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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것/일기, 단상, 메모

1994년 5월 1일, 파인애플 통조림 - <중경삼림>을 보며, 메모

1994년 5월 1일, 파인애플 통조림 - <중경삼림>을 보며, 메모

내가 태어난 날에서 딱 15일이 지난 날짜에 자신의 폐기를 선고받아야만 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보았다. 자신이 태어난 달이 헤어진 애인의 이름과 같다는 건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느 미국 로맨스 영화처럼 계절의 이름일 수는 있겠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의 이름과 같은 달에 있는,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을 유통기한으로 하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하나씩 구매한다. 헤어짐을 시시한 이유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별을 수용하는 다양한 태도 중 하나쯤으로 받아들였다.

다소 엉뚱하게도 스쳐 지나가는 1994년 5월 1일자의 통조림의 이미지에서, 내가 딛고 있는 세계가 나의 생일이 누군가(들)의 죽음과 닿고야 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내가 태어나던 날조차도 셀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이 폐기를 선고받았을 것이다. 바로 지금 태어난 누군가의 탄생일도, 어떤 물건들의 유통기간 만료일과 같다. 매일, 매일. 무엇의 탄생은 무엇의 죽음과 겹친다. 죽음과 포개어지지 않을 수 있는 탄생은 없다. 태초가 실재이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모든 종말들을 인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을 수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날 죽은 것들에 관하여,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꺼져버린 것들에 관하여. 인식하지 못하거나 망각함으로써. 유통기한이 만료된 물건들을 기억하지 않는 게 어떤 문제가 되긴 어려울 테다. 지금 이 세계에 쏟아지고 폐기되는 상품의 수는 인간의 뇌로는 감히 담아낼 수도 없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죽음조차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며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망각은 기억의 소멸이고, 이는 소멸될 기억, 즉 기억될 무언가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  따라서 죽음은 먼저 인식이라도 되는 것과 인식조차 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뉜다. 우리는 죽음에 관하여 삼중으로 무지하다. 누구도 죽기 전까지는 죽음을 모른다는 것,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죽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인식한 죽음들의 대부분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  애석하게도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죽음들 대부분을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 뇌의 용량은, 불평등한 죽음과 죽음의 불평등이 자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이룬다.

시간이 흘러서도 보아주는 이가 남아있는 영화의 이미지로 박제된 이 통조림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었고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 통조림을 제외하고, 1994년 5월 1일 폐기된 셀 수 없이 많은 종말들을 우리 중 대부분은 인식할 수 없었거나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죽음의 무게는 동일하지 않다. 종말의 일자는 같아도, 불평등하게 죽고, 기억조차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영화 속에 클로즈-업 될 기회를 얻은 1994년 5월 1일의 통조림은 하나. 나머지는 가판대 속에 진열되어 카메라의 눈길에 닿지 않는, 아니 애초에 그 상점 속에 들어있지도 못한 것들. 인식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된 통조림. 따라서 기억될 여지조차 없는. 죽음 이후에도, 100주년, 200주년이 기억되는 이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말들.

극에서 점원은 '나도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런 귀찮은 일을 매번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그러나 증명과 반증이 모두 불가능한 신을 제외한다면, 이 세계에서 유통기간을 폐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누군가의 탄생에 누군가의 죽음이 포개진다. 그리고 그 죽음들은 카메라에 잡히는 단 하나의 통조림과 가치의 상실을 선고받고 상자째 버려진 통조림들, 그리고 그 화면 속에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잊힌 통조림들로 나뉜다. 참, 통조림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들도. 글을 적어나가던 나조차, "참"이라는 의성어를 앞에 놓고 언급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영화와는 그 어떤 관련도 없는 허술한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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