면 문제는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 방식 자체의 불완전성에 기인할 수도 있다.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에서 에스핑-앤더슨이 사용한 데이터를 재분석한 스크럭스와 앨런에 따르면, 에스핑-앤더슨의 탈상품화 지표는 복지체제들 간에 유형을 구분해주는 지표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99) 체제 유형을 구분하는 탈상품화 점수의 불연속성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합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혼합형을 다른 유형들과 구분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100)
또 다른 방법론적 비판은 과연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일국적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일부 연구는 복지체제가 국내적 요인만이 아닌 국외적 요인과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100)
한국은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직후를 제외하고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산업화된 유럽의 작은 조합주의 국가들과 비견되는 복지 확대를 동반하지 않았다. 반대로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에서 추진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한국 자본의 과잉생산 위기를 국내 소비로 해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복지 확대를 동반하지 않았다.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추진된 개발국가는 산업 분야에 일자리를 제공했고 이러한 일자리를 통해 사람들이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한국 개발국가는 서구 복지국가의 기능적 등가물이었을지도 모른다.(101)
한국의 산업화는 비벌리 실버가 지적한 것처럼 세계 자본주의의 불균등한 노동 분업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고, 세계 자본주의의 노동 분업에 근거한 산업화가 1987년 민주화로 대표되는 자본, 노동, 중간계급 간의 권력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 복지체제의 형성이 한반도 분단체제와 밀접히 관련된 것이라면,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한국이라는 (냉전에 의해) 분단된 불완전한 국민국가의 테두리를 넘어 한반도 전체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관련성 하에서 조망될 필요가 있다.(101) 그러나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 논쟁은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일국적 차원에서 검토함으로써 국외적 변수, 즉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화라는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세계체계의 관점을 지지하는 논자들의 주장과 달리 일국의 정치·사회·경제가 전적으로 세계체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가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한국 복지체제가 그 자본주의 위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102)
3) 비판 3: 복지국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한국 복지국가의 성격 논쟁은 변화된 복지국가의 역할을 고려하지 못했다. 에스핑-앤더슨의 저작은 출간된 직후부터 무급·돌봄 노동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음에도, 한국에서 벌어진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 논쟁은 이러한 비판에 둔감했다. 비판의 핵심은 노동력의 상품화를 전제한 탈상품화 지표에 근거한 복지체제의 유형화는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급·돌봄노동을 유형화 논의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족 내 무급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스핑-앤더슨의 유형화 논의는 ‘남성’ 중심의 복지국가 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복지체제의 유형화에 무급·돌봄노동을 반영했을 때 복지체제 유형은 에스핑-앤더슨의 세 가지 유형과 상이한 형태로 나타났다.(102)
이는 단지 무급·돌봄노동을 한국 복지체제의 유형화 논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아니다. 비판의 핵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복지국가가 1980년대를 지나면서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는데도 한국 복지체제의 유형화 논의는 1980년대 서구 복지국가의 정태적 지표에 근거해 복지체제를 유형화한 에스핑-앤더슨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역할이 이미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구)사회위험(실업, 질병, 노령, 산재)에 대한 대응에서 새로운 사회위험(돌봄, 서비스의 민영화, 비정규직화)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진행된 복지국가의 성격 논쟁은 철저히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구사회위험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에스핑-앤더슨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형화를 고수하기는 했지만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반영해 1999년 저작에서는 탈가족화를 복지체제 유형화를 위한 지표 중 하나로 수용했다(*페미니스트 비판을 근본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님).(103)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진행된 복지국가 성격 논쟁은 몰성적이었고 복지국가의 전통적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104)
제4절 새로운 유형으로서 한국 복지체제의 가능성
1. 초기 연구와 문화적 접근
정치경제학 관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서구와 구분되는 복지체제라는 주장은 제임스 미드글레이에 의해 처음 제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동아시아(제3세계의 신흥공업국이라고 표현된 홍콩, 한국, 싱가포르, 대만)에서 산업화와 복지 확대의 관계는 서구 국가의 경험에 기초한 (복지국가 성립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인과관계에 의해 누적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주장이었다. 동아시아에서의 복지 확대는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확대되는 복지주의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낮은 생산 비용을 담보할 목적에서 제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산업화 과정의 특성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 간의 불균등한 발전이라는 동아시아의 특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논리다.
존스(Jones)는 문화적 관점에서 서구와 구별되는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특성을 기술했다. 그 핵심 특성을 “유교주의”라고 정의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5개국은 산업화로 인해 전통사회가 약화되었음에도 여전히 유교주의 사회로서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105) 동아시아 사회는 공통의 유교적 규율, 가치, 금기를 가지고 있고, 개인보다는 가족, 기업, 사회가 더 중요하며, 집단적인 사회가 위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어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잘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의무와 복종은 위로부터의 명령체계에 따라, 책임과 보호는 하향식 체계를 따라 구조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민주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서구와 같은 복지정치를 기대할 수 없으며, 사회정책은 권위와 위계에 기초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제도화된다. 시민의 복지는 총체적으로 접근되기 때문에 복지정책과 다른 정책들의 구분은 없으며 가족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비공식적 복지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에게는 의무와 책임은 강조되지만 이에 수반되는 권리는 강조되지 않고 복지급여의 수급 자격은 집단 내 업적이나 지위에 따라 주어진다. 특히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유교적 이상에 근거한, 정부가 국민을 위하는 착한 정부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는 단순히 다른 제도들과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기관이 아닌, 사회 전체의 위계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주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특성을 존스는 “노동자의 참여가 없는 보수적 조합주의, 교회 없는 보충성의 원리, 평등이 없는 연대, 자유주의 없는 자유방임주의”라고 묘사했다(Jones, 1993: 214). 이러한 오이코노믹 복지국가에서 사회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경제성장이고 사회정책은 사회의 안정화를 위해 도구적으로 이용된다. 결론적으로 존스는 동아시아 복지체제가 티트머스와 에스핑-앤더슨의 유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유교주의 복지체제라는 독립적 유형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스는 동아시아 복지 모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동아시아 모델이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여타 지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106) 존스의 의도는 사회지출 수준이 낮음에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사회지표를 나타내는 동아시아 복지체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럽 복지국가들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1997년 경제위기에 직면하기까지 동아시아의 성공은 1970년대 위기 이후 서구 복지국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되었다. 동아시아의 사례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동아시아의 성공은 보수에게는 낮은 사회지출, 작은 국가, 개인과 집단의 책임, 가족의 역할에 기반한 성공 사례로 해석되었다. 반대로 진보(또는 사민주의)에게 동아시아의 성공은 강력한 국가 개입을 상징했다. ···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복지체제는 높은 수준의 복지가 반드시 높은 재정 부담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가 되었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맥락을 이해하면 왜 존스가 동아시아의 유교주의 복지체제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고 서구 사회에 동아시아 모델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07)
존스가 제기한 유교주의 복지체계는 이후 다양한 비판을 거치면서 설명력이 약화되고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특성을 설명하는 부차적 위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비판의 핵심은 첫째, 비교의 준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존스는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에스핑-앤더슨이 구분한 세 가지 복지체제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서구 복지체제와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비교는 동일한 기준에 의해 분석되지 않았다. 존스가 서구 복지체제에는 없는 동아시아 사회의 고유한 특성을 통해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은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지만, 동아시아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들은 서구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 핵심 개념들이 아니었다. 만약 존스가 자신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서구 복지체제와 구별되는 독립적 모델로 유형화하고자 했다면, 존스 자신이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변수들을 서구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변수로 사용해서 동아시아와 서구 복지모델의 상이성을 설명해야 했다.(110)
둘째, 동아시아가 유교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동일한 유교주의 복지체제로 분류되지 않는다.(110) 최근 진행된 경험적 연구들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단일한 복지모델로 분류되기보다는 다양한 이념형으로 구분되고 있다. 더불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학(교)이라는 공통의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유학이 이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이하다.
마지막으로 유교주의와 같은 문화적 요인에 기반해서 동아이사 복지체제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관련해서는 화이트와 굿맨을 참고할 ㅁ나하다. 이들은 문화주의적 설명을 복지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한다. 서양과 동양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간의 유사성 또한 존재하며 (유교와 같이) 변하지 않는 동아시아만의 기본적인 특성이 있다는 가정은 동아시아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111) ··· 그들은 문화에 기반한 오리엔탈리즘이 동아시아의 역동성, 충돌, 중복성 등을 적절히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복지국가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동아시아 모델에 대한 칭송은 사라졌지만,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유교주의 복지체제”로 규정한 존스의 시도는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서구 복지체제의 아류 또는 (서구 복지체제를 지향하는) 저발전된 유형이 아닌 서구 복지체제와 구별되는 독립된 유형으로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서구의 눈으로만 재단되었던 동아시아 모델이 (역설적이지만 서구 학자에 의해 그리고 서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 내부의 고유한 특성에 의해 기술된 것이다. 더욱이 존스의 연구는 이후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서구 복지체제와 구별하려는 후속 연구를 촉발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존스의 주장은 이후 비문화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계승된다.
2. 존슨(Johnson)의 개발(발전)국가
개발주의(발전주의)는 문화적 관점을 대신해서 한국 복지체제의 독자성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접근 방법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개발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없는 것 같다.(112)
존슨의 개발국가 개념은 동아시아 발전주의 복지체제를 다룬 국내외 논문에서 적절히 소개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성공적인 경제 발전의 조건으로서 국가의 권위,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의 주도적 역할, 경제 발전에 대한 전략적 역할을 담당하는 효율적 관료, 미국과 소련식 발전과 대비되는 형태, 경제에 대한 복지의 종속성 등 존슨의 개발국가 개념은 연구자의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있다. 여기서는 존슨의 『통상산업성과 일본의 기적』에서 정리된 개발국가의 핵심 개념을 개략적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존슨은 스스로 경제 기적(발전)의 요인으로 개발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을 지지하는 학파에 속한다고 선언한다. 개발국가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영미권 국가들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수년간의 논쟁의 결과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개발국가의 존재가 잊혀졌다. 하지만 일본 정치경제학은 경제적 민족주의 또는 신중상주의라고 불리는 독일 역사학파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고, 개발국가는 이러한 일본의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존슨은 영미권에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 개발국가를 직접 정의하기보다는 개발국가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개발국가를 정의한다.(114) 존슨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떤 국가가 개발국가인지의 여부를 가리는 핵심이 단순히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여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국가가 다양한 이유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한다고 해서 그 국가를 개발국가로 저의할 수는 없다. 대신 존슨은 ‘시장합리성’과 ‘계획합리성’을 대비하면서 개발국가를 정의하고, 일본을 계획합리성에 근거한 전형적 ‘개발국가’로, 미국은 시장합리성에 근거한 전형적인 ‘규제국가’로 대비한다.
계획합리성과 시장합리성을 구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준거는 경제적 과제와 관련된 국가 역할의 차이다. 일본과 같이 후발 산업화를 경험한 국가들에서 국가는 산업화를 이끌기 위해 개발 기능을 담당한 데 반해, 미국에서 국가는 경제 개발을 주도하기보다는 주로 규제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에서 국가는 경제적 경쟁의 규칙과 절차를 정하는 데 관심이 있고 경제 발전과 같은 실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예: 필요한 산업, 불필요한 산업) 개발국가와 규제국가를 구별하는 준거는 직접적으로 국가가 경제정책에 우선성을 두는지 여부에 있기보다는 국가가 경제정책에 개입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115) 경제에 대한 규제국가의 개입 방식은 규제정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데 반해, 개발국가의 개입 방식은 (국가가 주도하는 적극적인) 개발정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개발국가에서 정부는 국내 산업의 구조와 국제경쟁력을 고려해 산업정책에 가장 큰 우선성을 부여한다. 이로 인해 개발국가에서는 경제 관료들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존슨은 네 가지 측면에서 계획합리성으로 대표되는 개발국가의 특성을 시장합리성에 기반한 규제국가의 특성과 비교한다. 첫째, 규제국가(시장합리성)가 효율성을 중시하는 데 반해 개발국가(계획합리성)는 효과성을 우선시한다. 둘째, 개발국가는 일반적으로 규제국가와 달리 외부효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개발국가는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부효과를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면 그 어떤 형태의 국가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외부효과를 다루게 된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면, 개발국가의 목적은 주로 경제성장에 맞추어져 있지만, 이를 위한 수단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16) 셋째, 개발국가에서 정책의 결정과 변화는 의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 내 관료들에 의해 논의되고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존슨은 만약 ‘고도성장’과 같은 개발국가의 목표가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다면 개발국가의 성과는 시장합리성이 지배하는 국가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한국 개발국가가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것도 경제성장이라는 개별국가의 목표에 대한 국민의 광범위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도 있다. 전후 국가가 경제계획을 주도하고 적극적 개입을 시도했던 제3세계의 개발국가들이 모두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발국가라는 국가 개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경우는 보편적이기보다는 예외적이었다.(117)
개발국가란 20세기 후반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국가가 단순히 경제에 개입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경제정책을 계획하고 고속성장을 주도한 국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개발국가는 어쩌면 해당 사회의 광범위한 대중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합의에 근거해서 어떠한 목적이라도 국가가 ‘계획’이라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국가로 정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더불어 개발국가에서 ‘사회적 합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개발국가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펨펠은 존슨의 개발국가론을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논제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개발국가론은 서구의 기준이 아닌 동아시아의 특성에 의해 동아시아 사회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118)
3. 생산주의 복지체제
생산주의 복지체제는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존슨의 개발국가의 특성 중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관계를 동아시아 복지체제에 적용시킨 개념이다. 존슨의 개발주의를 생산주의 복지체제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한 홀리데이의 정의에 따르면, 다른 복지체제와 구별되는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핵심적 특성은 ‘성장 지향적 개발국가와 경제정책에 대한 복지정책(사회정책)의 종속성’이다. 홀리데이는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와 생산주의 복지체제를 비교하면서, 자유주의에서는 시장이 우선권을 갖고 보수주의에서는 지위가 핵심이며 사민주의에서는 복지 그 자체가 중요하고 생산주의에서는 성장이 우선순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생산주의 복지체제의 특성은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어 있고 사회권은 최소한으로 보장되며 그 권리는 생산적 활동과 연계뙤어 보장되고 생산주의적 요소에 근거해 계층화가 강화되며 성장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다.(119) 경재정책에 사회정책이 종속되는 특성은 서구 복지체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동사이아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제4의 복지체제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제4의 독립된 유형으로 제기한 홀리데이의 생산주의 복지체제는 개발주의라는 특성에 근거해 동아시아의 고유한 복지체제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홀리데이의 생산주의 복지체제라는 개념은 이후 후속 연구들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개발국가와 사회정책의 (경제정책에 대한 종속성)이라는 특성이 동아시아를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와 구분하는 결정적 특성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둘째는 생산주의 복지체제가 통시적으로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특히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에도 생산주의가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고유한 특성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지의 여부와 관련된 쟁점이다. 마지막으로 생산주의 복지체제를 서구의 복지체제와 구분하는 방법론적 정합성과 관련된 논쟁이다.(120)
1) 쟁점 1: 생산주의는 한국 복지체제의 고유한 특성인가?
생산주의 복지체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한국(동아시아 국가들) 개발국가의 특성이 한국 복지체제를 서구의 복지체제와 구분하는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120) 한국이 생산주의 복지체제라는 서구 복지체제와 구분되는 제4의 독립적 유형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개발주의가 역사적으로 한국(또는 동아시아)만의 고유한 특성인지의 여부를 논증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존슨이 개발국가에서 제기한 산업정책의 우선성을 어ᄄᅠᇂ게 이해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다만 여기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개발국가를 다른 국가와 구별하는 고유한 특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비개발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과 개발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존슨에 따르면, 이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은 국가가 효율성이 아닌 효과성에 기초해 그 국가가 설정한 목표(일반적으로 고도성장이라는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구조를 계획하고 만들어나갔는지의 여부다. 개발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해 단순히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규제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산업구조를 조정해 필요한 산업을 장려하고 불필요한 산업은 퇴출하면서 국내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한다. 경제를 계획하고 주도하는 주체는 민간이 아닌, 잘 훈련되고 유능한 국가 관료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발국가의 특성이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에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인지를 질문해야 한다.(121)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정책을 (직접적으로 인민의 복지가 아닌) 다른 국가적 목적(예를 들어 경제성장)에 종속시킨 사례는 예외적이기보다는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121)
구딘, 헤디, 메펠스, 다이어벤도 모든 국가에서 복지체제는 사회적 평등과 통합은 물론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고 평가한다. 더욱이 전통적으로 복지국가의 의무라고 가정되는 여섯 가지 도덕적 가치(경제적 효율성, 빈곤 감소, 사회적 평등 진작, 사회통합 증진과 배제 척결, 사회적 안정, 자치 증진) 중 경제적 효율성(성장)이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이고 어떤 복지국가에서나 경제성장은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보놀리와 신카와 역시 모든 복지국가는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고 평화적인 계급 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생산주의 복지국가라고 평가했다.(122)
복지정책(사회정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은 선진 복지국가들만의 특성이 아니다. 피어슨에 따르면, 복지에 대한 생산주의적 관점은 남미 국가들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 특성이다. ··· 생산주의 복지체제와 다른 복지체제를 구분하는 중요한 논거는 국가에 의해 복지제도가 경제성장에 복무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느냐는 것인데,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이러한 현상은 어렵지 않게 목격되고 있다.
생산주의체제가 모두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생산주의체제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차이의 핵심은 경제와 복지의 상호성의 정도와 형식이다.(124) 스웨덴식 생산주의체제에서도 복지정책의 목적은 경제정책의 목적에 우선적으로 조응하지만, 경제정책의 목적 또한 복지정책의 목적에 조응하는 “순환적 생산주의체제”다. 반면 한국식 생산주의체제는 경제정책이 사회정책의 목적에 조응하지 않는, 복지정책의 목적이 경제정책의 목적에 일방적으로 복무하는 특성을 갖는 “일방적 생산주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단절적 생산주의체제: 경제정책과 복지 확대가 상호 관련성 없이 각각의 정치·경제·사회적 이유에 근거해 추진되는 경우. 남미가 대표적 사례.)
한국 복지체제가 생산주의 복지체제라고 주장하는 글들에서 인용되는 또 다른 중요한 논거는 사회보험의 제도화 과정에서 한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계급을 위한 산업재해보험을 먼저 도입했다는 것과 사회보험의 대상을 핵심 산업의 노동자로 제한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사회보험을 제도화할 당시에는 그 대상을 핵심 산업의 노동자로 제한했고 점차적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사회보험 도입의 순서도 산재보험을 먼저 도입한 것이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다.(125)
경제정책이 사회정책에 우선하는 현상을 한국 복지체제, 나아가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는 방식과 수준의 국가별 차이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지,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는지의 여부를 판단해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를 서구 복지국가들과 구분되는 생산주의 복지체제로 명명할 이론적·경험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복지체제에서 나타나는 생산주의적 성격은 유무의 문제가 아닌 수준의 문제이며 내용의 문제다. 생산주의를 강조하면서 동아시아만의 고유한 복지체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아시아와 서구를 구분하는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일지도 모른다.(126)
2) 쟁점 2: 한국 복지체제는 여전히 생산주의 복지체제다?
생산주의 복지체제의 지속성 여부를 둘러싼 기존 연구를 정리하는 것은 한국 복지체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준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한국 복지체제가 생산주의적 특성을 벗어났는지의 여부는 (연구자에 따라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한국 복지체제가 시민권에 근거한 복지체제로 이행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한국 복지체제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여전히 생산주의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국이 1997년 이후 명백한 복지제도의 개혁과 확대가 이루어졌음에도 개발국가라는 국가모델과 사회보험체계가 여전히 지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홀리데이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제도화되거나 확장된 몇몇 복지정책들은 한국 복지체제의 생산주의적 특성에 근본적 도전을 불러일으켰지만 외호나위기 이후 제도화된 복지정책의 복잡하고 심도 깊은 변화에도 ‘생산주의’는 여전히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강조한다.(127)
이들이 한국 복지체제가 여전히 생산주의 복지체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간명하다. 개발국가의 틀 속에서 복지체제를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보기에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이루어진 복지 확장도 결국 경제정책과 분리된 것이 아닌 경제적 요구에 의해, 경제적 목적(경제성장 또는 회복)에 기여하기 위해 제도화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연금 개혁의 경우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급여율을 낮추고 기여율을 높였다는 점에서, 시민권에 기반해 공공부조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실상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점에서 생산주의적 복지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도 한국 복지체제에서 생산주의가 지속되고 있다는 근거로 활용된다. 홀리데이는 복지체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생산주의 개념을 폐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평가한다. 홀리데이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복지개혁은 에스핑-앤더슨이 분류한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보다는 여전히 생산주의 복지체제에 더 잘 맞는다고 주장한다.(128)
펭과 권혁주도 한국 복지체제가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그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펭은 한국 복지체제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분명히 변화했지만 여전히 사회보험에 의존하는 복지모델은 변화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펭의 인식은 홀리데이와는 상이하다. 펭이 한국 복지체제가 변화하지 않았다고 제시한 근거는 한국 복지체제에서 사회보험모델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권혁주도 한국의 복지체제가 변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이 티트머스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제도주의 복지체제로 변화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권혁주는 개발국가 내에서 포괄적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새로운 주장을 한다. 한국과 대만이 경제 발전, 민주주의, 사회적 포괄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발국가의 포괄적 복지국가는 스칸디나비아의 포괄적 복지국가와는 상이한데, 개발국가의 포괄적 복지국가가 여전히 젠더 편향적이고 사회적 포괄보다는 (경제) 발전에 강조점을 두기 때문이다.(129)
반면 일군의 학자들은 한국 복지체제가 1997년 경제위기를 전후해서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김연명은 ‘생산주의’가 한국 사회정책의 초기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1997년 경제위기 이후의 더 연대적이고 재분배적인 한국 복지체제를 설명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1998년 연금 개혁은 비용 절감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생산주의적 의도에서 이루어진 개혁이 아니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기여율을 높인 것이 생산주의적 개혁이라면,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급여 축소 또한 생산주의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 자체가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생산주의적 속성을 유지·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130)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시민권적 권리에 기반해서 제도화되었으며 대상자 또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생산주의적이라고 볼 수 없고 사회서비스와 관련해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 저출산과 고령화 같은 인구학적 변화로 인해 잔여적이고 선별적인 특성이 점차 해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131)
다만 김연명도 한국 복지체제의 생산주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복지체제에 대한 생산주의의 설명력이 약화되었지만 한국 복지체제는 생산주의와 보호주의적 요소가 혼재된 새로운 형태라고 주장한다.(131)
한국 복지체제가 생산주의 복지체제로부터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다. 이 연구는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종속성이라는 생산주의 복지체제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고 주장한다.(131) 그러나 이 연구는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대한 종속성을 벗어났다는 경험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132)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수정된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라) 1997년 경제위기 당시 한국 정부에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권고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건강보험, 연금제도의 확대가 생산주의와 무관한 복지 확대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보다 더 신중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132)
··· 모든 복지체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고, 경제적 효율성은 모든 복지체제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다.(132) ···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내내 친복지 진영에서 주장했던 (그리고 지금도 주장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복지 확대와 경제적 효율성이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제기한 소득주도 성장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소득 주도형 성장 전략은 “임금주도성장 전략과 노동 친화적인 분배정책, 사회정책, 노동시장정책이 결합”되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면 경제적 효율성과 무관한 사회정책도, 사회정책과 무관한 경제정책도 존재할 수 없다.
복지정책이 경제정책과 무관하게 확대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미쉬라의 분절적 복지국가 대 통합적 복지국가) ···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특성이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생산양식’에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한 복지체제가 생산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133)
3) 쟁점 3: 생산주의 복지체제의 방법론
생산주의 복지체제 개념의 성립 여부는 생산주의 복지체제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생산주의 복지체제 논제의 가장 큰 난점은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종속성’을 가시화할 수 있는 양적(또는 질적) 지표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복지체제에서 경제와 복지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만약 생산주의가 복지체제를 구분하는 핵심 준거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종속성’이 여부의 문제가 아닌 수준의 문제가 되어야 하고, 수준의 문제가 된다면 어느 수준에서 생산주의 복지체제와 다른 복지체제를 구분할 것인지 그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생산주의와 비생산주의 복지체제의 ‘경제정책에 대한 사횢어책의 종속성’ 수준 간의 불연속성을 제시해야 한다. 에스핑-앤더슨의 유형론도 탈상품화와 계층화를 양적 지표화함으로써 복지체제의 세 가지 유형을 구분하는 불연속성을 가시화한 것이다. 구분해야 하는 것은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종속성 여부가 아닌 그 수준의 차이이며, 그 수준의 차이가 복지체제들 간에 불연속성을 갖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134)
또 다른 비판은 생산주의 복지체제를 서구의 세 가지 복지체제와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것이다. 한국(또는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많은 연구들에서는 한국 복지체제를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민주의로 대표되는 서구 복지체제와 구별되는 독립적 유형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34) 그러나 서구 복지체제와 생산주의 복지체제는 동일한 기준에 근거해서 비교되지 않았다. 에스핑-앤더슨으로 대표되는 서구 복지체제의 유형화가 탈상품화와 계층화를 기준으로 사용한 반면,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성립 여부의 준거는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종속성’이었다. 이러한 비교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서구 복지체제와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비교하면서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복지체제와 한국복지체제를 비교해서 한국 복지체제를 서구 복지체제와 상이한 복지체제로 유형화해야 할 근거를 보여주기를 원한다면 한국과 서구 복지체제를 비교하는 공통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생산주의를 지지하는 논자들도, 비판하는 논자들도 이러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동아시아 복지체제와 서구 복지체제를 비교한 최근의 연구들에서는 이 두 복지체제를 비교하는 공통의 기준을 제시하려는 시도를 했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동아시아의 복지체제를 다른 체제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서구 복지체제의 유형화가 그랬던 것처럼 동아시아 복지체제 역시 동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에 근거해 비교의 준거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135)
4. 새로운 시도
허드슨과 쿠너는 생산주의와 보호주의라는 차원으로 복지국가의 재유형화를 시도했다. 보호주의 차원의 변수로는 고용과 소득보장 프로그램을 포함했고, 생산주의 차원의 변수로는 교육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포함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생산주의와 보호주의가 혼합된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결과는 보편적 복지체제로 분류되는 스칸디나비아 4개국도 한국과 같이 생산주의와 보호주의가 긴밀하게 결합된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생산주의와 보호주의라는 공통의 기준으로 동아시아와 서구 복지체제를 분석했을 떄 한국은 세 연구 모두에서 순수한 생산주의 복지체제로 분류되지 않았다.(136) 한국 복지체제를 서구와 구별되는 생산주의 복지체제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경험적으로 지지되지 않았다. 대신 생산주의 논의를 수용해 복지체제를 유형화한 결과 복지체제는 에스핑-앤더슨이 제시한 세 가지 유형과는 상이한 모습으로 유형화되었고, 각각의 유형을 구성하는 국가들 또한 세 가지 유형과는 상이했다. 에스핑-앤더슨의 세 가지 복지체제 유형과 제4의 복지체제 유형이 (의도한 결과는 아닐지 몰라도) 각 복지체제의 지리적 위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던 것에 비해 보호주의와 생산주의를 기준으로 한 유형화는 각 복지체제의 지리적 유사성과 관련성이 없었다. 비록 브로델의 지적처럼 지리가 장기적 관점에서 한 사회의 구조의 실제를 볼 수 있도록 해줄 수도 있지만, 복지체제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데 동아시아 복지체제와 같은 지리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137)
5. 복지국가의 주체
한국 복지체제를 만들고 확대한 주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평가가 논쟁의 핵심이다. 한국 복지체제의 특성을 개발국가와 ‘경제정책에 대한 사회정책의 종속성’에서 찾는다는 것에는 한국 복지체제를 제도화하는 주체 또한 개발국가를 형성한 주체와 동일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를 보면 개발국가를 주도했던 (군인과 관료로 대표되는) 국가만이 아닌, 노동, 농민, 중간계급 등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137) ··· 진보적 시민사회와 노동계급의 역할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복지 확대 과정에서만 나타난 것도,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나타난 것도 아니다. 일부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역할은 이미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도 생존권 요구라는 형태로 가시화되었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생존권 요구는 노사분규의 급격한 증가로 나타났다. ··· 기층 민중과 중간계급의 연대는 이미 197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층 민중들의 생존권 요구에 중간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의 참여와 지원이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개발독재 정권 하에서도 복지정책의 제도화는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한 기층 민중들과 중간계급의 투쟁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한국 복지체제를 생산주의 복지체제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한국 역사에 흐르는 기층 민중과 중간계급의 생존권을 둘러싼 지속적 연대투쟁의 역할을 간과하는 것일 수도 있다.(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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