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학기 빈곤과 불평등 북 리뷰]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빈곤, 통치하는 국가
-『가난을 엄벌하다』(로익 바캉, 2010)를 중심으로
1.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빈곤
빈곤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지만, 바로 그 만연함과 자연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지속적인 특성이 빈곤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게 했다. 근대 이전까지는 신분이 사회를 가로지르는 가장 거대한 축이었고, 따라서 빈곤은 하층 신분의 전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서구사회에서 빈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세기에 다다라서였고, 이후 복지국가의 확장, 사회과학연구의 확대와 함께 빈곤에 관한 연구도 크게 증가해왔다. 현대 빈곤 연구는 빈곤의 정의, 측정, 데이터, 접근법, 담론과 이론, 그에 따른 정책, 프로그램 등의 측면에서 매우 전문화, 다원화되었고 수많은 연구물들이 축적되고 또한 생산되고 있다(김윤태·서재욱, 2013).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빈곤의 만연함에 비해 연구물이 극히 적었던 불균형이, 현대 사회에서는 연구물의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정체하거나 증가하는 불균형으로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빈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부각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빈민이라는 집단은 그보다 일찍부터 ‘관리’의 주요한 대상이었다. 국가 지배층에게 빈곤한 하층민들은 언제든 폭도로 변할 수 있는 위험 집단이었고, 산업화시기에는 ‘노동자’로 재탄생해야 할 집단이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구제는 다양한 명분의 외양을 띠고 있었음에도 위험을 관리하고 노동자의 신체를 생산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여기서 빈곤과 구분되는 ‘(특정한 유형의) 빈민’이라는 집단이 통치의 대상으로서 드러난다.
영국의 역사는 ‘빈민’이라는 인구집단이 통치되는 방식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1601년 종합된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인클로저(enclosure)와 농노제도의 붕괴, 흉작으로 인한 궁핍 증대로 야기될 농촌사회의 불안정, 그에 따른 집단 저항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당시 지배층들의 대응을 집약한다. 이미 이 시기부터 빈민은 노동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구분되었다. 국가에 의해 노동 무능력자로 판정된 이들만이 구제의 대상이 되었고,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이들에겐 노역이 부과되었다. 또한 정주법을 부과하고 노동을 거부하는 이를 감옥에 수용함으로써 부랑자의 발생을 차단하고자 했다. 국가의 시선에서 부랑자는 ‘노동하는 신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시에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불안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세리자와 가즈야(2014)는 1918년 오사카에서 실시된 방면위원제도를 “인간의 생존을 배려함으로써 사회의 안전을 달성하고 규율권력을 동원하여 빈곤한 이들의 위험성을 억제하고자 한 사회관리 장치”로 규정하는데, 그 원형을 이미 16세기 이후의 영국 구빈법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빈곤한 생활 상태는 피지배계급 대다수에게서 공통적인 것이었다. 의존이 타인을 위해 일함으로써 자기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로 대다수의 임금노동자, 농노, 노예에 해당되는 일반적인 ‘종속’의 사회적 관계, 정상적인 조건을 지칭하는 용어였다(프레이저, 2017: 125-126)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배계층에게 빈민은 ‘위험한 집단’이자 ‘갱생의 대상’이었지만, 그러한 담론이 사회 전반에 보편적으로 확산되어있었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신분제 사회에서 지배계층은 정당성에 대한 동의를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빈민들에게 노동과 투옥을 부과할 수 있었다.
‘사회계약론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는 이전처럼 자의적으로 형벌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가령 18세기를 지배했던 고전적 형법이론은 범죄자의 형상이나 별도의 종을 상정하지 않고, 하나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형벌인homo penalis의 존재를 상정했는데, 형벌인은 계약의 주체인 시민 자신이며,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잠재성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파스퀴노, 2014: 347-349). 여기서 상정되는 것은 처벌 능력의 주관적[주체적] 근거를 구성해주는 ‘자유의지’인데, 그 본성상 자유의지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된 능력이며 따라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범죄를 범할 수 있다고 전제되었다(파스퀴노, 2014: 349). 이는 국가가 존재가 아닌 행위만을 처벌할 수 있으며, ‘법-범죄-처벌’의 삼각형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형벌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명시한 것이다. 이처럼 시민의 자유의지와 합리적 판단을 전제한 고전적 형벌질서를 구성하던 두 개의 주요 장치들은 감옥과 ‘위하’(위협, 만류) 혹은 ‘억제를 향한’ 개입이었다(파스퀴노, 2014: 349).
하지만 19세기 초반 들어 서유럽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정의된 빈곤이 사회 문제가 등장하는 표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고전 정치경제학으로부터 자신을 구분 짓고자 한 사회경제학은 사회적 빈곤 1의 문제를 그들의 핵심 논의로 삼게 되었는데(프로카치, 2014), 이는 학문 영역에서 ‘빈민’의 통치가 정초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회경제학에서 빈곤과 사회적 빈곤은 구분되는 것이었다.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물로서의 빈곤은 사회적 빈곤 담론에서 공격이나 제거의 대상이 아닌 산업사회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프로카치, 2014: 237). 이와 달리 사회적 빈곤은 대도시가 산업으로 끌어들였지만 정기적으로 고용할 수 없는, 그리하여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폭도의 전조 수준으로 강화된 빈곤층이자 도시 군중의 거대하고 모호한 인상이 강조되는 사회적 위험의 이미지였다(프로카치, 2014: 236-237). 즉, 산업자본주의 초기에 빈곤은 자연적인 질서로 여겨졌지만, 빈곤이 생산해내는 구체적인 실존으로서의 ‘빈민들’은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 집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길버트법과 스핀햄랜드법의 원칙을 비판하며, 노동 능력에 따라 빈민을 구분해 노등능력자의 원외구제를 중지하고 작업장 노역을 강제하고, 부랑자를 대거 처형함으로써 빈민을 노동자로 만드는 동시에 저항의 위험을 제거하고자 한 신구빈법은 당시 지배계층의 관심을 잘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산업시대의 의존은 경제적·법사회적·정치적 의미에서 분화되었고, 도덕적·심리적 용법이 탄생했으며, 노동자에 대한 부정형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프레이저, 2017: 128). 또한 이 시기 의존의 도덕적·심리적 용법은 자국의 극빈자와 가정주부, 식민지의 원주민과 노예에게 작용해 그들의 경제적·법사회적·정치적 의존을 정당화했다(프레이저, 2017: 131-134). 국가와 자본에게 ‘공장에서 규칙적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아닌 집단들은 무능력하거나 의존적이거나 위험한 집단이었다 2.
하지만 기실 사회적 빈곤(층)은 이제 막 정교화되고 있던 사회화 기획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다양한 하위 집단들의 “신체적·도덕적 습성들의 집합”을 표지하는 반사회적이고, 자본주의의 자연적 질서에 있어 ‘부자연스러운’ 장애물/방해자라는 허구적으로 균질화된 집단(프로카치, 2014: 235-245)이었다. 빈민에 대한 구제는 통치의 수단, 즉 인구 내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부분을 제어하고 그 외 다른 인구 집단을 개선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프로카치: 2014: 225).
‘사회적 빈곤’에 대한 통치는 형법과 범죄 이론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1870-80년대부터 고전적 형법 이론의 핵심 요소들을 뒤집고 나타난, ‘실증주의 범죄학’은 범죄자를 정신적·도덕적으로 정상이 아닌 비정상인, 별도의 인종으로서의 범죄인homo criminalis으로 규정했고, 이들의 범죄행위는 그들이 지닌 사악한 본성(범죄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파스퀴노, 2014: 346-349). 사회조직체 안에 종의 다양한 진화 단계가 공존할 수 있으니, 사회는 상이한 본성들의 혼합물이라는 다윈주의 담론은 이들 범죄인을 진화에 뒤쳐진 사회체의 배설물이자 쓰레기 같은 존재로 인식할 수 있게 했다(파스퀴노, 2014: 349/357). 문제는 범죄학의 계보학적 선조에 괴물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이미 더불어 사는 법을 깨우쳤던 교정 불가능한 아이들, 변태, 동성애자, 매춘부, ‘위험한 계급들’로서의 빈민 대중 등의 인간형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파스퀴노, 2014: 360-362).
19세기를 거치며 국가 행정, 사회경제학, 형벌 이론과 범죄학 등의 지식담론, 실천을 통해 ‘빈민’을 포함한 일련의 집단들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자 범죄인이라는 인종의 실례가 되었다. 이로써 ‘사회학적’ 혹은 ‘실증주의적’ 형벌 학파의 담론은 ‘범죄(인)이라는 병인’으로부터 ‘사회의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지식으로 구성된다(파스퀴노, 2014). 일종의 병균으로서의 범죄인들은 교정이 불가능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에 맞서 사회를 방어하려면 범죄의 근원 자체를 제거하는 ‘무해화’가 수반되어야 했다(파스퀴노, 2014: 353/356).
이러한 ‘무해화’는 감금과 단종이라는 조야한 예방적 테크놀로지로 이어졌다(카스텔, 2014: 408). 범죄인은 별도의 인종으로 여겨졌기에 고전 정신의학 테크놀로지의 장 속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고전 정신의학에서 ‘리스크’는 폭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정신질환자가 체현한 위험을 의미했다 3(카스텔, 2014: 407). 이러한 위험은 예측 불가능한 것인데, 개입을 꺼렸는데 위협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분명한 오류가 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 때는 개입하는 것이 나은 것으로 여겨졌다(카스텔, 2014: 408). 이러한 논리 구조는 배제된 위험 집단에 대한 무해화를 정당화했다.
1890년대에 들어서 찰스 부스와 라운트리 등에 의해 빈곤이 ‘연구’의 주제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사회권과 복지국가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다. 빈곤과 빈민에 관한 접근에서 일종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빈민이라는 집단은 의존, 무기력, 위험, 폭력, 범죄, 정신병리 등으로 규정되면서 관리, 감시, 통제, 격리, 무해화의 대상이었고, 그것이 빈곤을 묻지 않는 국가가 ‘빈민’을 통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빈곤 담론은 사회에 퇴적층처럼 쌓이게 됐고, 사회권과 복지국가라는 포장도로가 빈민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동안은 감춰지게 됐지만, 그 길이 파헤쳐지면 언제든지 그 도로를 뒤덮어버릴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닌 것이었다.
2. 워크페어 국가와 형벌국가
전후 약 30년 간 서구 복지국가는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냈다. 적어도 이 30년간은 빈곤이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규정되었고, 빈곤을 개인책임화하거나 빈민을 병리화, 범죄화하는 담론의 영향력도 약해졌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의 발전은 빈곤율을 급감시켰다. 하지만 197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그 빛이 무색할 만큼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이 시기 급부상한 반(反)복지국가 철학, 이론, 이데올로기가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다. 가족의 가치, 사회통합, 위계질서, 집단주의, 도덕주의, 개인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는 신보수주의와 개인주의, 자발성, 경쟁, 능력주의, 개인이익의 극대화,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는 각각 다른 동기와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개인의 근로동기를 떨어뜨리고 복지의존성(의존문화)을 조장하는 관대한 공공부조 프로그램과 복지국가를 공격했다(조영훈, 2014: 10/27).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복지국가라는 두껍지 않은 토양 밑에 깔려있던 빈곤과 빈민에 관한 담론을 다시 불러왔다. 복지국가를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사 중 하나가 빈민의 부도덕함이었기 때문이다. 두 이데올로기 모두 빈민들의 근로동기 약화와 복지 의존성을 초래하는 공공부조의 문제를 수급자격의 엄격화, 낙인 강화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신자유주의는 국가독점에 의한 개인과 시장의 자유 침해, 근로동기 약화가 초래하는 경제효율성의 저하 등을 비판하며, 복지국가의 대안으로 국가독점의 해체와 시장의 활성화를 제시했다(조영훈, 2014: 28). 이에 비해 신보수주의는 관대한 복지국가와 특히 공공부조 프로그램이 가족 해체(와 여성 가구주 가구의 증가), 도덕적 해이, 사회적 의무감의 약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하며 근로윤리의 회복, 노동의 강제, 핵가족의 회복을 위해 복지국가를 개혁하고자 한다(조영훈, 2014).
따라서 두 이데올로기의 목적 역시 상이했다. 신자유주의 복지 비판의 핵심 목표가 재분배 정의를 내세우는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것이라면, 신보수주의 복지 비판은 복지국가를 근로윤리, 정상가족의 유지, 사회적 의무감의 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가부장주의적인 형벌국가로 개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언뜻 상충하는 듯 보이는 두 이데올로기가 공존할 수 있던 것은 그것이 각각 다른 대상으로 향함으로써 총체적인 효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이 총체적인 효과의 가장 분명한 산출물의 하나였다. 신자유주의의 자유방임과 불간섭주의는 ‘상층’을 위하여 존재하며, 신보수주의의 개입과 불관용은 ‘사회의 쓰레기들’인 빈곤층을 향했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은 복지국가의 후퇴, 노동시장의 악화, 개인적 책임 담론의 확산, 형벌국가와 엄벌주의의 팽창, 워크페어와 노동윤리의 강압과 함께 이루어졌다. 아이리스 영(2013)은 개인적 책임의 담론이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왜곡하며, 사회구조적 부정의를 비가시화하고, 빈곤의 책임을 오직 빈자에게만 제한함으로써 구조적 부정의에 가담한 중산층과 부유층의 존재를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 복지 정책은 점점 비정규직화되고 불안정해지는 임금 노동이 위치한 노동시장과 경제구조는 방기한 채, 빈민이 공공부조 수급을 위해 노동 조건을 ‘묻지 않고’ 일하게 만들었다.
‘개인적 책임’은 ‘일’과 ‘가족’에 연관돼 있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타인이나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해결한다는 뜻이다(영, 2013: 46). 이는 곧 개인이나 가족이 그들 행위의 결과를 내면화해야 하며, 선택의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피해나 불이익을 당했더라도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도덕적 권리가 없음(영, 2013: 46)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의존은 도덕적·심리적 용법이 보다 강화되고, 개인적 특징에 훨씬 더 초점이 맞춰지면서, 일종의 (정신)병리적 현상으로 규정되었다 4(프레이저, 2017: 141-148). 더욱이 신보수주의의 공격과 ‘개인적 책임’의 주문, 의존이라는 비난은 모든 이들에게 균질하게 향한 것이 아니라 특정 인종과 젠더에게 불평등하게 가해졌다.
바캉은 하비를 비롯한 논자들이 신자유주의 개념을 시장원칙의 일종이라는 ‘피상적인’ 경제학적 관점에 치우쳐서만 해석한다고 비판하는데,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경제적인 것으로서 규제 완화, 자본의 유동성 강화, 민영화, 무역자유화 등 시장친화적 정책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이다(조연민, 2014: 465). 그러나 이러한 개념정의는 신자유주의의 주창자들의 담론과도 차별성이 없을 뿐 아니라 내용을 불충분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신자유주의의 교리들이 작동하는 과정을 통해 그 제도적 장치와 상징적 구조 모두를 포괄하여 기술할 필요가 있다(조연민, 2014: 465). 특히 당시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이 ‘신자유주의’로 뭉뚱그려졌지만,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공존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환을 개인적 책임의 강조, 워크페어, 형벌국가라는 틀에 기반을 둔 ‘두터운’ 개념정의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캉은 1980년대 말 미국에서 등장한 무관용 정책을 대표적인 엄벌주의 현상으로 지적하며, 형벌(국가)의 확장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장 경제의 재편, 복지국가의 쇠퇴, 빈곤과 불평등의 확대와 함께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바캉, 2010). 그는 극화된 도덕주의와 개인의 책임성을 주문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사회 불안을 형벌로서 통제하는 “형벌국가”를 통해 강화된 결과를 엄벌주의 5로 이해한다(추지현, 2014: 48). 1980년대 영미 사회에서 하필 복지 수혜자, 싱글맘, 불법 이민자 등이 엄벌주의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은 이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위험’과 갈등의 축으로 과잉 결정된 자들이기 때문이다(Garland, 2002; 추지현: 2017: 166에서 재인용).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기에 팽배한 사회적 불안은 공공장소에서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대상들(실업자들, 노숙자들, 마약 중독자들, 이민자들 등)에 투영되었는데, 복지가 부정되고 후퇴한 자리를 노동과 형벌이 차지하게 되는 순간, 국가의 부조 대상이었던 집단이 일순간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전화하게 된 것이다(조연민, 2014:495). 거리를 활보하는 ‘위험한’ 범죄자들을 사회적・도덕적 불안정의 주범으로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복지 정책의 수혜를 받으면서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로 묘사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부는 워크페어로의 전환과 형벌제도의 강화라는 두 가지 전략 모두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조연민, 2014: 482). 빈민들은 노숙인, 마약 및 알코올 중독자, 이민자, 정신질환자 등의 외연으로 인식되고, 병리화·범죄화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함께 동반된 사회적 불안정의 상징이 된 것이다. 복지국가 발전 이전에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빈민 통치의 담론’이 익숙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했다.
바캉은 『가난을 엄벌하다』에서 경제국가의 소멸, 사회복지국가의 약화와 함께 이뤄진 형벌국가의 강화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사회복지와 형벌 제도를 연계한 치안 정책은 점증하는 사회 불안 및 그로 인한 하층 계급의 불안정에 상응, 응징하는 정치 프로젝트로, 형벌 업무의 확장은 국가의 사회적 역할은 줄이되 국가의 필요성은 강화하는(바캉, 2010: 28/36)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이때 복지 축소, ‘개인의 책임성’을 주문처럼 외우는 도덕적 개인주의, 전체적으로 열악해진 노동환경, 계급 및 인종 간의 심한 차별, 도심 게토화로 인한 불안이 형벌이 통제하고자 하는 동시에 가속화하고 강화하는 사회의 불안이었다(바캉, 2010: 29). ‘범죄’에 대한 담론들은 이를 은폐하며, 형벌 확대를 통해 최하층 계급의 사회적 불안정으로 인한 도시 와해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의 무능을 합리화했다(바캉, 2010).
신자유주의의 안착에 있어서 사회정책과 결합한 형벌정책이 도시 경계인 집단과 빈곤층을 배제·통제하는 통치전략으로 등장하는데, 바캉에게 이는 신자유주의 ‘국가형성’의 일환으로 정의된다(조연민, 2014: 465).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형사사법체계는 독자적이고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형성된 동시에 그 재생산을 담당하는 국가전략의 하나이며, 그 형성과 작동에 계급구조의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6(바캉, 2010; 조연민, 2014). 형사사법체계의 주된 통제 대상은 지극히 선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권력층에 의해 손쉽게 ‘불안정한 집단’으로 규정되는 빈곤층이 그 객체가 된다(조연민, 2014: 449).
이처럼 신자유주의 형벌국가는 자본주의 축적 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빈곤층을 통제하고자 하는데, 형벌국가의 입장에서 빈곤은 관리되기 위해 범죄화될 필요가 있으며 7, 범죄-빈곤의 악순환의 이면에는 범죄자의 개념정의가 매우 선택적으로 구성되는 현실이 존재한다(조연민, 2014: 488/493). 범죄 및 범죄행위는 합법성의 외관을 취득하지만, 실제론 계급 편향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조연민, 2014: 491). 신자유주의-형벌주의 국가는 그러한 ‘범죄’에 대한 담론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를 은폐하는 동시에 확대재생산하고, 불평등과 불안정, 범죄를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규정한다(바캉, 2010).
1993년 당선된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 시절의 경찰국장 윌리엄 브래튼은 ‘톨레랑스 제로’ 정책을 치안 업무에 적용해 조직을 개편했는데, 이는 경찰 및 치안 인력 증대, 업무 결과의 통계화와 수시 보고, 정보 체계의 강화와 불관용 경찰 활동 방식이었다(바캉, 2010: 45-47). 바캉은 이 뉴욕 치안 모델이 더 큰 공권력의 실체, 즉 포스트 포드와 포스트 케인스 사회 이후 웰페어에서 워크페어로의 전환으로 인해 축소된 복지,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분으로 한 저임금 노동의 보편화라는 더 크고 심각한 문제를 감추고 있다(바캉, 2010: 13)고 보았다. 이러한 톨레랑스 제로의 독트린이 빈민에 대한 치안 및 형벌 업무 법제화의 구실이 되었고, 국가적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선언은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의 사회적경제적 원인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바캉, 2010: 50-51). 톨레랑스 제로 정책의 타깃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복지국가한테도 버림받은 빈민층이었다(바캉, 2010: 60).
바캉은 1970년대 시작된 사회적·인종적 격변(일련의 사회운동들) 이후 미국 형벌 제도에 나타난 5가지 주요 특징을 설명한다(바캉, 2010: 99-113). ➀수감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60년대 미국의 수감 인구는 규칙적으로 1퍼센트 정도의 감소율을 보이면서 1975년 38만 명까지 떨어졌다. 당시는 ‘탈감옥’, 대체 형벌 혹은 ‘위험 범죄자’ 정도만 수감시켜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한창이었을 때다. 그런데 하강하던 수감 인구 곡선이 10년 후에는 74만 명, 1995년 150만 명, 1998년에는 2백만 명에 이른다. 1990년대만 8퍼센트에 가까운 연간 성장률을 보였다. 수감 인구가 15년 동안 세 배로 늘어난 것은 그 어떤 민주사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현상이다. 더욱이 그 기간에 범죄 건수는 거의 일정하다가 서서히 감소했다. 수감률은 1997년 10만 명당 약 650명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는 ‘감옥 만능’ 정책으로 전환한 후 1975년 1만 7300명에서 13년 후 16만 명을 넘어섰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지만, 캘리포니아 수감자 수의 급증은 경범죄, 특히 약물 중독자가 전체 수감자의 4분의 3이나 되었다. 이들은 거의 노동자 계층, 특히 급여와 생활보조금이 결합된 변형 제도로 인해 심한 타격을 받은 대도시 유색인종 무산계급들이었다. 1998년, 입소자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흑인계 혹은 라틴계였고, 절반 미만 정도만 풀타임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고, 3분의 2가 빈곤선의 반도 안 되는 수입이었다.
➁불안정 고용의 증가와 사회보장금 축소로 삶이 더 불안정하게 된 노동자 계급의 범법 행위에 대해 포승줄을 더욱 조이고, 빈민 범죄자들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체계적으로 무력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는 1970년대의 모토였던 ‘재건’을 포기하고 신형무제를 구축한 것이다. 신형무제의 목표는 범죄를 예방하거나 형을 치르고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고 파악되는 집단을 격리시키고, 가장 사회 이탈적인 구성원들을 완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➂1979년-1990년 사이 국가 형무 분야 지출은 운영비조로 325퍼센트, 시설비조로 612퍼센트 팽창했다. 교도소 수와 전체 근무자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대기업 및 고위층 감세로 인해 세수가 부족했던 시기에 이루어진 교도소 직원 증원 및 예산 증가는 저소득층 생활보조비 및 의료, 교육 복지비 절감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뉴욕 시의 치안 유지 예산도 5년 동안 40%가 인상되었다. 1만 2천 명의 경찰인력을 신규 채용해 1999년 뉴욕 경찰 전체 인원이 4만 6천 명에 달했는데, 같은 시기 뉴욕 시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3분의 1이 삭감되었고 관련 부서 공무원 8천 명이 일자리를 잃고 전체 인원은 1만 3천 4백 명에 불과했다(바캉, 2010: 48). 사회복지의 축소가 형벌국가의 확장과 맞물려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➃미국의 경우 민간 교도소 사업이 급격히 성장했다. 재소 노동은 형무 민간 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 교도소 설립을 통해 지역 개발 및 지역사회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믿음도 커져갔다. 감옥은 미국 빈민들을 감옥에 대량 유치함으로써 찬란한 미래를 보장하는 각광 산업이 되었다.
⑤흑인 수감자가 지속적으로 급증했다. 1995년 흑인 성인 인구 중 징역형, 보호감찰, 가석방 등 형사 관리 대상은 9.4퍼센트였다. 백인의 경우 1.9퍼센트였다. 감옥형에서의 비율은 1대 7.5였다. ‘인종 간의 불균형’은 청년층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인종 간의 지속적이고 빠른 격차의 골은 무엇보다도 경찰 치안 업무의 근본적인 차별주의에 기인했다. 톨레랑스 제로 정책의 대상은 흑인(유색인)이고, 수혜자는 백인이었으며, 형벌국가 강화는 그 간접 효과를 보나 실제 기능을 보나 카스트의 장벽을 재복구하거나 강화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바캉, 2010: 58).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형벌 제도 재편은 노동시장의 재편을 보완하고 지탱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형무소는 이 새로운 노동시장에서 완전 가장자리로 밀려난 자들을 ‘쓸어다 담는’ 동시에 ‘쓸어다 버리는’ 두 역할을 함께 했다(바캉, 2010: 126). 프랑스, 영국 등에서 수감자의 대부분은 저학력자, 무직자, 노숙자였다. 게오르크 루셰와 오토 키르슈하이머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시장의 악화와 수감 인원 증가 사이에는 밀접하고도 명백한 연관성이 있는데, 범죄율과 수감률 사이에는 어떠한 명백한 연관도 없었다(바캉, 2010: 127).
치안 분위기 조성은 국가가 범죄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는데, 그것을 부인하기 위해 보이는 ‘히스테릭한’ 행위로, 국가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그 책임을 소위 ‘불량’ 시민에게 전가함으로써 공공장소에서의 통제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바캉, 2010: 163).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깊은 사회적 불평등, 협소한 사회보호 시스템 등과 신형벌제도 사이의 연관은 우연이 아니다(바캉, 2010: 165). 이 모든 것은 빈곤 처벌 확대라는 기본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자, 역설적으로는 국가의 사회적 개입 능력의 둔화를 드러내는 것이다(바캉, 2010: 164). 형무소에 의한 빈곤 관리는 그 자체 때문에 빈곤을 더 확대재생산할 뿐이며, 빈곤층을 투옥하면 할수록 빈곤은 점점 고착화된다(바캉: 2010: 168). 생존권 위기를 형벌에 의해 관리하려는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하는, 이미 자체적으로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사업’일 뿐인 것이다(바캉, 2010: 171).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함께 찾아온 형벌국가는 노동시장과 복지국가의 악화 속에서 낙오되거나 처음부터 배제된 ‘빈민’ 집단들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사회적 불안정의 대리물로 삼았으며, 그들을 통치함으로써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 형벌국가의 엄벌주의는 인종을 교차하여 작동했다. 또한 엄벌주의는 젠더화된 현상이기도 했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엄벌주의를 젠더중립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실에서 엄벌주의가 작동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엄벌주의적 형사정책에 가장 영향을 받는 집단이 자유주의적 변화 속에서 복지후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빈곤층 여성이며, 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싱글맘, 복지 수급 대상 여성들이 처벌의 타겟으로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엄벌주의가 가부장적 복지국가 모델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Davis, 2002; Fisher・Reese, 2012; 추지현, 2014: 50에서 재인용).
신자유주의 형벌국가는 범죄의 선택과 배제에서 더 나아가 범죄를 ‘활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범죄현상을 둘러싼 공포 담론의 생산과 재생산이 그것이다(조연민, 2014: 489). 범죄 담론의 활용은, 처음에는 형벌국가화의 대중적 정당성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전제로서 기능하지만, 이후에는 형사사법제도의 작동 전반을 관통하면서 그 일련의 과정에 정당성과 이유를 부여하며, 강경정책과 입법의 도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조연민, 2014: 489). 공포 담론을 유포하고 재생산하는 주체가 지배계급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형사사법기구를 구성하고 운용하는 주체들에 의해 범죄에 관한 공포 담론이 강화 및 재생산되고 있으며 그 결과 현존하는 형벌국가의 작동체계가 재차 정당성과 필요성을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조연민, 2014: 490). 이는 범죄에 대한 공포가 단지 범죄의 증가를 체감하거나 언론의 잘못된 재현 때문에 발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공포가 자신들의 존재에 정당성과 필요성을 부여해주는 집단에 의해서도 생산될 수 있음을 함의한다. 공포와 공포의 대상은 끊임없이 구성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형벌국가의 형태, 엄벌주의의 양상이 모든 국가에서 보편적이거나 시간을 초월하여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지구화로 인해 모든 복지국가가 ‘바닥으로의 질주’라는 수렴을 보이는 대신, 각 복지국가의 레짐에 따라 고유한 궤적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령 형벌 레짐에 관한 논의는 각 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 복지체제, 제도화된 문화적 가치 등이 형사사법체계의 변화에 구조적 완충제로 작동함을 강조하며, 국가 간의 유형화를 시도하기도 한다(추지현, 2017: 168-169).
바캉 역시 신자유주의화가 고용 및 복지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형벌 강화책이 둔화되었거나 우회되었고 범죄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 및 우려가 높았음에도 수감 인구수는 정체하거나 경미한 증가를 보였다고 지적한다(바캉, 2010: 27). 따라서 “선진 사회에서의 형벌 정책의 변화를 진화발전 모델설”로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 담론, 규범, 정책이 신자유주의 정부 정책 구성의 주요 성분에 불과하며 바로 이로써 사회적 불평등 및 소외 문제가 더욱 야기되었음을 폭로해야 한다(바캉, 2010: 27).
그렇기에 미국 사례의 ‘특수성’을 이해하면서도 ‘개별성’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바캉, 2010: 122). 지난 세기 말부터의 미국 사례는 이제 사회 정책과 형벌 정책, 더 나아가 노동시장과 사회복지, 치안과 감옥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는데, 이 두 가지를 함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그 병합과 변형을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바캉, 2010: 174).
불안정 고용 및 사회보장 축소가 가져온 사회적 불안정의 결과를 억제하기 위해 사법 및 형사 제도에 기초하고자 하는 유혹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정책이 고용이나 사법의 영역에까지 침투함에 따라 유럽 도처에서도 감지되었다(바캉, 2010: 122). 실제로 빈곤의 범죄화가 보수 정권에 의해서만 채택된 것이 전혀 아니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모든 정권들이 ··· 적극적으로 채택・수입한 통제전략이었다는 점에서, 현 시기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형벌주의로의 전환(조연민, 2014: 482)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3. 한국의 형벌국가와 빈곤의 통치에 관한 메모
형벌국가와 엄벌주의에 관한 바캉의 논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복지국가의 쇠퇴, 노동시장의 악화, 개인 책임 담론의 강화, 형벌국가의 확장과 맞물리며, 그러한 전환에 따른 불안과 공포를 사회의 밑바닥 집단에게 ‘병리화·범죄화’라는 방식으로 투사함으로써 관리하고자 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논의는 미국과 상당히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는 한국 사회에도 풍부한 함의를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 간 차이는 분명하며, 엄벌주의는 개별 사회의 경로, 궤적에 따라 다양한 굴절을 겪을 수 있기에 한국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이해될 필요가 있다. 가령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의 엄벌주의는 권위주의를 거쳐 민주주의로 이행하게 된 역사적 경로 위에서 주로 아동 성폭력 피해자와 정신병리화되고 괴물화된 가해자의 구도 속에서 형성되었다 8(추지현, 2014). 이러한 구도에서 형성된 엄벌주의가 형사사법체계와 형벌정책 전반으로 확장되기는 하지만, 미국과는 다른 역사적 맥락을 거쳐 발전했다고 보아야 한다.
형벌국가와 엄벌주의라는 분석틀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➀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불안정화, ➁복지국가의 저발전과 ‘워크페어’ 강조, ➂(안전망 없이 맞이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➃불평등 심화와 빈곤의 정체, 이에 대한 체감의 확대와 ‘전망 없음’의 문화, ⑤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가부장주의의 영향력, ⑥국가 권위주의 및 냉전반공주의의 유산과 2000년대 이후의 경찰국가, ⑦형사사법체계의 남성중심성, ⑧정신질환자, 이주자의 ‘범죄화’와 혐오 등이 그것이다.
정수남(2014)의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빈민의 범죄화 및 통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부랑인·노숙인에 관해 다룬다. 부랑인들은 20세기 초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근대적 통치방식에 의해 ‘질병화’되었으며, 이 모델은 ‘범죄화’모델과 결합됐다(정수남, 2014: 290). 이후 한국 사회에는 노숙인을 둘러싼 이중 장치가 작동하는데, 한 쪽에는 노숙인을 취약한 극빈층으로 분류하여 자활대상자로 보호·관리하려는 장치와 다른 한 쪽에는 이들을 유사 범죄자로 분류하면서 배제하고 차별화하는 장치가 대칭을 이루면서 공존한다(정수남, 2014: 288).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노숙인을 ‘범죄의 먹이’이자 ‘범죄 예비군’으로 규정하는 담론이 미디어를 중심으로 확대됐는데, 이러한 범죄담론은 두려움을 유발하는 동시에 치안강화를 공고화한다(정수남, 2014: 295-296). 이처럼 부랑인-노숙인이라는 인구집단은 국가에 의해 빈민이 분류되고 통치되는 메커니즘의 핵심에 위치한다.
‘묻지마 범죄’ 지식담론은 2000년대 이후 빈민이 병리화·범죄화되는 양상, 그리고 이러한 담론에 의해 하층계급 정신장애인들이 관리, 격리, 무해화의 대상이 되는 흐름 속에서 탄생했고, 이러한 흐름을 재/강화하고 있다. 2012년 대검찰청이 자체적으로 분석한묻지마 범죄 분석은 가해자 개인의 특성을 ‘묻지마 범죄’의 요건으로서 상정하는 지식 생산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2012년 1년간 발생한 모든 강력사건 2,504,238건 중 55건을 ‘묻지마 범죄’로 추려 분석한 것이었다(김민정, 2017: 43).
이렇게 구성된 55건의 ‘묻지마 범죄들’은 경증을 포함한 정신질환 100%, 무직 일용직 노동자 87%, 전과자 75%였다. 각 범주가 서로 교차함을 고려하면, 연구에 포함된 대부분의 ‘묻지마 범죄자’는 가족 및 지인과 단절되고 일정한 직업이 없으며 범죄 전과가 있는 정신질환자로서,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병에 대한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거나 오랫동안 치료를 받지 못했던(김민정, 2017: 45) 사람들이었다. ‘묻지마 범죄’라는 개념은 이렇듯 자료수집 단계에서부터 그 용어가 원래 사용되던 맥락, 즉 불특정 다수, 공공장소, 동기를 알 수 없음이라는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 처음부터 ‘정신질환자’, ‘노숙자’, ‘전과자’를 사실상 타겟으로 구성된 것이었고, 이러한 조사 결과에 따른 결론도 ‘묻지마 범죄’는 “대부분” 정신질환자 혹은 주취 폭력자, 노숙자라는 식의 동어반복이 되었다(김민정, 2017: 45).
4. 나가며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빈곤율은 정체 상태다. 과거와 같은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며, 탈산업화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 고용 불안정, 불평등 심화 등에 비해 복지국가의 발전은 더디다. 이는 분명히 사회보장의 확대를 요구한다. 정의, 측정 등에서 더욱 세밀해지는 빈곤 연구와 사회정책에 관한 연구들은 이러한 과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빈곤 연구는 권력관계에 더욱 예민해져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빈민들이 그저 ‘홀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면, 이들의 빈곤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사회구조적 역동 속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빈곤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당위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빈곤이 해결되길 원하는지는 분명히 다른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빈곤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형벌국가에 관한 바캉의 연구는 신자유주의화되는 국가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대신, 빈민을 범죄화하고 관리,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이는 19세기 사회경제학이 빈곤은 자본주의의 자연적 질서로 내버려둔 채 ‘빈민’ 집단을 선별하여 통치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사회적 불안과 위기를 관리했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부랑인-노숙자를 관리해온 방식, 그리고 신자유주의화 이후에 엄벌주의와 함께 빈민 집단을 대상으로 한 범죄지식담론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 사회 역시 빈곤을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로 규정하는 대신, ‘빈민’이라는 집단을 통치함으로써 빈곤이라는 사회구조적 부정의를 은폐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사회학적 빈곤 연구는 빈곤과 빈민이 분리되고 빈민들이 분류·통치되는 권력 과정, 그 주체들과 효과들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며 그 담론을 관통하는 비판적 작업들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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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카치는 ‘빈곤’(poverty)과 ’극빈(층)‘(pauperism)을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후자는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대중화된 동시에 ’사회적‘ 개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확장된 형태의 근대적 빈곤 현상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옮긴이는 개념적 확장의 위험을 다소 무릅쓰고 pauperism을 ’사회적 빈곤‘으로 옮겼다(프로카치, 2014: 228). (*옮긴이 각주) 즉, ’사회적 빈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며, 개입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집단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가정주부인 여성, 식민지의 원주민과 노예는 모두 초기 자본주의의 시초축적을 위해 극단적으로 착취된 존재였고, 극빈자는 산업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속에서 배제된 존재였음에도 말이다. [본문으로]
- 위험함은 주체의 내재적 특질에 대한 확증인 동시에(그/녀는 위험하다) 위협적인 행위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주어졌을 때에만 증명된다는 점에서 순수한 확률,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함축하기 때문에 다소 불가사의하고 매우 역설적인 관념이다(카스텔, 2014: 407). [본문으로]
- DSM-3-R에 의존적 성격장애가 명문화됨으로써, ‘의존’은 과학적 지식이 인정한 정신병리가 됐다. [본문으로]
- 엄벌주의는 범죄자에 대한 사회복귀와 재사회화를 도모하려는 교정 복지의 관점보다 범죄나 일탈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불관용, 가혹한 형벌 부과와 범죄자에 대한 무력화를 지향하는 담론과 실천을 지칭한다(추지현, 2017: 157). [본문으로]
- 캉의 연구는 형사사법체계의 계급 편향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는데, 이는 입법을 기존의 권력관계와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선택과정’으로 바라보는 비판범죄학의 논지를 지지하는 증거가 된다(조연민, 2014: 452, 459). [본문으로]
- 바캉의 논지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형벌국가는 자본주의 축적 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형벌체계를 통하여 빈곤층을 통제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빈곤의 범죄화다. 이는 주류범죄학의 법률적 범죄 개념과 비판범죄학 중 국가적 범죄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구체적인 공권력 행사로 현출되는 것인 동시에, 법적 행위의 테두리를 넘어선 권력적・상징적 국가행위를 상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 세리자와 가즈야(2014)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사회의 형벌정책의 변화(피해자담론의 부각, 가해자의 괴물화, 엄벌주의 등)를 설명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와 다소간의 시차를 두고 유사한 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일본의 엄벌주의와 한국의 엄벌주의의 형성 경로, 발전 양상을 비교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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