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전] 송승연. (2018). 정신장애인의 대안적 접근으로서 Mad Studies에 대한 탐색적 연구. 비판사회정책, 59, 297-345.
RISS 논문 링크: http://www.riss.kr/link?id=A105374140
Ⅰ. 서론
한국의 정신보건법이 1995년 제정된 배경에는 두 가지 사건이 존재하고 있다. 1991년에 일어난 여의도광장 질주사건과 대구 거성관나이트 방화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분노하고 흥분한 상태에서 발생한 범죄였을 뿐 정신질환과는 무관하였음에도, 정부는 위험한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 하에 국가적 대응책의 일환으로 정신보건법을 제정하였다(신권철, 2017). 애초 탄생에서부터 정신보건법은 사회적 안전, 치안, 격리, 통제의 역할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한 것이다.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이후 강제입원에 따른 정신의료기관 병상의 급격한 증가, 장기 입원, 입ㆍ퇴원 및 치료 과정과 관련된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져 왔다. 20여년의 긴 시간이 지난 근래에 이르러서야 미약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신보건법 제24조(강제입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6년 4월 14일 공개변론을 진행하였고, 2016년 9월 29일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299)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의료기관 내 인권문제와 더불어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배제로 인한 열악한 지역사회일상생활에 대한 부분도 부각되었다. 2010년 이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같은 당사자 단체, 장애인 및 인권 단체가 정신보건법바로잡기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신장애인 권리보장과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 입법운동을 추진하였고, 정신장애인이 정신의료기관으로부터 퇴원 이후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주거, 취업, 일상활동 등 각종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하여 일보 진전한 정신건강복지법이 2017년 5월 시행되었다(이용표, 2017).(299)
2014년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병상수가 4번째로 많은 국가이며, 2015년 여전히 대부분은 비자의입원(67.9%)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있음이 나타난다(국립정신건강센터, 2016).(299) 강제로 입원된 환자들에게는 강제적 약물치료, 격리ㆍ강박, 통신제한 등 제약 조치가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환자로서의 선택이나 절차적 권리,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은 강제입원 환자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주되었다(신권철, 2017). 강제입원처럼 제도를 통해 공간적으로 단절되는 물리적 배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배제 또한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신장애인 중 69.4%가 지각된 차별을 경험하였고(Brohan et al., 2010), 고용, 거주지 마련, 대인관계와 관련된 어려움(Corrigan et al., 2000; Cooper et al., 2003)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구직과 관련하여 실제 차별경험이 없더라도 차별이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관념적 배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진단을 감출 필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되었다(Thornicroft et al., 2009).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의 열악한 현실은 답보상태라고 할 수 있다.(300)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다양한 조직의 새로운 저항적 연대가 최근 캐나다와 영국을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의 정신건강시스템이 많은 문제를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기에 대해 당사자가 대응할 수 있는 ‘민주적이며 실현 가능한 대안’을 개발할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다(LeFrançois et al., 2013). 이는 ‘Mad Studies’라는 명칭 하에 서서히 형성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이 여전히 억압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현실 기저에는 광기를 질병으로 인식하는 정신의학담론이 위치하고 있다는 문제제기와 더불어 ‘광기(Mad)’와 관련된 모든 것(담론, 지역사회 서비스, 학문 등)에서 당사자의 관점이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제기된 것이다.(300) 그러나 단순하게 Mad Studies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느 누구도 Mad Studies를 소유하거나 경계를 만들 수 없으며, 정신건강시스템, 연구, 정치적인 것 등과 관련되어 당사자가 자신만의 이론ㆍ모델ㆍ원칙ㆍ개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Mad Studies의 중요한 원칙(Castrodale, 2017)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표출과 토론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301)
광기의 현상은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 내내 존재했지만, 정신의학 구축으로 의료화 지배력이 증가함에 따라 ‘광기’는 ‘정신질환’이라는 언어로 대체되었다. 의료화로 인해 정신의학적 용어만이 과학적이며 이성적인 용어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치다(mad)’라는 말을 정신질환이 있거나, 정신과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곤 한다(Leblanc & Kinsella, 2016). Mad Studies는 현재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Mad를 되찾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생의학적 설명에 도전하기 위해, 정신과의사와 같은 전문가그룹에 의해 부여된 정체성에 저항하기 위해 ‘Mad’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이다(LeFrancois et al., 2013). 정체성과 관련된 국내의 합법적 명칭은 ‘정신질환자’이다. Mad는 애매모호한 정체성이 아니라 보다 직설적인 정체성을 대변하는데, 이는 지금 정신의학체계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정신장애인의 억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심리적ㆍ사회적ㆍ환경적 요인은 존재하며, 그들의 정신적ㆍ물질적 고통은 실재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생의학적 기원으로 가정된 질병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정신건강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전문가주의와 개인주의 관점을 강조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모든 사회구조적 요인은 감춰지고, 당사자의 경험과 지식은 배제된다(Coles et al., 2013).(301) Mad Studies는 이러한 현상에 문제제기를 하며, 동시에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정신건강 담론을 분석하고 재구축을 시도한다.(302)
Ⅱ. Mad Studies의 역사적 배경
Mad Studies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2가지 큰 기류가 있었으며 첫 번째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비판적 담론과 지식을 생산한 반정신의학, 두 번째는 반정신의학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70-80년대 활동이 시작된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이다.(302)
반정신의학
정신장애인을 생의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의 확장은 지금도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이러한 개입과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세계적 운동 또한 존재했으며,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이라고 불린다.(302) 반정신의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운동으로 정신과의사들과 심리치료사들로 이루어진 대단히 정치적인 집단을 지칭한다. 이 용어 자체는 남아프리카의 정신과의사 데이비드 쿠퍼(D. Cooper)가 만들었다(Buchanan, 2017). 반정신의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그 당시 정신질환의 표준적 치료법(e.g., ETC(정신경련치료), Lobotomy(뇌엽전리술), 항정신병 약물 사용 등)이 가지고 있는 잔혹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증가한 것이며, 둘째 당시 정신의학은 질병에 관한 의료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전용해서 ‘광기’를 뇌의 질병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은 비정상으로 구분되는 정신질환자들을 ‘정상’으로 구분되는 집단과 분리ㆍ격리하는 것을 과학적인 행위로 합리화하였다(van Praag, 1978). 반정신의학은 이러한 광기에 대한 정신의학의 전통적 정의인 의료모델을 거부했다. 반정신의학자는 광기를 사회적 구성물 혹은 좀 더 강력히 말해, 사회가 특정인들에게 부과하는 압력의 효과로 간주했다(Buchanan, 2017).(303)
반정신의학의 대표적 학자들로는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토마스 사스, 영국의 정신과의사 로널드 랭, 이탈리아의 정신과의사 프랑코 바자리아 등이 있다.(303)
토마스 사스(T. Szasz)는 자신을 반정신의학보다는 반강제주의(anti-coercion)라고 이야기하며(Szasz, 2010), 정신건강 실천에 대한 자유의지적 모델을 추구했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회통제를 수행하는 권력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고(LeFrançois et al., 2013), 실제 약 50년 동안 강제적 정신의학이 아닌 동등한 상호계약에 의한 정신의학을 실천했다(Szasz, 2010). 또한 사스는 신체적으로 원인이 밝혀진 소수의 경우(신경매독 등)를 제외한 정신질환에 대해 의료학적 실체로서의 존재성을 거부하며,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정신의학자들이 자신의 전문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자행하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Berlim et al., 2003). 실제로 정신의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19세기 광인의 집(madhouses, 정신병원이 설립되기 전 광인을 수용하던 감호소)에 있던 환자 중 절반 이상이 뇌질환(주로 신경매독, 뇌염 등)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신경매독은 더 이상 정신질환이 아닌 뇌질환이 되었다(Shorter, 2009). 사스는 이러한 역설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는 뇌질환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신질환이 뇌의 문제라면, 뇌질환으로 지칭해야 하고 뇌질환 치료법을 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스의 눈에 정신의학은 단순한 억압의 도구였으며, 시설의 의료인은 치유자가 아니라 교도관이었고, 정신병원은 위장한 교도소였다. 그는 강제입원을 폐지하고 시설자체를 없애자는 운동을 꾸준히 벌였다(Scull, 2017).(304)
스코틀랜드의 정신과의사 로널드 랭(R. D. Laing)은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랭은 정신질환을 충분히 실재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광기란 사회의 산물이며, 더 특정하게는 가족 관계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정신질환 치료에 필요한 것은 전문적 지식과 의사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관심과 진정성이라고 언급하면서, 대다수가 무의미하다고 외면하는 정신질환자의 얼핏 이상한 행동과 혼란스러운 말에 실은 풍부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보았다(Scull, 2017).(304) 또한 랭은 광기를 이해하기 위해 그 광기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자들의 눈을 통해야만 한다는 도전적인 전제를 내세웠다. 즉 환자들이 스스로의 증상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인 관점은 치료자들의 관점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합리적일 수 있으므로 이를 존중하고 치료 과정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LeFrançois et al., 2013). 랭 또한 사스와 마찬가지로 정신병원을 파괴적 장소로 인식하고 강력히 반대하였고, 환자를 시설에 수용해 약물로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진행되는 치료 여정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Scull, 2017).(305)
이탈리아는 1978년 개혁입법(Law 180)을 통하여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지역사회중심 정신보건체계로 전환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전체 정신과병상수는 획기적으로 감소하였고, 2001년 실시된 조사에서 비자의입원비율은 12.9%로 나타났다(이용표ㆍ송승연, 2017). 개혁 법안의 주요 입안자인 프랑코 바자리아(F. Basaglia)는 반정신의학의 영향을 받아 제도적으로 실현하였으며,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바자리아가 지닌 명성과 이 법이 구현한 접근법의 철저한 단순성 때문에 널리 이목을 끌었다(Scull, 2017). 바자리아는 정신질환을 사회정치적 문제와 후설의 ‘괄호치기(bracketing)’ 개념을 이용하여 해석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접근 시 개인에게 부여된 꼬리표(진단명)로 판단하지 않고, 각각의 환자와 별도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유지했다. 바자리아는 현상학과 함께 광기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제도적, 이념적, 윤리적, 의학적, 정치적, 사회적)의 복잡한 연결을 이해하기 위해 나아갔다. 바자리아는 정신병원 존재 이면에는 분리, 배제, 침묵과 같은 이념들이 있었으며, 정신병원이 사라져야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탈리아 정신병원 폐쇄를 환자 포기와 결합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반대로 광기를 수용해왔던 정신병원 자체가 포기의 문화를 예증해왔다고 지적한다(Foot, 2015).(305)
반정신의학은 정신과적 개입이 계급ㆍ인종ㆍ젠더ㆍ섹슈얼리티 등과 관련되어 ‘사회적 통제’의 역할을 한다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 규정된 공식적 정신질환이었다. 1973년 동성애는 DSM에서 사라졌지만 ‘성 불쾌감(gender dysphoria)’이라는 질환은 DSM의 5번째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살아남았다(Frances, 2014). 또한 1851년에 미국 정신과의사 사무엘 카트라이트(S. A. Cartwright)는 흑인노예가 탈주하려 하는 경향을 ‘드라페토매니아(Drapetomania)’라는 진단명으로 규정하였다(Cartwright, 1851; Joseph, 2013 재인용). 카트라이트는 흑인 노예가 뚱하고 불만족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것은 드라페토매니아의 초기 증상이며,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조기에 채찍질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Meerai et al., 2016). 프랑스의 정신과의사이자 혁명가인 프란츠 파농(F. Fanon)은 정신의학이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려는 흐름에 반기를 들었다. 그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현상도 정신질환의 하나라고 규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대해 프란츠 파농은 식민 지배를 당하는 민족의 정신적 문제는 왜곡된 지배사회를 만들었던 식민지배자들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전까지 아프리카인들을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해오던 기존의 이론들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김태희, 2014).(306) 드라페토매니아, 동성애, 식민주의에 대한 억압은 반정신의학 운동에 의해 설명되는 체계적 차별의 대표적 사례다.(307)
Mad Studies와 반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이 구성되는 과정에 있어, 사회구조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정신질환의 사회적 구성(sociogenesis)에 초점을 둔 반정신의학 운동은 ‘대형 정신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내 돌봄’으로 전환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정신질환자의 법적, 사회적 권리에 관심이 있는 옹호단체 혹은 자조단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307)
Mad Studies는 기존 정신의학적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광기’ 그 자체를 주축으로 삼아 이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내포하기 때문에 반정신의학 관점보다 더욱 포괄적인 내용을 다룰 수 있다.(307) 또한 정신질환의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정치투쟁과 같은 행동주의를 지향한다. 이와 관련하여 Beresford(2016)는 1960년대 반정신의학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당사자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반정신의학의 중심 사상은 여전히 전문가들로부터 강력하게 왔고, 로널드 랭 같은 반정신의학자는 정신의학의 실행을 비판했지만 명확하게 정신의학 영향권과 권위 밖에 서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Mad Studies는 정신장애인의 경험, 아이디어, 지식에 의해 주도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미래를 위한 더 많은 통찰력과 훨씬 더 유용한 로드맵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Beresford, 2016).(308)
2.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1960년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학생운동 등에 영향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운동과 저항의 토대 위에서 1970년대 정신장애인에 의해 광범위한 당사자운동의 시대가 열렸다(Reaume, 2002). 당사자운동은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강제적이고 해로운 치료에 저항하기 위해 행동했으며, 주체적인 자기옹호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였다(Joseph, 2013).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기존의 수동적으로 부여된 ‘환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다양한 정체성으로 표출되었는데, 북미지역의 경우 ‘C/S/X’(consumer소비자/survivor생존자/ex-patient이전환자)로 영국의 경우 ‘정신과 생존자(psychiatric survivor)’ 혹은 ‘서비스 이용자(service user)’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하였다(LeFrançois et al., 2013). 정신장애인 대부분은 이전에 정신병원에 수용된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이전환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소비자’는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받아야 하는 수혜자가 아니라 선택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의미로서 사용되었다.(308) ‘생존자’라는 정체성은 억압적인 정신건강 체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하며(Starnino, 2009), 정신과적 시스템의 다양한 차별과 학대에서 생존한 역사에 커다란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되었다(Reaume, 2008).(309)
초기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의료모델에 강하게 반대했다. 의료모델로 기울어진 권력 불평등이 정신장애인을 수동적으로 만들어 현실에 안주하게 하였다는 것이다.(309) 또 다른 불만은 꼬리표(labeling)의 부정적인 영향과 관련이 있다. 당사자운동은 정신질환에 대해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한 반정신의학 그룹의 의견을 지지했는데, ··· 정신장애인 당사자 집단은 자신들이 꼬리표를 달고 다니면서 경험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대해 지적했다. 그들은 꼬리표가 사회적 기회(만족스러운 고용과 적절한 주거지 확보 등)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Starnino, 2009). 이러한 당사자운동은 자신들의 대의를 촉진하기 위한 주요 도구로 자조와 옹호를 사용하였다(Chamberlin, 1990).(310)
1980년대에 이르러 공식적인 정신건강시스템은 기존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던 당사자운동을 점점 인식하게 되었고, 다양한 소비자운영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였다. 미국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역사적 증인인 쥬디 챔벌린(Chamberlin, 1990)에 의하면 이러한 자금지원은 더 급진적인 생존자ㆍ이전환자 조직의 목소리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했다. ‘정신병’ 개념에 대해 전반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생존자ㆍ이전환자 조직과 달리 소비자 조직은 정신질환의 대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고, 생물학적 요소를 정신질환의 인과관계 요소의 원인 중 하나로 배제하지 않았다. 소비자 집단은 정신건강시스템이 증상과 결함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말고, 정신장애인의 강점과 능력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Starnino, 2009). 이처럼 1970년대 시작된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다소 온건한 ‘소비자’집단과 급진적인 ‘생존자ㆍ이전환자’집단으로 나뉘어졌으며 이는 21세기에 들어와 Mad Studies라는 새로운 흐름에 다시 합류하게 된다.(310)
Ⅲ. 정신장애인과 Mad Studies
1. Mad Studies의 정의
Cresswell과 Spandler(2016)는 Mad가 정치적인 부분에서 억압받고 있는 광기의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Mad는 정치적 행동과 논쟁을 위해 제안된 것”이라고 언급되기도 한다(LeFrançois et al., 2013: 11). ‘Mad’를 새로운 정체성으로 가져오는 것은 정신질환과 관련된 경험을 재정의 하고, 기존의 비하적인 의미로 사용되면서 매도되었던 용어인 ‘Mad’를 정치적 정체성으로 되찾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정체성은 변천의 역사가 있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존에 ‘소
비자, 생존자, 이전환자, 이용자’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면 Mad Studies는 더 나아가 ‘Mad, Mad People, Madness, Mad experience’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Mad 정체성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정신질환자에 대한 학대와 강제입원에 대한 저항으로 구현된 생존자 운동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운동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Mad라는 용어를 받아들이고, 정치화된 형태의 자기정체성으로 그것을 되찾기로 결정하였다(Leblanc & Kinsella, 2016). 이는 Queer라는 용어가 성소수자 운동의 맥락에서 재탄생한 것과 유사하다. 퀴어는 ‘괴상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과거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멸시적인 속어였으나 1980년대 미국의 급진적인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에서 이 용어의 개념을 긍정적이며 전복적인 방식으로 사용하여 오늘날 부정적 함의는 사라졌다. 또한 ‘Mad’는 정신의학에 의해 형성된 ‘정상 대 질환’이라는 지배적인 구조에 벗어나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진영을 새로이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정리자] Mad라는 언어가 기존 정신의학의 영역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견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311) 오히려 당사자가 경험한 것을 진정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정신장애인을 병리화하고 비하하는 임상적 꼬리표를 거부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처럼 Mad Studies는 정신의학 억압의 폐단을 포함하여 더 포괄적인 비판의 의미를 지닌다(Cresswell & Spandler, 2016).(312)
Mad Studies 탄생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2013년 캐나다에서 출간된 Mad Matters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학자, 전문가, 활동가와 같은 다양한 저자가 참여하였지만, 대부분의 챕터는 직접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신장애인(Mad Matters에서는 Mad로 식별된 사람들이라고 표현됨)들이 저술하였다. Mad Matters가 캐나다에서 발행된 이후 Mad Studies는 국제적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2016년 영국 랭커스터에서 Mad Studies 컨퍼런스가 개최되면서 이를 지지하는 당사자, 전문가, 학자, 활동가가 함께 모여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었고 Mad Studies는 좀 더 구체적인 윤곽을 형성하게 되었다. Mad Matters에서는 Mad Studies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반정신의학 학자 및 활동가, 비판적 정신과의사, 급진적 임상가들로부터 나온 지식 체계를 포용하는 데에 사용되는 포괄적 용어이다. 이 지식체계는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으며, 정신건강시스템에 비판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급진적인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지식도 포함하고 있다. 이 학문 분야는 정신장애인 연구원 및 학자의 관점에 의해 정보를 얻고 생성된다.”(LeFrançois et al., 2013; 337) (312)
Mad studies는 본질적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억압받은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며, 광기의 억압과 작동 그리고 정신건강 담론의 논쟁을 포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하는 새로운 학문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의 탄생과 유사한 경로 하에 있다. 장
애학은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장애를 규정하는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요인 등을 탐구하며 장애인에 의한 적극적 참여를 중시하는 다학제적 학문’으로 정의된다(조한진, 2011).(312) 장애학이 장애에 관한 의료적, 개인적 해석에서 벗어나 장애 그 자체를 다양한 차원과 다학제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Mad Studies는 ‘정신건강’ 담론과 발전에 새로운 힘으로 등장하고 있다(Beresford & Russo, 2016).(313)
2. 정신장애차별주의(Sanism)와 Mad Studies
정신장애인 억압은 긴 역사를 지닌다. 히틀러는 1939년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강제로 안락사 시키는 T-4 작전을 시행했다. 정신질환자(나치 용어로 ‘쓸모없는 식충’)를 모아서 몇 군데의 정신병원으로 보냈고, 1년 반 만에 7만명이 학살되었다(Scull, 2017). 또한 우생학적 관점에 의해 미국의 많은 주가 다양한 법을 통과시켜 정신적 부적격자의 결혼금지를 시도했고, 어떤 경우는 출산을 방지하고자 강제불임까지 허용했다. 마침내 1927년에는 이러한 불임에 도전하는 벅 대 벨(Buck v. Bell) 사건이 미국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8 대 1로 강제불임은 합헌 판결을 받았다(Scull, 2017). 이와 유사한 사례는 국내에도 존재한다. 1975년 보건사회부는 충남 정심원에 수용 중인 정신질환자 12명에 대해 모자보건법 제9조에 의거한 불임시술명령을 검토한 적이 있다.(313)
과거 정신장애인 억압은 명확했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불분명하고, 모호해졌으며, 어쩌면 당연시되었다. Mad Studies는 현존하는 정신장애인 억압을 드러내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위해 Sanism(정신장애차별주의)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313) Sanism은 Ableism(장애차별주의)과 비교할 수 있다. Ableism은 “장애인에게 불이익을 주고, 비장애인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법률ㆍ정책ㆍ태도ㆍ언어ㆍ행동의 집합”을 나타낸다(Le-Francçois et al., 2013: 334). 유사하게 Sanism는 “정신과 진단 혹은 치료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을 나타낸다(LeFrancçois et al., 2013: 339). Sanism이라는 용어는 1958년 적절한 돌봄을 받아야하는 정신과 환자의 권리를 주장한 변호사 Morton Birnbaum이 처음 사용했다(Meerai et al., 2016). 인종차별, 성차별,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처럼 비이성적 편견을 생산하고 이를 반영하는 지배적인 사회적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 Sanism의 특성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Perlin, 2003). Sanism으로 인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고정관념은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없고, 이성적 사고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폭력이 정신장애인의 특징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Leblanc & Kinsella, 2016).
Sanism은 드러나는 차별과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차별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을 거부하고, 괴롭히고, 차별하고, 감금하고, 약물을 투여하고, 총격 등 다양한 폭력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일반적인’것으로 만들어 버린다(LeFrancçois et al., 2013). 실제로 미국 경찰은 2017년에 약 1,000명을 총격으로 사살하였는데 4분의 1에 해당하는 236명이 정신질환자로 확인되었다. 국내의 경우 정신장애인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테이저건(전기충격기) 사용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314) 이와 더불어 Sanism은 정
신과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정신질환이 있다고 인식되는 사람에 대한 차별도 포함된다(Wolframe, 2013). 진단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것은 정신과 진단이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스티그마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Sanism에 저항할 수 있는 집단은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신과 진단을 받은 사람도 포함되며, 기존에 존재하는 정신의학으로 인해 어떠한 차별이라도 받은 피해자도 포함될 수 있다.(315)
정신장애인의 억압 및 차별을 설명하는 개념은 Sanism이 최초가 아니다. Goffman(1963)은 사회적 맥락에서 개인의 속성이나 특성으로 낙인(Stigma)이 부여되면, 그 개인은 무시되며, 오점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강한 불명예를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낙인에 대해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Mad Studies는 낙인 개념의 한계 또한 지적한다. 예를 들어 흑인이 검은색 피부로 인해 어떤 형태의 낙인을 부여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인종차별(racism)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Sanism은 정신장애가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낙인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장애인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본다. ‘낙인’이 태도 또는 믿음인 반면, ‘차별’은 이러한 태도 또는 믿음으로 인해 발현되는 행동이다. 차별로 인해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주거선택권, 고용기회, 교육, 사회참여 등과 같은 권리가 박탈 될 수 있다. 이처럼 Sanism을 통해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정신장애인 차별경험을 가시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고, 이 문제의 중요성을 보다 인식하게 될 수 있다. 또한 낙인은 기본적으로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정신의학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정신과 진단과 치료 그 자체가 낙인을 생산한다고 보지 않으며,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오해에서 낙인이 비롯된다고 본다(Read et al., 2009). 실제 반낙인(Anti-Stigma) 캠페인의 주요 전략은 교육과 접촉이다(이민화ㆍ서미경, 2015). 과학적 정보 제공과 정신장애인 접촉 경험 확장을 통해 대중의 오해를 해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Sanism은 다양한 사회구조적 요소와 더불어 ‘정신과 진단 및 치료’도 억압의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로 간주하며 이들 또한 Sanism을 생산한다고 본다(Cresswell & Spandler, 2016).(316)
Sanism은 정신장애인에게 작용하는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316) Holley et al.(2012)은 낙인모델을 반억압(anti-oppression) 패러다임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제시했다. 반억압 패러다임은 현재의 시스템 구조에 내재된 역동을 강조하며,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특권을 부여하며,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다. Mad와 Sane은 사전적으로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Sanism은 Mad로 인한 기존의 차별뿐 아니라, ‘정상(Sane)’으로 분류된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보여줄 수 있다. 여기서 Sane은 일반적으로 정신의학 또는 정신질환과 관련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백인이고 이성애자이며 시스젠더(cisgender)이고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드러낼 수 있다(Wolframe, 2013). 우리는 이것이 ‘특권’이라고 잘 인식하지 못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어
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Sanism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개념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기존의 인식하지 못했던 특권의 재인식이 일어난다.(317)
이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정신의학과 관련된 요인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Mad Studies의 특성 중 하나인 ‘교차성(intersectionality)’ 관점을 적용하여 억압을 분석해야 한다. 교차성은 블랙 페미니즘에서부터 비롯된 개념이다. 페미니즘이 젠더 억압(남성 대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여성 집단을 살펴보니 인종 억압(백인 대 흑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흑인여성들은 성차별과 더불어 인종차별이 추가되는 이중 억압에 시달린다고 본 것이다. 이는 정신장애인과 관련하여 Anti-Black Sanism(ABS)으로 명명되기도 한다(Meerai et al., 2013). ABS 관점으로 정신장애인 억압을 바라보게 되면, 인종과 Sanism이 서로 맞물리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고, 흑인 정신장애인의 확대된 주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317) Meerai et al.(2013)은 흑인과 아프리카계 캐나다인들이 의사소통, 진단, 입원, 치료, 서비스, 형사재판제도에서 다양한 폭력을 경험했다고 언급한다. Joseph(2015)은 억압의 교차성에 대해 ‘이민자’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캐나다의 1906년 이민법 개정안은 추방 대상의 범위에 정신이상자(insane)를 포함시켰고, 정신과 의사가 이민국과 협력하여 캐나다의 망명자를 체계적으로 추방하기 위한 법률 조항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이민국에 의해 정신질환으로 추방당한 케이스를 조사해보았더니 이 중 86%의 출신이 아프리카 및 아시아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례는 억압의 교차성과 관련하여 인종차별, 식민주의, 정신의학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정신건강체계, 형사사법제도, 이민시스템이 어떻게 상호의존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드러내준다. 이처럼 억압의 교차성은 인종뿐만 아니라 젠더, 계급 등과 관련되어서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구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Mad Studies는 계급ㆍ인종ㆍ민족ㆍ성적지향ㆍ젠더ㆍ장애ㆍ종교 등을 포함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정신장애인의 보편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는 개인과 집단의 관점과 경험이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을 지향한다(Holley et al., 2012).(318)
3. 행동주의와 Mad Studies
Mad Studies의 교차성 관점은 다양한 억압집단과의 사회연대 구성과 연결이 된다. 정신장애인 억압의 초점을 ‘정신질환’ 그 자체에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318) 다양한 형태의 억압ㆍ특권ㆍ저항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Mad Studies는 지배적인 제도(혹은 집단)가 변화의 주요 초점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정신건강상태와 관련된 특권이 제도에 의해 내면화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분석은 지역사회 활동가와 그들의 연대체를 위한 변화 전략을 제시해 줄 수 있다(Holley et al., 2012). 즉 Mad Studies는 페미니즘, 노동운동, 퀴어운동 등과의 연대를 강조하는데, 이는 억압체계에 대한 경험의 교차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319)
Mad Studies는 반정신의학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반정신의학에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반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이 구성되는 과정에 있어, 사회구조적 측면을 강조한다. Mad Studies 또한 계급ㆍ젠더ㆍ인종 등에 대한 차별 및 특권과 정신장애인의 문제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LeFrançois et al.(2013)은 캐나다에서 진행된 Mad Studies 운동 과정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다른 집단과의 연대 및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회구조적 문제와 관련한 모든 형태의 ‘행동’에 대해 강조한다.(319)
억압과 저항이 교차하는 ‘당사자의 경험’, 현존하는 사회적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Mad 정체성’, ‘광인 정치운동(Mad Politics)’만이 정신의학에 대한 도전을 가능하게하고, 광범위한 저항투쟁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LeFrançois et al., 2013).(319)
Mad Studies의 또 다른 특징은 행동주의에 있다. 정신장애인 억압과 관련된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회구조적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비판적 전문가들은 개인에게 초점을 두는 생정신의학(biopsychiatry) 패러다임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하였으며, 젠더ㆍ인종ㆍ장애ㆍ계급ㆍ문화ㆍ세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다른 운동과 연대를 형성했다.(320)
Mad Studies는 당사자를 위한 지식을 생산하는 데 만족하지 않으며, 사회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변화의 노력을 추구한다. 이는 차별과 억압에 직면한 사람들의 해방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 사회적 소수집단연구와 관련될 수 있다(Sweeney, 2016).(320)
4. 회복(Recovery)과 Mad Studies
Mad Studies만이 최근의 정신건강정책, 실천 및 담론에 존재하는 장기적인 정신의학 지배, 낙인 및 고정관념에 도전한 진보적 발전은 아니다. 이러한 진보는 ‘회복(recovery)’과 ‘동료지원(peer support)’에 중점을 두고 이미 진행된 적이 있으며, 두 개념 모두 정신건강서비스 이용자 경험에서 기인한다(Beresford & Russo, 2016). 초기에 회복과 동료지원 모두 장기적인 정신의학의 장악에 비판적이었고, 전통적 전문가 권위에 도전했으며, 정신장애인의 주체성을 강조했다.(320) 그러나 이 두 개념 모두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회복은 ‘임상적 회복(clinical recovery)’과 ‘개인적 회복(personal recovery)’으로 구별되는데, 임상적 회복은 임상가가 판단하는 증상의 감소를 기반으로 정의하고 의료 전문 지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회복을 바라본다. 개인적 회복은 회복 과정에 있는 개인에 의해 정의되는데, 이는 회복과 관련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게 된다(Slade, 2009; McWade, 2016 재인용). 이처럼 회복모델 담론은 정신장애인이 특정한 방법으로만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회복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치료결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회복의 지침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과정으로 인해 지침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Poole(2011)은 푸코의 ‘ 생권력(bio-power)’ 개념을 인용하며, 회복은 정신건강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올바르게 ‘교정하고, 치료하는’ 방법과 관련된 권력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담론의 집합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321)
회복의 한계로 개념적 모호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McWade(2016)는 제도적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회복의 개념적 모호성을 이용하여 회복의 정의를 현재 지배적인 생의학모델에 가깝게 재조정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변화를 통한 회복기반의 권리운동이 아니라, 기존 관행이 그저 ‘회복지향적’인 것으로 다시 결합되고 조정되었다고, 껍데기만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편 ‘회복’은 정신장애에 대한 신자유주의 및 시장주도 접근법을 강화하고 있다는 상당한 비판도 받고 있다.(321) 회복 이념은 당사자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서비스에 동료 인력(당사자)을 도입하는 긍정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예를 들어 전문적인 지원에 대한 접근은 감소하고, ‘당사자’는 저임금(혹은 무보수) 보조 인력으로만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사자의 경험적 지식을 동
등한 가치로 평가하기보다는 흡수하는 경우가 많았다(LeFrançois et al., 2013). Mad Studies는 이러한 회복 이념의 한계 및 신자유주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보다 더 발전적 단계로 나아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둔다.(322)
5. Mad Studies와 대안적 연구방법
*Mad Studies는 정신장애인 억압과정을 분석하기 위해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광기에 대한 의료모델의 지배에 대해 논의하고, 생의학ㆍ정신의학ㆍ임상과 관련된 권력ㆍ지식체계를 비판할 수 있는 틀을 만들기 위해 당사자의 목소리와 당사자에서 비롯되는 지
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를 위해 Mad Studies는 의료모델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Mad Studies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낙인을 찍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명확한 의료모델에 반대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요인이 포함된 정신질환의 사회적 모델을 옹호한다(Beresford et al., 2010). 사회적 모델과 의료모델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정신질환의 문제를 어떤 수준에서 접근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TV에서 조현병에 대해 듣는 유일한 시간은 뉴스에 나오는 누군가가 조현병 환자에 의해 피해를 받은 때이며, 이로 인해 대중은 조현병이 있는 다른 사람도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발생한다.(322) 이것은 확실히 생물학적 관점이며, 사회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정신장애인에게 약물을 제공하고, 전기치료를 하고,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런 종류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이처럼 의료모델은 개인주의적 접근이다(Beresford et al., 2010). Mad Studies는 일원화된 의료모델을 탈피하여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현상 기저에 있는 심리적ㆍ사회적ㆍ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이고, 이 맥락 내에서 주체를 찾아내는 것에 주력한다(LeFrançois et al., 2013). 의료모델은 정신건강연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치료와 서비스의 함의를 탐색할 때, 정신장애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치료의 장기화, 서비스의 폐해와 남용, 의료인과 환자 간의 권력 관계, 당사자가 정의한 치료 및 서비스의 영향’ 등의 함의가 도출될 수 있으나, 이러한 연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Middleton, 2013;
Faulkner, 2017 재인용). 이는 장애학(Disability Studies)과 대조를 이룬다. 장애학의 경우 연구에 장애인이 포함되고, 장애인이 주도하며, 직접 경험한 사람의 서술을 존중하는 교차학제(cross-disciplinary) 연구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진행된 연구는 ‘경험에 의한 전문가(장애학에서는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생산되는 지식을 존중하게 된다(Jones & Brown, 2013).(323)
현재의 상황은 의료적 모델에 도전하거나 대립하는 이론에는 연구 공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Russo, 2012). 실제 의료적 환경 내의 권력 격차는 연구물을 통해 영속화되고, 이는 지속적으로 높은 지위ㆍ권력ㆍ자금을 통한 지식산출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존재한다(Beresford, 2010; Jones et al., 2014; Russo, 2012). 정신장애인은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에 사용되는 ‘지식 생산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배제되어 왔다. 또한 전문가들은 교육을 통해 정신장애인은 이성적 사고를 못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고통 받아왔다(Wallcraft 2009, 133; Faulkner, 2017 재인용).(323)
Mad Studies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선 정신장애인 당사자에 의해 주도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창한다. 그것은 연구방법론에서 새로운 대안 필요성으로 연결된다.(324)
영국에서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서비스평가 및 정책에서 참여연구의 형태로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고, 이는 정신장애인이 실질적으로 연구경험을 얻을 수 있는 광범위한 기회가 되었다(Wallcraft & Nettle, 2009). 이를 통해 Jan Wallcraft, Peter Beresford,
Diana Rose, Alison Faulkner 등 영국의 정신장애인 연구자는 당사자 참여 및 담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Jones et al., 2014). Beresford와 Evans(1999)는 연구과정의 모든 단계에 정신장애인의 의미 있는 참여와 전반적인 통제 필요성을 제기한다. 정신장애인이 더 이상 수동적 역할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통제하는 연구는 의료모델이 여전히 주류인 현 상태에 명시적으로 도전하기 위함이며, 이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통찰력을 활용하여 연구 과정 내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관련된 새로운 균형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Jones et al., 2014). 그리고 이를 생존자연구(Survivor Research)라고 명명하였다.(324)
생존자연구는 연구과정에서 경험적 지식(Experiential knowledge)을 중시하는 방법론을 사용하는데, 경험적 지식은 ‘정신장애인이 직접 경험한 고통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당사자의 목소리가 주류 연구 및 지식 생산에서 배제되는 것에 도전하는 집합적 움직임에서 발생했다(Sweeney, 2013). 정신장애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경험적 지식은 정신적 고통을 이해할 새로운 수단을 제공하며, 고통과 함께 살거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지며, 대개 정신장애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생의학적 모델을 향한 급진적인 도전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도전과 동시에 정신장애인의 경험을 반영하여 생산된 연구는 당사자의 임파워먼트를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Faulkner, 2017).(325)
기존의 주류 연구방법인 생의학모델을 포함하여 관련된 모든 것을 급진적으로 비판하기 이해서는 정신장애인이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유효한 증거에 필요한 전제조건인 ‘객관성’과 관련하여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Glasby와 Beresford(2006)은 ‘객관성’에 대한 이념을 거부한다. 그들은 ‘연구자와 연구대상자 간의 거리(혹은 객관성)’를 유지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 해로울 수 있으며, 해석되는 경험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접적인 경험과 그에 대한 해석 간의 거리가 좁혀질수록(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에게 연구 참여가 제공되는 것) 왜곡은 줄어들고, 불명확하고 해로운 연구결과 또한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Beresford, 2010). Sweeney(2016) 또한 생존자연구와 전통적 생의학연구의 차이로 당사자의 경험 반영 정도를 지적한다. 전통적 생의학연구는 객관성, 중립성, 연구주제와의 거리감을 갖추어야한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은 ‘직접체험한 사람의 지식’을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Russo, 2012).(325) Mad Studies와 생존자연구 모두 이것을 뒤집는다. 정신의학에 대한 당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당사자의 관점, 당사자가 생각하는 우선순위, 무엇이 치료이고 무엇이 해가 되는지에 대한 당사자의 견해를 검열하지 않고 탐구한다. 이를 위해 인위적인 객관성 혹은 연구대상과의 거리감 유지를 시도하지 않고, 연구참여자들과 함께 파트너쉽 접근에 기반하는 성찰적 탐구(reflexive inquiry)를 통해 진행한다.(326)
Jones et al.(2014)은 Mad Studies와 관련된 연구방법으로 ‘지역사회주도연구(community-owned research)’를 제시한다. 지역사회주도연구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의해 통제되는 연구이다. Mad Studies의 경우 정신장애인에 의해 통제된다. 지역사회주도 연구는 이론적으로 전문적 연구자와 당사자 간의 권력 관계가 훨씬 더 순조롭게 바뀌기 때문에 연구기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며, 지역사회정신건강체계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사회주도연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자율성, 독립성, 자기결정원칙에 부합해야 함을 중요시하는데, 이러한 방법만이 주류 정신보건체계를 대체할 수 있으며 광기에 대한 진정한 탐색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Faulkner, 2017).(326)
Mad Studies는 객관성, 중립성, 과학성과 같은 기존의 엄격한 연구 틀을 거부한다고 볼 수 있다. Mad Studies와 관련된 생존자연구, 지역사회주도연구는 정신보건체계의 권력 및 권위와 관련된 ‘자신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연구방법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 가지고 온다. 여성학(women’s studies), 퀴어학(queer studies), 비판적인종차별학(critical race studies), 자문화기술지 등이다(Sweeney, 2016). 이 중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는 지배적인 담론을 전복시킬 수 있는 방법론으로 비판적이며 성찰적인 개인내러티브를 통해 거시적인 사회ㆍ문화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특히 자문화기술지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연구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경험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문화기술적텍스트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신념, 감정, 욕망, 정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데 강력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Jones, 2005; Castrodale, 2017 재인용). Mad Studies는 이처럼 견고한 접근방법을 통해 다른 사람들 경험뿐만 아니라 보다 폭 넓은 제도적, 사회적, 이론적 이해수준과 ‘자기 자신’과의 상호연결성을 조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327)
전통적으로 정신장애인은 정신건강서비스이용자임에도 그들이 받는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연구를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책 분야에서 정신장애인의 전반적인 참여가 실질적으로 향상되었음이 입증되었고, 이용자 참여와 관련된 평가 및 거버넌스가 사람중심 서비스 체계의 핵심 구성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연구과정 전반의 완전한 통제(어떤 질문을 하는지, 어떤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지,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가 정신장애인 손 밖에 여전히 많은 부분 남아있다(Jones et al., 2014).(327) Mad Studies는 당사자의 경험과 주관성을 중시하는 연구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신장애인의 경험적 지식을 기반으로 사회가 책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Faulkner, 2017).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경험적 지식을 받을 수 있는 다양성이 성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경험으로부터 생산된 지식을 정신건강서비스체계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Faulkner(2017)는 학문 주변에는 투과막(permeable membrane)이 존재하므로 당사자의 경험으로부터 생산된 지식을 기존 활동에 포함시키는 것은 ‘도전’이라고 표현한다. 게다가 고등교육기관에 내재되어있는 관료제는 ‘광인(mad people)’을 쉽게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 지적하며, 이를 위해선 지속적인 도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328)
Ⅳ. Mad Studies의 함의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서비스, 지식, 억압, 당사자운동과 관련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주는 Mad Studies는 1960-70년대 반정신의학과 그 이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당사자운동의 역사가 결합되어 형성되었다.(328) 최근 캐나다에서 발행된 책 Mad Matters 이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구체화되고 있다. Mad Studies는 Sanism을 통한 정신장애인의 억압 문제를 다루고, 행동주의를 통해 연대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대안으로 모색된 회복(Recovery) 개념을 보다 발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정신장애인과 관련된 지식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에도 초점을 둔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Mad Studies의 성과와 한계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 가져다주는 함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329)
첫째, Mad Studies는 새로운 대안인 Mad와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이에 동의하는 전문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정신장애는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어려움뿐 아니라, 정신장애인으로 지칭되면서 발생되는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신건강서비스는 당사자의 삶을 무시한 채 진단명에 따라 하나로 뭉뚱그려 동일하게 접근하는 개입으로 일관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해왔다. 기존의 정신의학 중심의 접근은 역설적으로 당사자로 하여금 자신을 더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Mad Studies는 ··· 지금껏 관심에서 가장 밀려나 있던 당사자 개개인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중심에 두는 인식의 전환을 추구한다.(329)
둘째, Mad Studies는 현재 지배적인 의료모델 중심의 정신건강체계에서 새로운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은 생정신의학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구도라고 볼 수 있으며, 정신건강실천 내에서 ‘조현병은 뇌의 질병’이라는 주장은 반복되고, 특정행동이 질환으로 분류되는 현상 등 생의학담론은 규칙적인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Poole, 2011). 생정신의학담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의견은 비주류로 취급되며, 대안으로 시도되기도 어려운 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329) 그러나 정신장애인 삶의 주체성 회복을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적이며. 생물학적으로 병리화시키는 설명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실제 2017년 세계 건강의 날에 발표된 UN 성명서는 우울증에 대한 생의학적 주요 주장들은 편향된 연구결과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제는 ‘화학적 불균형’에서 ‘권력 불균형’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Mad Studies를 통해 지배적인 담론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베델의 집에서 진행하는 ‘당사자연구’는 기존의 주류적 연구방법(e.g., 생의학적 접근, 객관성 유지 등)을 거부하고, 당사자의 경험적 지식을 중시한다(이진의, 2017). 환청과 망상 등 기존의 지식 및 이론이 탐구하지 않은, 탐구할 필요가 없다고 치부한 영역을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을 반영하여 새로운 연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핀란드의 Open Dialogue는 가족 및 사회적 관계망의 참여를 중요시하며, 당사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항정신성 약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정신장애인 위기개입 프로그램으로 긍정적인 연구결과들을 보여주었다(Seikkula & Alakare, 2007). 미국의 소테리아(Soteria) 하우스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 항정신성 약물을 최소로 사용하며, 비전문가를 직원으로 배치하고, 심리사회적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연구에 따르면 직업수준 및 독립생활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정적결과를 보여주었다(Mosher & Menn, 1978). Mad Studies는 이러한 대안적 접근법을 모색할 수 있는 함의를 가진다.(330)
셋째, Mad Studies는 정신의료체계 내 용어를 당사자의 용어로 전환하는 ‘언어의 전복’을 시도한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했다.(330)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Lakoff, 2006).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르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정체성과 관련된 활발한 논쟁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환자’라는 정신의학적 정체성을 거부하고, 소비자ㆍ생존자ㆍ이전환자, 비하와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당사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전복된 Mad와 같은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하였다. 언어의 전복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은 단순히 전문가에 의한 의학적 진단이나 꺼림칙한 기억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삶의 증거이며 긍지의 표현이 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여전히 환자로 지칭되고 있는 비율이 높다. 때론 침묵보다 치열한 논쟁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며, Mad Studies는 그러한 진보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331)
넷째, Mad Studies는 Sanism(정신장애차별주의)의 개념을 도입하여 현존하는 정신장애인의 억압을 드러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Sanism이 인종 혹은 젠더에 기반한 정신병리화를 약화시켰지만, 여전히 대다수 정신장애인을 병리학적으로 바라보며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인식하는 현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Overboe, 2007). 이는 감춰진 억압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도 중요하지만 정신건강영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관점과 의식의 변화도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와 관련하여 Holley et al.(2012)은 전문가들이 의식화(consciousness-raising)를 통해 자신에게 내면화된 특권이나 억압을 깨달을 수 있다고 언급한다.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정신장애인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정신건강시스템, 법률, 사업장, 교육 및 기타 제도를 변화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을 위해 함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실천의 경우 신자유주의 압력으로 인해 효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고, 쓸모없거나 비합법적인 전문가로 보일 수 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증거기반실천(DSM과 같은 정신의학도구 사용 등)을 통해 정신장애인의 상황을 분석하고 해석하였다는 비판도 존재한다(Baines, 2011).(331) 국내의 경우 사회복지사는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광기의 의료화에 관여했다. 예를 들어 2017년 9월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 정신장애인을 사회복지사 자격에서 배제한 것은 Sanism에 기반한 제도적 차별일 수 있다.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정신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관점과 특성을 오히려 잘 이해할 수 있다. Cook(2011)은 동료지원의 효과성은 많은 연구들을 통해 명백히 입증되었으니 이제는 효과성 검증에 머물기보다 동료지원서비스를 적극 실천하고 확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복지사는 Sanism과 함께 사회적으로 구성된 담론과 제도화되고 있는 지배 체제 해체를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며, 정신장애인 억압을 다룰 수 있다. 그리고 Mad Studies는 반억압적 사회복지 실천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332)
다섯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 있어서 당사자의 경험적 지식이 주체로 작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소위 ‘광인(狂人)’이라 지칭된 사람들의 발언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배제되었다. 푸코에 의하면 권력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합법화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지식에 도전할 수 있는 다른 지식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행동한다. 정신장애인은 현재 지배적인 정신의학담론에 따라 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하지 않는 경우 병식(insight)이 결여된 비이성적 상태로 설명되어진다(Leblanc & Kinsella, 2016). Mad Studies는 당사자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배제하고 그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전문가 중심의 연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핵심은 당사자들의 삶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신장애에 대한 접근방식은 기존의 관점과 이론에 근거하여 개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당사자들의 삶이 존재하는 식이었다.(332) Mad Studies는 이러한 기존의 접근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엎으며, 당사자 개개인의 고유한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는 Mad Studies가 연구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이 직접 경험한 고통에서 나오는 ‘경험적 지식’을 활용하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과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의 비참한 이야기 혹은 영웅적 이야기와 관련된 경험들이 정신건강정책 및 전문가 담론에 추가되기만 할 뿐, 공식화된 지식의 불균형은 현재까지 쉽사리 바뀌지 않고 있다(Russo & Beresford, 2015). Costa et al.(2012)은 이처럼 정신장애인 이야기가 정신의학담론의 논리와 주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되는 현상을 ‘환자 포르노(patient porn)’ 혹은 ‘장애 관광(disabillity tourism)’이라 명명한다. 정신장애인의 학문적 역량 구축을 위한 학문적 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연구기술을 훈련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학문 주류가 가지고 있는 태도에 도전할 수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잠재력을 지원해야하는 것이며, 결정적으로 광기와 정신건강에 대한 지식의 본질을 확장시켜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Jones et al., 2014).(333)
여섯째, Mad Studies는 외부적 표출을 통한 집단적 자기옹호활동 중시한다. Mad Studies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았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정신의학은 기존 정신의학 중심의 패러다임에 반기를 드는 운동이었지만, 당사자중심이라기보다는 전문가중심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 Mad Studies와 관련 있는 대표적인 집단적 자기옹호활동으로 Mad Pride가 있다. 이 퍼레이드는 1993년 처음 Psychiatric Survivor Pride Day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Madㆍ소비자ㆍ생존자ㆍ이전환자ㆍ반정신의학 커뮤니티의 모두가 참여하여 자신들의 권리와 경험을 알리고 투쟁하는 것을 지향한다.(333) 이는 정신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두며, 자신들의 경험에서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Reaume, 2008).(334)
일곱째, Mad Studies는 정신장애인 억압에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를 겨냥한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고, 영국에서의 생존자운동은 서비스 체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종종 서비스 체계에 포섭되어졌다. ‘회복(Recovery)’과 ‘마음챙김(Mindfulness)’과 같은 아이디어는 정신건강정책과 실천에 있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였고, 정신건강정책과 실천에서 의료모델의 지속적인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역할이 환치되었다(Beresford, 2016). Mad Studies는 이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지배적인 정신의학담론과 신자유주의가 결합하여 신자유주의가 규정하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 장애가 되는 현상에 대응하고자 한다. 우리는 현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외부의 압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압박에서 오는 불안감과 분노를 타자에게 돌리게 된다. 비
장애인은 정신장애인에게 혐오를 덧씌운다. 정신장애인 배제는 어쩌면 정상으로 규정되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고자 함의 역설적 상황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가속화는 어쩌면 더욱더 자기착취를 가속화시킬 수 있지만, 본질은 약해진 자아가 아님을, 그것에는 주체를 억압하는 기제가 있음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연대’라는 힘임을 발견해야 한다. Mad Studies는 다양한 존재와 신념을 포용하며, 거대한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연대체로 발전될 수 있다.(334)
여덟째, Mad Studies는 정신장애인의 ‘증상’이 아닌 ‘권리’에 초점을 두는 관점의 전환을 통해 지역사회통합을 촉진하는 정책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334) Mad Studies는 개인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생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주요한 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미국의 당사자 활동가 쥬디 챔벌린은 정신장애인이 되는 순간 개인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의료모델’에 기반하여 의료서비스에만 의존하게 됨으로써, ‘고용, 주택, 기타 사회적 기회’에 대한 접근에서 배제된다고 언급한다(Chamberlin, 1990). 이탈리아의 바자리아 또한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지역사회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개혁을 한 이유는 정신장애인의 존엄성과 더불어 ‘시민권(법적ㆍ사회적ㆍ경제적 등)’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Burti, 2016). 국내의 경우 2017년 5월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에 ‘ 제4장 복지서비스의 제공(제33조-38조)’이 새롭게 생성되었다. 선언적인 문장에 그치고 있다는 한계는 존재하지만 여기에는 ‘고용, 교육, 문화ㆍ예술 활동, 주거, 가족지원’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Mad Studies는 정신장애인의 증상이 아닌 ‘권리와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바자리아는 ‘자유가 치료다(la libertà e terapeutica)’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혁을 진행했다. Mad Studies는 이에 더 나아가 ‘복지가 치료다’라는 명제로 관점의 전환을 도모하고 이러한 기반아래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촉진할수 있는 실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335)
Ⅴ. 결론
Mad Studies는 다양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정신과적 진단 및 치료’와 어떤 식으로든 접촉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은 ‘정신의학’과 ‘Mad Studies’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Mad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정신의학에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우려가 존재하며, 작금의 상황에서는 Mad Studies 또한 그 안에 얽혀서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Mad Studies는 억압된 정신장애인의 존재를 가정하지만, 정신의학과 관련하여 긍정적인(혹은 최소한 억압이라고 할 수 없는) 경험을 한 정신장애인도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이 Mad Studies의 주체에 포함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Cresswell & Spandler, 201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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