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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페미니즘

교차성 논의의 이론화 및 방법론적 쟁점: 사회학적 수용 및 유럽에서의 수용을 중심으로(홍찬숙, 2019)

홍찬숙. 2019. 교차성 논의의 이론화 및 방법론적 쟁점: 사회학적 수용 및 유럽에서의 수용을 중심으로. 젠더와 문화, 12(1), 7-39.

 

1. 들어가며

미국 흑인 페미니즘에서 실용적인 방식으로 제기된 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한 논의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여성 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학문적 조사 및 분석을 위해 수용된 바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나 해러웨이(Dona Haraway) 등의 근대과학 비판과 만나면서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확산, 수용되었다. 교차성 개념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그것은 상당히 이론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방법론적 쟁점들이 야기되었다.

교차성 논의가 이론화 되는 과정은 두 가지 경향과 관련되는데, 하나는 교차성 개념을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실천에서의 주체화과정 또는 차이의 정체성이라는 구체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사회학의 일반적인 불평등 연구방법론으로 가공하려는 경향이다. 이 경우에는 교차성 논의가 페미니즘 전반에 불러일으킨 정치적 또는 철학적 효과에 유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평등의 복잡성에 대한 연구방법론 개발을 위해 교차성 개념을 수용했다.(8)

다른 하나는 미국 흑인 페미니즘에서의 주체성 찾기 및 흑인 여성지식인들의 주체화 과정과 관련하여 개념화된 교차성이 미국 백인 여성지식인들의 근대과학 비판 속에 수용되면서, ‘평등에서 차이로 불평등 및 차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 변화하는 경향이다. 이 경우에는 소위 탈근대주의탈구조주의철학과의 연관성이 많이 지적되는데, 그것은 백인 페미니즘의 근대과학 비판이 문화적 맥락 분석이나 탈구조주의 철학과 결합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에는 소위 사회적 구성주의가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 해러웨이가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시한 회절(diffraction)’이라는 자연과학 개념이 사회적 구성주의를 넘어서서 신유물론방향으로 새롭게 논의되면서, 교차성 개념은 특히 유 럽에서 신유물론 경향과 결합하게 된다.

교차성 논의가 이론화해온 이 두 방향은 모두 현대사회의 불평등이 사회학 또는 페미니즘의 전통적 관점들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을 만큼 다양해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미 1970~80년대부터 성·인종·민족 등 귀속적범주에 기초한 불평등 문제가 체계적으로 제기되면서 계급·계층론의 성취중심적이고 근대적이며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분석틀의 한계가 지적되었다. 또 울리히 벡(Ulrich Beck)집합범주의 평균값을 중심으로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 제기개인화테제를 한 바 있다.

현대사회에서 젠더 불평등은 유일한 불평등이 아닌 동시에 전반적 사회불평등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젠더 불평등에 대한 여러 방향에서의 인식 변화가 젠더의 교차성불평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다.(9)

 

2. 교차성 논의의 이론화 및 방법론적 쟁점

1) 사회학적 이론화 및 쟁점

(1) 이론적 혼동: 구조주의에서 탈구조주의 유령으로?

마리아 카르빈과 사라 에덴하임(Maria Carbin and Sara Edenheim, 2013)에 의하면, 2000년대 초반 이후 교차성 개념은 유럽과 북미의 젠더연구에서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교차성이) 젠더연구를 대신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하기 위한 공통의 플랫폼으로 다루어져야 할지(Hancock, 2007) 아니면 젠더연구의 결절점으로 간주되어야 할지(Bilge, 2010; Lykke, 2005)에 대해 논의되었다. () 더 나아가서 그 개념은 정치적으로 사용되었고, ‘교차성의 주류화를 어떻게 달성할지(Dhamoon, 2011), 유럽연합에서 그것의 함의는 무엇인지(Verloo, 2006), 그것이 인권정책의 방법론으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Yuval-Davis, 2006: 203)에 대한 학술논문들도 출판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교차성이 제도화되는 여정이 잘 진행되고 있고 또 정치의 관료화 과정 속에 포괄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Carbin and Edenheim, 2013: 2).

교차성 개념이 제도화하는 과정은 유럽과 북미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구성주의 접근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Geerts and van der Tuin, 2013). 그러나 교차성 개념의 제도화가 무리 없이 진행된 결과, 그것은 “(백인) 페미니즘에 대한 위협과 갈등을 말해주는 신호에서 합의도출의 기표로”(Carbin and Edenheim, 2013: 2) 변화했다. 그럼으로써 교차성 개념이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이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페미니즘이 제도화되었다.(11) 교차성은 페미니즘 내부의 갈등을 잠재우는 기표로 작용함으로써 공통언어의 꿈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그들은 교차성 개념이 구조주의적 (흑인) 입장주의 페미니즘으로부터 자유주의적으로 전유된 과정이라고 해석했다.(12)

교차성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흑인 여성법학자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쇼(Kimberle Williams Crenshaw, 1991)와 입장주의 흑인 페미니스트 파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 1998)가 모두 급진적 흑인 페미니즘의 영향 하에서 교차성 개념을 비유적으로 사용했는데, 이들의 존재론적 입장은 탈구조주의가 아니라 구조주의였다. 크렌쇼는 교차로, 콜린스는 매트릭스에 교차성 개념을 비유하여 설명했다. 그런데 구조주의적 개념인 미국식 교차성이 대서양을 넘으면서 구성주의적인 영국/유럽식 교차성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단순히 대륙 간의 지리적 차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성 개념의 사회학적 수용이라는 또 다른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 유럽의 몇몇 교차성 이론가들은 구조주의자들인데 반해서, 교차성 개념의 사회학적 사용을 선도한 미국 여성사회학자 레슬리 맥콜(Leslie McCall)은 대표적인 구성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맥콜은 복잡성(complexity)’의 관점에서 교차성 개념을 재해석했다(McCall, 2005). 말하자면 복잡한 불평등이라는 현대 사회학적 현상 전반을 그녀는 교차성개념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3가지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각각 반범주적(anticategorical)’, ‘범주 간(intercategorical)’, ‘범주 내(intracategorical)’ 복잡성을 규명하기 위한 방법론인데, 이 중 범주 내 복잡성이 본래적 의미의 교차성에 해당한다.(12)

() 내 의도는, 다층적이고 서로 교차하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을 연구하는 데 사용될 광범위한 방법론적 접근법에 대해 상술하여 가장 공통된 접근법들의 특징들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것들에 비판적 개입을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나는 세 가지의 접근법에 대해 기술한다. 세 가지 모두 복잡성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복잡성을 다룰 필요에 대한 대응이며 ()(McCall, 2005: 1772-1773). (12-13)

반범주적 복잡성이란 범주 자체를 해체하려는 방향을 말하고, 범주 간 복잡성이란 현존하는 범주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 즉 범주들의 배치(configuration)에 따라서 복잡해지는 불평등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맥콜은 자신의 입장이 범주 간 복잡성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 양 극단 사이에 범주 내 복잡성이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반범주적 복잡성처럼 범주의 경계가 만들어지고 정의되는 과정을 중시하면서도 범주 간 복잡성처럼 안정적이고 지속성을 갖는 관계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은 집단적인 체험(lived experience)’이다(McCall, 2005: 1773-1774).

맥콜은 반범주적 복잡성입장의 철학적 기초는 언어적 전회라고 보고, 그것의 연구방법으로서 민족학적 재현(ethnographic representation)’을 든다. 반면 유색여성 페미니즘과 관련된 범주 내 복잡성입장에서는 범주화가 사회적 실재성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므로 해체주의나 다문화주의(또는 정체성 정치 지지자)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단지 연구방법에 있어서는 여기서도 개인서사단일집단 연구에서 시작하여 사례연구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여서, 결국 재현의 방법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내세우는 범주 간 복잡성이 비록 덜 여성학적인 경향은 있으나 한층 더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이라고 주장한다.(13)

범주 간 복잡성의 입장을 맥콜은 범주적 접근(categorical approach)’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는 집단적 범주 자체를 정의하거나 재현하기 보다는 범주들 간의 관계성구조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종이나 젠더 같은 범주들을 처럼 사용한다.(13) 그러나 반드시 정태적인 방법은 아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예컨대 여성’)이 보다 세분화한 사회적 집단들(예컨대 흑인 여성/백인 여성/노동 계급 여성/중산층 여성 등)의 경험적 현실을 반영하도록 연구할 수 있고, 또 그런 식으로 복잡성을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으로는 체계적 비교 및 다집단 연구의 방법을 들고 있다. 그런 방법을 통해 예컨대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계급 불평등 및 인종 불평등의 구조변화를 상세히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법론의 철학적 바탕으로 맥콜은 비판적 실재론을 들며, 양적 방법을 사용하지만 결코 실증주의는 아니라고 말한다(McCall, 2005).(14)

본인이 비판적 실재론을 거론했음에도 카르빈과 에덴하임이 그녀를 구성주의자로 분류한 것은 정확한 판단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카르빈과 에덴하임은 교차성에 대한 맥콜의 이러한 사회학적 수용이 북유럽 페미니스트 연구자인 니나 리케(Nina Lykke)에게 이어짐으로써, 교차성 개념이 다차원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보편화된다고 설명한다. 미국 여성사회학자인 캐시 데이비스(Kathy Davis) 역시, 교차성 개념이 성공적 유행어(buzzword)’가 되고 훌륭한 페미니스트 이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의 약점이라고 지적된 애매성과 개방성 덕분이라고 보았다(Davis, 2008). 그러나 카르빈과 에덴하임은 이런 이론적 혼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애초에 구조주의적 개념이었던 교차성 개념이 탈구조주의 페미니즘의 유령이 되고 동시에 흑인페미니즘 역시 유령이 되었다고 비판한다.(14)

 

(2) 사회학적 프레임: 복잡성

카르빈과 에덴하임은 교차성 논의가 세 가지를 약속하기 때문에 확산될 수 있었다고 본다. 복잡성, 비판성, 분열 극복을 약속하기 때문인데, 이 중에서 특히 사회학적 수용과 관련되는 것은 복잡성이다.

그렇다면 이런 담론에서 교차성의 유일한 으로 규정되는 것은 페미니스트 분석을 위해서는 젠더만 유관하다고 믿는 페미니스트이다. 그러나 () 복잡성을 이렇게 추구한다면 그것은 세계를 지도 그리듯 구획함으로써 우리는 복잡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고 오직 특정한 틀이라는 의미의 지식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실증주의 연구 의제와 가까워진다. () 교차성 문헌에서 복잡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 아마도 복잡함(complex)’ 보다는 번잡함(complicated)’을 의미하는 ()(Carbin and Edenheim, 2013: 6-7).[각주:1]

실제로 맥콜을 비롯하여 교차성 개념을 사회()학적으로 수용하는 (여성)학자들은 현대사회의 (젠더)불평등이 복잡하며, 과거의 사회학적 개념들로는 그러한 복잡성을 분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교차성 개념을 수용했다(Bredstrṏm, 2006; Cho, Crenshaw, and McCall, 2013; Choo and Ferree, 2010; McCall, 2005; Yuval-Davis, 2006). 사회학적 불평등 연구 방법론의 개발을 위해서 페미니즘의 교차성 논의를 참조한다는 취지를 밝힌 맥콜의 경우에는, 불평등의 역동성이 관련 집합적 범주들의 유동성에 의해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정된 범주들 간의 관계, 즉 구조가 변화함으로써 야기된다고 설명한다. 불평등한 집합범주들 내부개인수준에서 나타나는 미시적 (micro) 유동성에는 유의하지 않고, 일단 그러한 범주들을 일정하게 고정한상태에서 집합범주들 간의 관계라는 중간(mezo) 수준에서의 배치형태 및 그 변화를 보는 것이 가장 유용한 불평등 연구의 방법론이라는 주장이다.(15)

이 특정한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 속에서 불평등의 상이한 배치들은 상이한 맥락들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로부터 오히려 복잡성은 비롯된다. () 요약하면, 전통적인 분석범주들을 가지고 시작해서 개인들을 그런 범주들로 분류하고, 개인들이 속한 그런 집단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임금불평등의 관계들을 살펴봄으로써, 나는 다층적이고 교차하며 갈등하는 여러 차원의 불평등 전체의 구조를 어떤 단 하나의 () 차원만 가지고는 적절히 묘사할 수 없다는 복잡한 결과에 도달했다(McCall, 2005: 1791).

이러한 방법론에서는 발전된 양적 방법과 대규모 데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증주의나 경험주의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러나 자신을 비롯한 다수의 사회학자들은 오히려 실증주의 탈피를 당연시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녀는 실증주의의 특징으로 예측 가능함단선적 설명을 들면서, 실증주의 탈피가 반드시 뭐든 다 된다는 탈근대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은 복잡한 짜임새를 가지지만 그래도 어쨌든 짜임새는 있다는 입장으로 연결되며, 그런 입장은 카오스 이론에 빗댈 수 있다고 한다.

맥콜과 달리 주해연과 미라 마르크스 페리(Hae Yeon Choo and Myra Marx Ferree)는 교차성의 이론화를 다음의 세 관점으로 분류한다. 1) 다층적으로 주변화된 집단, 특히 유색인 여성을 포괄(inclusion)’하는 관점, 2) 상호 독립적인 불평등의 축들을 단순히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중첩된 결과가 교차성으로 나타남을 분석하는 분석적 상호작용의 관점, 3) 다양한 제도들이 중첩되어 불평등을 결정하는 복잡한 배치에 이른다는 제도 우선성의 관점이 그것이다.(16) 이중에서 특히 포괄을 강조할 경우 차이를 절대화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17)

이들은 맥콜과 달리, 맥콜 자신의 관점(‘범주 간 접근’)과 맥콜이 반범주적 접근이라고 부른 관점을 둘 다 분석적 상호작용으로 묶어서 설명한다. 맥콜은 과정 중심 분석의 구조적 유형으로, 맥콜이 반범주적 접근이라고 부른 것은 그것의 한층 더 구성주의적 형태로 구분할 뿐이다. 즉 전자는 구조적 과정에, 후자는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권력 관계의 장에서 자아 형성에 작용하는 경쟁적 과정에 초점을 두지만, 둘 다 모두 체계보다 변화하는 과정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우선적 모순과 부차적 모순을 구별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반면에 제도 우선성의 관점은 교차성 자체를 복잡계로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체계로서의 교차성(systemic intersectionality)’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주해연과 페리는 이 관점을 자신들의 관점이라고 소개한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교차성을 체계라는 거시(macro) 수준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차성의 밖은 없으며, 교차성만을 연구하는 접근법(intersectiononly approach)이라는 것이다. 교차성이라는 복잡계는 말하자면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와 인종 관계에 의해 동시적으로 구성되는 정치경제를 의미하거나, 생물학적 복잡계 모델을 불평등 연구에 적용한 사례를 일컫는다. 또한 모든 체계는 우발적이고 경로 의존적이므로, 역사적으로 특정한 교차성은 계급, 인종, 젠더를 공동구성하는 제도들로 나타난다고 한다. 따라서 범주가 아닌 제도우선성의 관점에서 교차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각주:2](17)

교차성을 국제적 인권정책의 방법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 유발-데이비스(Yuval-Davis, 2006)는 교차성 개념을 처음 사용한 크렌쇼의 교차로비유가 (여러 불평등의) ‘더하기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평가한다. 또한 크렌쇼는 구조적 교차성과 정치적 교차성을 구별했는데, 구조적 교차성의 경우에도 거시적 차원에서부터 경험적 차원까지 다차원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애초에 유색인 여성의 특수한 지위에 초점을 두었던 교차성 개념이 모든 집단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되면서, 지배적 방식의 계층연구나 특정 형태의 정체성 정치에 도전할 수 있는 분석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특히 지위사회적 집단화가 각각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개인 및 집단의 지위 정체성에서 출발하여 제도적 체계라는 거시 차원으로까지 확대된 교차성 개념은, ‘국내적 교차성(domestic intersectionality)’에 국한된다는 사실로 인해 다시 한 번 비판받으며 그 초국적 발현(transnational emergence)’의 맥락으로 또 확대된다(Patil, 2013). ‘교차성식민지 근대성의 맥락에서 발생하였으나 식민지 근대성의 결과 방법론적 일국주의에 기초하여 국내적 틀 안에서만 사용되는 매우 미국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가부장제에서 교차성으로의 전환이 결국에는 여러 가부장제들에 대한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이다(고정갑희, 2011과 비교).(18)

교차성 개념이 개인 정체성, 집단 정체성, 중범위 구조, 거시 구조, 지구적 차원으로 계속 확대되면서, ‘유행어가 되며 성공했다거나(Davis, 2008) 또는 잡동사니로 전락했다는(Carbin and Edenheim, 2013)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교차성 개념의 창시자인 크렌쇼와 사회학적 계승자인 맥콜은 법학자 조수미와 함께(Cho, et al., 2013), 교차성을 원심력과 구심력의 상호작용이 극대화되는 (field)’의 개념으로 발전시키자고 제안한다. 그럴 때 교차성은 분석적 예민함권력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동일성 및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18) 불평등(또는 차별) 범주들은 유동적이고 변화하는데, 그 유동성과 변화는 권력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권력의 역동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장으로서의 교차성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정리는 카르빈과 에덴하임의 지적과는 정반대로, 교차성 패러다임에서 필요한 것은 이론적 관점이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19)

 

2) 유럽 수용 과정에서의 이론화 및 쟁점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1970년대 말부터 페미니스트 학자들에 의해 다양성이나 교차성 관련 문제들이 내용적교차성개념은 사용하지 않았어도으로 논의되었다(Brah, 2004: 78). 그러나 그런 논의가 정책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영국의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삼중의 억압개념에 대한 비판이 1983년에 나왔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흑인’, ‘여성’, ‘노동자 계급각각의 특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여 그 세 차원을 단순히 더하는 정체성의 정치였기 때문이었다(Yuval-Davis, 2006: 194-195). 당시부터 여러 불평등 축들의 단순한 합이 문제인지 아니면 교차성이 하나의 구성적 과정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각주:3](19)

그러나 유럽에서 교차성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2000년대 이후인데, 그 계기는 유럽연합 불평등 정책에서 일어난 변화이다.(19) 양성평등을 겨냥한 정책이 30년 정도 시행된 이후 유럽에서는 지속적인 정책변화가 나타났다. 예컨대 1997년 암스테르담 조약, 2000년 기본권 헌장, 유럽 헌법 법안, 2004년 유럽연합 집행기관 녹서 등을 통해서 다변적 불평등(multiple inequalities)’에 의해 야기되는 차별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화했다. 그러면서 불평등의 그러한 복잡성에 대한 적절한 접근방법으로 교차성 이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Jaunait and Chauvin, 2012: 2; Lombardo and Verloo, 2009; Verloo, 2006; 2013). (20)

양성평등에서 다변적 불평등으로 정책 초점이 변화한 결과, 유럽에서는 불평등 범주들 간에 경쟁이 일어나며 젠더평등의 목소리가 오히려 약화되었다고 한다. 동시에 네덜란드나 북유럽처럼 양성평등이 당연한 가치로 인정되던 곳에서는 이주민 여성에 대한 낙인화(‘이슬람’)가 진행되는 방식으로 유럽적 형태의 인종주의가 구성되었다(Verloo, 2013). 이처럼 유럽에서는 불평등 구조에 대한 논의가 복잡해지는 과정이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불평등의 다양한 축들에 대한 관심이 미국처럼 소수자 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책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경합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교차성 논의의 실용적 측면보다 오히려 혼란스러움이 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보다 한층 더 이론화가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논의에서는 교차로’, ‘매트릭스’, ‘횡단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등 체계의 교차성(systemic intersectionality)’을 강조한다면, 유럽에서는 수행적 과정’, ‘리좀구성주의 교차성(constructivist intersectionality)’이 강조된다(Geerts and van der Tuin, 2013: 171; Phoenix and Pattynama, 2006: 188). 예컨대 교차성의 정치적 정체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사학적 화법을 통해 수행되며, 근대적 사고를 해체하는 탈식민주의·탈구조주의 사고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Brah, 2004). 이렇게 교차성 논의는 유럽으로 오면서, 탈근대적이거나 또는 탈근대주의에 반대하는 구성주의적 전회를 겪는다.(20)

스웨덴인과 이주민 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서 출발하는 신인종주의 담론에 대한 지적이라든가(Bredstrṏm, 2006),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의 정체성개념을 주체성(subjectivity)’이라는 탈구조주의적 개념안정성뿐만 아니라 변화와 균열을 표현하는이나 되기(becoming)’, 푸코의 주체화(subjectification)’로 대체함으로써 교차성 개념에 대한 재작업을 시도하는 경우(Staunæs, 2003)가 나타났다.[각주:4] 영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교차성 이론에 대한 관심은 과거의 이중의 억압개념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는데, 미국과 달리 68운동 이후 유물론적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특히 계급과의 교차성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Jaunait and Chauvin, 2012).

이렇게 미국 발 교차성 논의가 유럽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그것은 정체성/불평등/정치화와 관련된 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페미니즘이 어떤 여성의 정체성을 재현하는가?, 불평등 구조가 어떻게 재현되는가?, 소수자의 정치적 정체성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등의 문제로 인식되었다.[각주:5] 그리하여 앞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탈구조주의 철학과 결합하는 한편, 분석적으로는 사회학이나 인권정책 연구에 수용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데 한동안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이해되었던 해러웨이의 회절의 방법론을 매개로 삼아서, 사회적 구성주의는 물질적 전회의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변화를 겪는다.(21)

해러웨이는 파동 운동 방식의 특징인 회절틈을 통과할 때 입자와 달리 직선으로 통과하지 않고 휘어져서 간섭무늬를 만들며 통과하는 현상을 이분법적인 불평등 범주의 복잡한 배후 맥락에 비유하는 역사 해석의 방법론을 제시한 바 있다(민경숙, 2006). 그런데 파동의 이런 성격을 표현하는 간섭’, ‘회절등의 개념이 캐런 버라드(Karen Barad, 2007)에 의해 양자 물리학의 현상으로 설명되면서, ‘재현을 강조하는 사회적 구성주의가 비판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구성주의의 핵심 개념인 수행성이 인식론적 재현 수준의 수행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수준에서 나타나는 물질의 수행성으로 설명되고, 교차성 논의 역시 신유물론 관점에서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각주:6]

신유물론이 교차성 이론에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유럽 인권정책의 발전과 교차성 논의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여성연구자(Verloo, 2009, 2011; Verloo, 2013에서 재인용)간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부터이다. 이 경우에 간섭개념이 양자역학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각주:7], 에벌린 기어츠와 아이리스 반 데어 투인(Evelien Geerts and Iris van der Tuin, 2013)은 버라드의 양자역학적 설명에 기대어서, 그것을 재현의 정치학에 대한 존재-인식론적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해러웨이가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분야의 연구자이기 때문에, ‘회절방법론이 단순한 인식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존재론적 또는 물질적 차원으로 연결되는 측면도 있다.(22)

장애연구를 한 잉군 모저(Ingunn Moser, 2006)는 특히 간섭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페미니스트 문화연구(‘교차성논의)민족학방법론의 젠더연구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의 계보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민족학방법론과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에서 이미 교차성 개념이 물질적 간섭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회생활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특성()은 상호작용의 성취결과라는 민족학방법론의 주장(Zimmerman, 1978)이 이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음은 명백하다. 양자[민족학방법론의 젠더연구와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인용자]는 모두 사회질서 및 차이들을 포함하는 현실들이 주어지거나, 안정되거나, 분명한 것이 아니라 성취된 효과들이라고 본다. 일상적 행위들에 의해 확립되고, 다시 행위들에 의해 재확립되어야 하는 그런 효과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만 현실들은 보편성을 갖거나 기정사실이 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Moser, 2006: 542).

모저가 간섭개념에 유의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차성이 더하기(+)를 말하는지 곱하기(x)를 말하는지를 따지는 수학적 비유에서 벗어나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모저에 따르면 해러웨이가 처음 도입한 간섭개념은 실천이 단순히 담론적, 재현적, 이론적 실천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개입하고 간섭하여 실재들을 야기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방향즉 존재론 차원으로 발전해왔다. 여기에 모저가 더 보태려는 내용은,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즉 단순히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복잡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파동 운동의 의미를 그렇게 이해하며, ‘간섭의 특정 패턴들을 밝히는 것이 경험연구의 내용이라고 보았다.(23)

해러웨이의 회절개념을 발전시킨 간섭의 특정 패턴들개념은 퀴어이론가인 쟈스비 푸아(Jasbir Puar, 2012)에게 오면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어셈블리지개념으로 재해석된다.(23) 그는 버라드를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 신유물론자 및 여타 신유물론자들을 인용하면서, 특히 맥콜의 교차성 개념이 내부의 차이(예컨대 유색여성 내부의 차이)’보다 다른 범주(특히 백인여성)와의 차이를 강조하여 역설적으로 유색여성을 타자화한다고 비판한다. 즉 탈구조주의의 언어적 의미화사회적 구성주의는 물질과 담론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인간의 몸과 같은 물질 역시 사물(thing)’이 아니라 행위(doing)’라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통제는 의미구성이나 정체성 규정 등의 재현을 통해 육체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대한 직접적 침범(affect)을 통해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푸아는 크렌쇼가 애초에 주장했던 내용 역시 과정사건으로서의 정체화(identification)’였다고 설명한다.(24)

 

3. 입장이론에서 신유물론까지: 교차성 개념의 이론화에서 도출되는 논점들

애초에 미국 흑인 페미니즘에서 다소 실용주의적으로 사용되었고 또 페미니즘의 입장이론과 가장 가까웠던 교차성개념이 사회학, 탈구조주의, 신유물론을 거쳐 이론화되는 과정에서, 위에서 보았듯 다양한 쟁점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불평등 범주들 자체의 고정성/유동성의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핵심 연구자는 사회학자인 맥콜인데, 그녀는 일단 범주들을 고정한 상태에서 그것들 간의 배치를 통해 불평등의 변화를 관찰하는 방법을 제안했다.(24)

반면 탈구조주의 입장에서는 범주들이 계속 변화한다는 미시적 또는 상호작용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이때 변화는 재현수준에서 일어난다.(24) 즉 정체성이 어떻게 다양하게 재현되는가의 문제이다. 시각을 다시 정체성에서 구조의 측면으로 옮기되, 맥콜처럼 범주들의 배치 패턴이 아니라 교차하는 제도들의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신유물론 쪽으로 오면 정체성이 단순히 복잡한 의미의 맥락 속에서 발현하고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 물질적으로 가해지면서 동시에 가변적인 어떤 힘들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생하는 과정 또는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말하자면 신유물론의 설명 역시 미시적이거나 상호작용적인 (그러나 물질적인) 맥락에 관한 것이다.(25)

결국 교차성 논의의 이론화 과정에서 등장하는 공통의 핵심어는 복잡성, 맥락, 패턴 등이다. 여기서 복잡성을 고정된범주들의 관계라고 보는 맥콜의 다소 구조주의적 관점을 제외하면, 복잡성은 발현가변성의 문제로 이해된다. 사회적 구성주의는 가변적인 불평등 범주 또는 정체성의 발현에 대한 논의이고, ‘제도 우선주의는 제도 시스템의 거시적 발현에 대한 것이다. 이 중에서 미시적·상호작용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정체성 또는 불평등 범주의 발현과 관련하여, 그것이 의미 수준에서의 발현이 아니라 물질 수준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 신유물론의 관점이다.

논점은 다시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정체성 또는 정체화한 몸이라는 미시적 수준의 발현과 거시적 시스템의 발현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결정성의 특징을 갖는 물질개념이 개별적 수준을 뛰어넘어 사회 시스템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앞의 문제는 사회학에서 중심 논점이었던 행위자-구조 또는 미시-거시 관계를 과거의 분자적 구조관점에서 복잡성관점으로 이동하여 설명하는 것이고, 뒤의 문제는 미시세계 물질의 비결정성에 대한 양자역학적 이해를 몸이나 사회세계라는 거시 수준에서 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앞의 것은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과 같은 방식으로 행위자-구조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다.(25) 말하자면 구조화 이론에 내재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 및 분자적 구조 개념을 벗어나서, 가변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즉 유동하는 구조들의 결과(‘발현’)로서 개인 및 제도화된 관계들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일 수 있다. 반면 뒤의 문제는 앞서 말한 가변적 요소들의 상호작용또는 유동하는 구조들이 양자역학의 비결정성개념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가변성이 단순히 관계(상호작용 또는 패턴)의 변화만이 아니라 요소들 자체의 가변성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양자역학적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이다.[각주:8](26)

 

5. 교차성 논의 자체의 역사적 맥락과 신유물론 관점의 유용성

해러웨이의 회절의 방법론에 의하면, 어떤 사건이나 의미는 입자 움직임의 결과가 아니라 회절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해러웨이는 여기서 파동의 고립된 간섭 현상을 어떤 사건이나 의미의 출현에 개입된 역사적 맥락에 비유한다.(30) 회절방법론이란 어떤 사건이나 의미를 애초부터 단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의 움직임이 겹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였으며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해러웨이는 단지 비유적으로만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이 자연과학적으로 거시적 창발(emergence)’에 해당되는지 아니면 미시적 사건화에 해당되는지에 대해서는 구별하지 않았다.(31)

반면 물리학자 출신의 버라드는 양자역학의 사건화개념으로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발생대신 절단(cut)’의 개념을 사용한다. 즉 어떤 사건이나 의미는 관찰자가 그것의 파동함수 붕괴즉 파동처럼 행동하지 않고 분리된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를 관찰한 결과일 뿐이다. 말하자면 관찰 과정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물질 내부의 작용(intra-action, 이하 내부작용으로 표기[각주:9])’에 의해 그 사건이나 의미가 파동 상태로부터 절단된 결과라는것이다.[각주:10] 관찰에 의해 절단이 일어나면 물질은 파동성을 잃고 분리된 입자처럼 관찰된다.[각주:11]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설명하는 물질은 전자처럼 원자 하위 수준의 미시적 물질이기 때문에, 사회적 사건이나 의미와 같은 사회세계의 현상들을 양자역학의 사건화에 비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각주:12](31) 이처럼 미시-거시의 수준에 유의할 경우, 예컨대 결정론적인 고전 역학이 비결정론적 양자붕괴로부터 어떻게 창발하는지를 설명”(Yun, 2016: 1)할 필요가 생긴다.(32)

만일 그런 설명이 성공적이라면, 사건이나 의미의 발생은 (고전역학에 의해 지배되는) 독립적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서 창발함과 동시에 행위자들 간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의 내부작용속에서 그 사건이나 의미를 이루는 요소들이 (양자역학적으로) 사건화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여기서 창발은 집단적 정체성예컨대 교차성의 경우 유색여성 정체성의 발생을 말한다면, ‘사건화는 그 정체성 형성에 관여하는 교차성의 요소들이 일정한 으로 고정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자의 주관적 정체성은 이 두 가지 역동성을 통해 형성될 것이다.

교차성 논의에서 신유물론의 의미를 필자는 거시적 상호작용에 기초한 구조주의 또는 사회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내부작용에 기초한 교차축의 비결정성으로까지 논의를 심화시킨 것이라고 본다. 거시적 상호작용과 미시적 내부작용을 구별하고 또 그 둘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은, 맥콜이 구별한 1) 불평등 범주의 유동성, 2) 불평등 범주 안의 또 다른 불평등, 3) 범주의 고정성을 모두 충족시킬 가능성을 제공한다.(32) 그것은 바로 불평등의 축(또는 매트릭스교차로’)이 고정되어 있는 동시에 고정되지 않음즉 고정된 축이 고정되지 않은 축들의 간섭 상태로부터 사건화된 것임을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33)

불평등 구조는 다양하게 (교차되거나 교차되지 않은 식의) 고정된 형태로 관찰되는 동시에 끊임없이 유동화한다. 필자는 다른 구두 발표 논문(홍찬숙, 2017)에서 고정된 형태의 구조 개념을 불평등 구조, 유동화하는 구조의 개념을 개인화로 표현하여, ‘구조-개인화의 이중성이 불평등 구조의 존재양태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맥콜이 말하듯이, 교차성 개념은 페미니즘이 사회학적 불평등 연구에 독보적으로 기여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개념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인식론적·존재론적 논쟁을 통해서, 교차성 논의는 사회학적 불평등 연구에 근본적 도전을 감행한다.

또한 여타의 사건 및 의미들과 마찬가지로 교차성 논의 자체에 대해서도 회절의 역사적 방법론 및 신유물론 관점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 유럽, 한국의 각각 다른 역사적 먝락 속에서 교차성 논의가 발현하였으며, 따라서 마땅히 각각 상이한 내용과 함축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수 있다. 조수미, 크렌쇼, 맥콜의 표현을 빌리면, 교차성 논의는 차이의 정치학이라는 원심력에 의해서만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연대또는 페미니즘 연대라는 구심력에 의해서도 수렴되는 (field)’을 구성하기 때문이다.(33)

  1. 여기서 ‘complicated’를 ‘번잡함’으로 번역한 것은 이론물리학자 최무영(2017) 교수가 강의에서 사용한 번역어를 차용한 것이다. [본문으로]
  2. 교차성 분석에서 정체성이나 차이 범주의 교차성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분화과정들 및 지배체계들을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일방적 피해자성이 아니라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하는 ‘권력의 기술들’을 분석해야 한다는 보다 탈구조주의적 주장도 있다(Dhamoon, 2011). [본문으로]
  3. 사회주의 페미니즘 조류에서 말하는 ‘이중/삼중의 억압’과 크렌쇼나 콜린스가 주장한 ‘교차성’의 핵심적 차이는 여기서처럼 흔히 ‘더하기냐 곱하기냐?’의 물음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더하기’란 기존의 여러 억압이나 차별―예컨대 계급, 성, 인종적 억압 형태―의 성격에서 아무 변화 없이 그것들이 단순히 더해짐을 의미하고, ‘곱하기’는 전혀 새로운 제3의 억압 또는 차별 양상의 ‘발현’을 의미한다. 교차적 불평등 지위의 이러한 ‘발현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초기 교차성 이론의 핵심이며, 그런 점에서 그것은 수행성이나 행위를 강조하는 구성주의 및 신유물론과 친화성을 가질 수 있었다. [본문으로]
  4. 카르빈과 에델하임은 덴마크의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맥콜 등의 구조주의적 교차성 이해를 비판한 것으로 소개하지만(Carbin and Edelheim, 2013: 5), 맥콜의 교차성 개념을 받아들인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Jaunait and Chauvin, 2012). [본문으로]
  5. 이것은 유럽에서 교차성 이론이 구성주의와 결합하는 형태로 수용되었다는 의미이지, 크렌쇼나 콜린스의 논의가 반드시 구조주의나 정체성의 정치학에 제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본문으로]
  6. 버라드의 신유물론은 양자역학의 물질 개념에 기초하여 물질과 의식의 ‘얽힘’이라는 존재론에서 출발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물질 개념에서 출발한다고 해서 모두 신유물론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신유물론이 모두 양자역학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양자역학에서 출발해서 범심론을 주장한 경우로 알렉산더 웬트(Alexander Wendt, 2015), 신유물론의 다양한 경향에 대해서는 김환석(2018) 참조 바람. [본문으로]
  7. “나는 ‘간섭’을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광의의 용어로 사용한다. 그 목적은 불평등들이 서로 강화하고, 서로 특화하거나 서로를 상쇄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이다. 그것들이 실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경험적으로 해명될 문제이다”(Verloo, 2013: 893의 각주1 참조). [본문으로]
  8. 이런 관점에서 불평등을 ‘개인화(유동화한 구조)와 불평등 구조의 상보성’ 관점에서 볼 것을 제안한 바 있다(홍찬숙, 2017). [본문으로]
  9. ‘내부작용’은 물질의 상호작용의 한 형태로서, 상호작용하는 구성원들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말한다. 경계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경계 사이’를 의 미하는 ‘상호(inter-)’가 아니라 ‘내부(intra-)’라는 접두어를 사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파동으로 행동하는 전자를 관찰할 때 일정한 관찰 장치를 설치하면 전자는 분리된 입자처럼 행동하는데, 그것은 관찰 장치와 전자 사이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에서 그들 간의 내부작용이 일어나서 생겨난 결과이다. [본문으로]
  10. 국제정치학 이론에 양자역학을 적용한 웬트(Wendt, 2015)는 여기서 버라드가 말하는 ‘절단’을 ‘파동함수의 붕괴’라고 부른다. 물리학자인 장회익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에서는 그것을 ‘상태함수의 붕괴’라고 부른다고 한다. 상태함수 또는 파동함수의 붕괴란, 물질의 움직임이 더 이상 파동함수에 의해 설명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건화’라고도 부른다. 상태함수 또는 파동함수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은, 물질의 상태변화가 결정론에 따라 설명됨을 의미한다. 반면 상태함수의 붕괴는 그러한 결정론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함을 말한다. 즉 그것은 비결정론적 붕괴과정(“indeterministic collapse processes”)(Yun, 2016)이다. 이런 붕괴과정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엄밀한 인과론보다 완화된 확률론적 인과론이 적용된다. [본문으로]
  11. 것을 버라드는 ‘물질화(mattering)’라고 부른다. 즉 우리가 관찰하는 물질들은 물질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물질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Barad, 2003; 2007). 장회익 교수는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동시에 파동이기 때문에, 파동과 입자를 대립시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더 정확한 표현은 ‘파동/상태함수 붕괴’의 구별이다. 버라드는 보어(Bohr)의 ‘입자-파동 상보성’ 학설에 기초하여 파동/입자를 대립시키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필자는 가능한 한 정확한 서술을 위해서 파동/입자가 아니라 ‘파동/분리된 입자’로 대립시켜서 표현했다. [본문으로]
  12. 반면 ‘창발’(최무영의 개념으로는 ‘떠오름’)이란 거시적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interaction)의 결과이다. 즉 그것은 “수많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물질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기인하여 구성원 하나하나와는 관계없이 전체의 집단성질이 생겨나는 현상”(최무영, 2019: 163)을 말한다. 떠오름 현상은 일반적으로 통계역학을 통해 다루는데, 통계역학은 고전역학 기반일 수도 있고 양자역학 기반일 수도 있다고 한다(최무영, 2019: 164, 2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