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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것/범죄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와 증오범죄(hate crime)

강남역 사건은, 명명 자체가 쟁점이 된 사건이었다. 우리는 그 대립의 흔적을 몇몇 오픈소스 온라인 사전에서 간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데, 각각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위키백과),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나무위키), “강남역 여성표적살인”(페미위키)으로 명명하고 있다. 차례대로 사건이 발생한 장소, 경찰의 공식적 결론, 페미니스트 관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처럼 강남역 사건은 단수의 합의된 명명이 아닌 복수의 명명들에 의해 여전히 경합되고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혐오범죄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가장 뚜렷한 대립을 보여 왔다.

  이전 글[각주:1]에서 검토한 사실들을 정리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라고 주장했는데, 경찰을 비롯한 형사사법기관은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임을 근거로 혐오/증오범죄(hate crime)가 아니라고 답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동문서답은 여기서 검토할 몇 가지 질문들과 맞닿아있다. 첫째,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와 혐오/증오범죄(hate crime)는 무엇인가. 이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둘째, ’정신질환() 범죄‘, ’묻지마 범죄는 무엇인가. 이는 과학적인 규정인가. 셋째,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임을 근거로 여성혐오(misogyny), 혐오/증오(hate) 범죄임을 기각한 형사사법기관의 판단은 타당한가? 이는 곧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 또는 혐오/증오범죄(hate crime)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재고해보는 것이다.

 

1)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각주:2]와 증오범죄(hate crime)

  여성혐오(misogyny)와 혐오/증오(hate) 사이의 혼란은 부분적으로 혐오라는 단어 자체에서 야기된다. 한국어 혐오(嫌惡)싫어하고 미워함으로 정의되는데[각주:3], 영어에서 혐오에 해당하는 어휘는 좋아하지 않음에서 불쾌감, 혐오, 증오(dislike, hate, disgust, loathing, revulsion, aversion) 등으로 다양하다(이나영, 2016b: 157). 영어에서는 세부적으로 분명하게 구별되는 다양한 층위의 개념들이 한국어에서는 넓은 의미를 띠는 혐오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다.

 

(1) 증오범죄(hate crime)

  먼저, hate는 통상 혐오 또는 증오로 번역되어왔다. 혐오표현의 규제에 관해 논의한 홍성수(2015)“'hate speech‘의 개념을 넓게 정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hate‘를 차별적인 의견이나 신념까지 포괄할 수 있는 혐오‘”로 옮겼다. 이와 달리, hate crime을 분석한 조계원(2017)은 그 번역어로 증오범죄를 선택했다. 개인의 편견이 혐오표현이나 차별을 넘어 폭력행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동기가 필요한데, 혐오보다는 증오가 더 강한 적대감을 수반하는 표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조계원, 2017: 66). 홍성수(2015) 또한 증오에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격앙되고 불합리한 비난, 적의, 혐오의 감정”(290)이 담겨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는 두 연구자의 분석 대상이 표현(speech)과 범죄(crime)로 상이하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인데, hate가 수식하는 대상에 따라 다르게 번역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hate crime은 소수자 집단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격렬한 적대감으로 동기화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증오범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각주:4]

  증오범죄(hate crime)는 인종, 종교, 장애, 섹슈얼리티, 젠더, 국적, 민족성 등에 대해 가해자가 지닌 편견이 동기가 된 (형사) 범죄이다(홍성수, 2016: 11; 조계원, 2017: 65). 따라서 증오범죄를 식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선별한 기준이 그 피해자가 특정 속성을 지닌 집단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여부이다. 이는 피해자의 대체 가능성, 즉 혐오/증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든, 누구든 범죄의 피해자로 선택될 수 있음(허민숙, 2017: 86)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대체 가능성의 핵심은 그 효과로서 피해자와 그 집단이 느끼게 되는 취약함과 두려움이다(허민숙, 2017: 87). 이외에도 가해자가 편견이나 증오를 갖게 된 원인이 불명확한 것, 원인 제공의 결여, 범행 동기가 부재하거나 찾기 어려운 것, 그럼에도 폭력의 수준은 극단적이라는 것 등이 증오범죄 판단의 근거 요인이 될 수 있다(조계원, 2017: 69; 허민숙: 2017: 86-93).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핵심적인 범행 동기가 되는 만큼, 증오범죄가 초래하는 해악은 일반적인 범죄보다도 더 광범위하고 심각할 수 있다. 증오범죄의 해악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이하 조계원, 2017: 68-71; 허민숙, 2017: 81-82). 첫째, 피해자 개인의 측면이다. 무엇보다 증오범죄는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친다. 또한 증오범죄는 피해자가 지니는 정체성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데, 이는 대체로 타고난 것이며 바꾸기 어렵다. 따라서 피해자는 해당 정체성을 갖고 있는 한 언제든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약성을 느끼게 되고,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받게 된다.

  둘째, 피해자가 속한 집단의 측면이다. 증오범죄는 피해자와 같은 집단적 특성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에게 자신도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또한 언제든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위협을 느끼게 만든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며, 특정 시간 및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집단 전체의 취약성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범죄는 피해자가 속한 집단에게 그들이 지닌 특성 때문에 그들은 동등한 가치와 권리를 지닌 존재로 여겨질 수 없으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상징적 의미를 형성하고 전달한다. 공포는 심리와 행동에 제약을 가져 오며, 피해 집단의 종속적 지위를 유지시키는 효과를 산출한다. 셋째, 전체 사회의 측면이다. 증오범죄는 피해자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키며, 사회 통합을 훼손하고 방해한다.

 

(2)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

  misogyny는 주로 여성혐오로 번역되는데, ‘혐오라는 번역어 때문에 hate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오해되곤 한다. 특히 여성혐오가 대중적으로 환기되기 시작한 것이 2010년대 들어 일베로 상징되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에 대한 적대와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해 방식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은 hate crime의 번역어로 증오범죄와 혐오범죄가 혼용된 상황과 결합되어, 여성혐오(misogyny)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형사사법기관이나 다수의 사람들에게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혐오범죄(hate crime) 사이의 혼동을 초래했다.

  여성혐오(misogyny)(여성에 대한) 혐오/증오(hate)보다 외연이 넓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한국어 혐오가 넓은 의미 영역을 포괄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움과 싫음을 향하는 감정이다. 이에 반해, 여성혐오는 특정한 감정이라기보다는 불평등한 젠더 위계를 내포하는 억압의 기제이자 현실의 운용원리(윤지영, 2016),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한 의미체계라고 할 수 있다.

  윤지영(2016: 209-210)은 여성혐오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개념임을 지적하며, 다섯 가지 측면을 설명한다. 이분법적 범주화(숭배/낙인)를 통해 여성들 내부에 위계질서를 도입하는 권력기제, 여성 신체를 해부학적 시선으로 관통함으로써 계량화와 세분화를 통해 여성을 육체성으로 환원하고, 그 가치를 신체자본으로 축소하는 경향, 성적 객체화, 사물화 등 여성을 욕망하는 특정한 방식, 남성이 여성보다 심리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강해야 하며(우월성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가 비하와 멸시[각주:5], 혐오/증오뿐만 아니라 숭배와 칭송, 여성의 육체() 강조, 여성에 대한 특정한 욕망 방식, 우월성에 기반한 보호·통솔·통제 등 양가적이며 다층적인 요소들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칭송이든, 멸시든 여성혐오의 효과는 비인간화(Holland, 2006; Bitzer, 2015: 3; 이나영, 2016b에서 재인용)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혐오는 성차별 사회와 구조의 원천인 것이다(이나영, 2016b: 159).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명명하려는 흐름 속에는 가해자의 진술(‘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과 사건 정황을 직접적인 근거로 증오범죄(hate crime)임을 주장하는 측면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동시에 비록 법적, 범죄학적 근거를 갖는 개념은 아니지만, 불평등한 젠더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여성혐오범죄(misogyny crime)’의 명명이 나타났다. 이때 여성혐오(misogyny)’는 다층적 성차별구조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젠더폭력에 대해 사회의 성찰을 요구하는 언어이자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비가시적인 구조적·상징적 폭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적시, 양자의 연결고리로 존재하는 불평등한 젠더 질서에 대한 대중적 인지를 요청하는 전략(이나영, 2016b: 165, 176)이었다


  1. https://createideal.tistory.com/29 [본문으로]
  2. 본 연구에서는 misogyny를 여성혐오로 번역한다. 대중적으로도 여성혐오라는 번역어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남역 사건에서의 ‘여성혐오범죄’ 명명도 misogyny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타 개념들, 특히 hate(혐오/증오)와의 차이를 설명할 때는 필요에 따라 미소지니(misogyny)로 쓰기도 했다. [본문으로]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2018.03.03.에 마지막으로 검색 [본문으로]
  4. 아래부터는 hate crime을 증오범죄라는 명칭으로 단일화하여 서술할 것이다. 또한 hate crime을 혐오범죄로 번역한 연구들을 인용하는 경우, 통일성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증오범죄로 수정했음을 알린다. [본문으로]
  5. 우에노 치즈코(2012)에 따르면, 멸시와 비하의 측면 역시 단일하지 않다. 여성혐오는 이분법적인 젠더 범주에 따라 ‘남성’에게는 집단적 주체화와 연대로, ‘여성’에게는 집단적 객체화·타자화, 자신과 여성 집단에 대한 검열과 혐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