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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것/일기, 단상, 메모

메모(2020년 9월 15일)

페미니즘의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선언은 역설적이다. 인간은 하나의 종이지만, 이때 인간의 함의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덩어리째로 있던 ‘여성’이라는 존재를 각자의 존엄을 지닌 ‘인간’이라는 존재들, 즉 개별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군가도 인간이다’라는 목소리는 역설적이되, 모순적이지 않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신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들을 덩어리로 여기지 말라’에 관해 쓰고 있으며, 부디 그 활자들이 증발하지 않고 새겨지길 바란다. 여성에 관해 발생하는 많은 일들이 (원론적이지만) 여성을 인간으로 보았을 때 발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장애인에게 나타나는 무수한 문제들이 그들을 인간으로 마주했을 때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읽고 쓸수록 더욱 많이 느끼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나와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존엄한 개별적 인간이 아닌 덩어리 존재들로 바라보아오고 있는가. 덩어리진 채 질식해가는 이들의 비명은 침묵처럼 고요하여, 얼마나 듣기 어려운가. 생각이 돌아와 멈추는 문장.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서발턴의 발화 가능성이 아닌 비-서발턴들의 들을 준비에 관한 것이라는 그 말.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곱씹어도 어렵고 또 어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