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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것/일기, 단상, 메모

‘우리’라는 환상과 거부의 강박

우리라는 환상과 거부의 강박

나는 우리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나는이라는 말도 가능한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꼭 사용해야 할 때는 를 쓰지 결코 우리를 쓰지 않는다. 모든 생각은 어디까지나 의 것이지, 결코 함부로 우리의 것임을 들먹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과학 논문이나 저서에서도 흔히 우리는 ~~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거나 우리는 ~~이라고 불러야 한다같은 표현을 접한다. ‘우리나라라고 쓰인 경우도 흔하다. 항상 거슬린다. 지나치게 꼬인 것 때문인지, ‘수많은 입장의 교차 속에서 쉽게 우리를 말할 수 없다는 페미니즘의 가르침이 깊게 남아서인지’, 때로 우리를 쉽게 쓰는 이들의 자의식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내가 우리라고 생각하며 쓴 사람들이 나를 결코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소심함 또는 조심스러움은 없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과 나는 우리가 되는가. 왜 당신에게 나는 쉽게 당신의 우리가 되는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어 화자로서 한국어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가. 그때의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나와 당신은 어떤 측면에서 우리가 될 수 있는가.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쉽게 쓰인 우리라는 표현을 저자의 무감각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우리라는 표현을 사회과학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읽던 책 때문에 문득 든 생각이지만, 내가 앞으로 계속 글을 쓰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쓰지 않을 단어다. ‘우리라는 낱말은 따뜻해 보이지만, 손을 대면 얼어붙고 마는 무감각의 언어다. 그렇기에 강박적으로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제발 나를 쉽게 당신의 우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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