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젠더폭력의 관점에서 본 데이트 폭력과 미디어 재현
1.들어가며
명명되지 못한 피해들이 있었다. 어떤 것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치부되었다. 또 어떤 것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일, 그저 사적인 일, 드러내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가해는 우발적, 병리적인 개인의 일탈이고 피해는 운이 나빠서 혹은 피해자가 잘못했기에 발생한, 사회구조와는 무관한 일들이 되었다. 사회는 언어 없는 이들의 입을 오랫동안 틀어막은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왔다.
2015년 한국에서는 IS 김군, 김태훈, 장동민 사건과 ‘메르스 갤러리’, ‘남성 진보 논객 데이트 폭력 사건’ 등이 이슈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을 인지하고 명명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몰래카메라에 대한 문제제기, 소라넷 폐지 청원을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을 비판하고 사회 변화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했다. 2016년 강남역 인근에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를 여성혐오범죄, 여성살해(femicide)로 명명하며 여성혐오,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했다.
데이트 폭력에 제대로 접근하고 온전히 사유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스트 운동과 이론 속에서 발전한 젠더폭력 개념의 궤적을 살피고 그 렌즈를 통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피해경험자와 젠더폭력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입장과 관점에 섰을 때 우리는 남성중심적, 가해자 중심적 논리와 담론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언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젠더폭력 개념의 형성과 논의
1)서구사회의 ‘성폭력’ 개념 형성과 흐름
1970년대 초반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은 본격적으로 여성폭력추방운동을 전개하며 ‘성폭력’ 개념을 발전시켰다. 한국사회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여성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반성폭력운동’을 확대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을 문제화하기 시작했다.
켈리(Liz Kelly)의 정의는 서구의 여성폭력추방운동 과정에서 구성된 ‘성폭력(sexual violence)’의 개념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시사한다. 그에 따르면 ‘성폭력(sexual violence)’은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경험하는 학대, 강제, 완력의 모든 형태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된다(신상숙, 2008: 6-7). 또한 켈리(Kelly, 1988)는 ‘성폭력의 연속선’ 개념을 통하여 이성애에서의 성관계 경험이 동의 아니면 성폭력으로 이분화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압력, 강제, 그리고 힘으로 나아가는 연속선상에 있다고 설명한다(배수희·손승영, 2016: 97).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비판하고 이 지배·억압에 있어서 섹슈얼리티 1와 젠더의 ‘필연적 연관’을 강조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male violence against women)이 그 의미의 핵심을 이룬다(신상숙, 2008: 6).
캐서린 맥키넌(Mackinnon, 1987)은 섹슈얼리티가 남성 지배를 성애화하는 통제의 역학이며 남성과 여성, 젠더 정체성과 성적 쾌락을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섹슈얼리티는 남성에 의해 정의되고 여성에게 강요되며, 젠더의 의미를 구성하는, 남성 권력의 사회적 구성물이다. 성별화된 섹슈얼리티의 실천 양식은 남녀 간 위계적인 관계가 성애화되는 측면과도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성애화된 지배란 ‘남성-지배’와 ‘여성-복종’을 정상적인 원칙으로 보고 여성을 남성의 성적 자극과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젠더로 규정한다(이나영, 2014: 177). 맥키넌(MacKinnon, 1989)은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성적인 것과 폭력적인 것은 서로 혼재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여성에게 있어서 성적 친밀함과 성적 희생은 대단히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배수희·손승영, 2016: 97).
(피해 여성에 대한 – 인용자) 인터뷰를 분석해보니 신체적 폭력과 성적 폭력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확연해졌다. (···) 이론적인 수준에서 이 용어(‘성폭력sexual violence’-인용자)는 한 성에 대하여 다른 성이 범하는 폭력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한다. 이는 또한 섹슈얼리티가 일종의 권력 시스템이며 남성이 그것을 통해 여성을 통제하고자 한다는 맥키넌(1982)의 분석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Kelly, 1987: 59) (신상숙, 2008: 7)
2)한국사회의 ‘성폭력’ 개념 형성과 흐름
신상숙(2008)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개념은 1980년대 중반 여성운동의 담론에서 등장했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폭력’이라는 기표가 출현하고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폭력과 인권 침해의 양상들을 포괄하는 개념적 지위를 갖게 된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신상숙, 2008: 6). 한국사회에서 여성운동의 대항담론을 응집하는 상징의 자리에 놓여 그 의미의 변화를 겪었던 것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남성의 폭력’이 아니라 ‘성폭력’이라는 기표였다(신상숙, 2008: 8).
‘성폭력’은 ‘강간’이나 ‘구타’와 같은 행태적 묘사도 아니고, ‘남성의 폭력’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 같은 행위자의 위치를 드러내는 표현과도 다소 차이가 있다. 엄밀히 보자면 1980년대 중반에 여성운동의 담론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성폭력’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성정치학적 유산을 반영하는 ‘sexual violence’와 동일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신상숙, 2008: 6-7).
‘성’은 일반인들에게 남녀의 성관계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지만, 여성억압의 문제를 다루는 논의들은 성별의 차이를 ‘성’으로 지칭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여성운동은 주로 성별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 후자의 의미로 ‘성’을 해석하였기 때문에 ‘성폭력’은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gender-based violence)” 일체를 포괄할 만큼 넓게 확장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신상숙, 2008: 14).
1980년대 반여성폭력운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젠더 문제로 인식하긴 하였지만, 가부장적 권력이나 성별체계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차이로서의 젠더를 강조하고 결핍과 결여로 특정화되는 여성의 신체만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았다고 비판받기도 한다(이나영·허민숙,2014: 61). 또한 사회변혁론의 거시적 해석틀이 성폭력 담론을 과잉규정하게 됨으로써 피해자 ‘여성’의 대립항은 군사독재나 여타 지배세력으로 상정되었으며 ‘남성’의 주체위치나 행위성과 연관된 권력은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신상숙, 2008: 19).
1990년대 초반에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하여 다양한 여성운동단체들이 모였다. 입법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성폭력 개념을 둘러싸고 크게 두 가지의 접근이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집단은 성폭력을 젠더폭력 혹은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의했다. 이를 통해 여성과 남성 간 권력 불균형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폭력을 성폭력으로 개념 정의했고, 강간뿐만 아니라 ‘아내 폭력’, 성매매 등을 포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일군의 집단은 성폭력을 ‘성적’ 폭력으로 개념 정의했다. 이를 통해 여성에 대한 전반적 폭력보다는 강간, 성추행 등으로 의미를 제한했다(루인, 2013: 200).
여성단체들은 ‘성폭력’ 개념으로 젠더에 기반을 둔 여타의 폭력을 포괄하는 것에서 물러나 섹슈얼리티와 직접 연관되는 ‘성적인’ 폭력으로 한정하면서 입법운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좁은 의미에서의 성폭력은 “성적 자기결정권 2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로 정의되었다(신상숙, 2008).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특별법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법문에 반영하지 않았고, 오히려 성폭력의 의미를 기존의 성범죄로 고정하고 제한하는 효과를 낳게 되었다(신상숙, 2008: 30).
여성운동의 오랜 노력의 결과, 우리사회에서 성폭력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접근이나 행위’로 강간, 강제 추행, 추행, 성희롱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인식되었다(이나영, 2014:186). 하지만 (일련의 젠더폭력을 법제화하는 가시적 성과를 이뤄냈지만-인용자)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기인한 사회문제라는 것, 따라서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이 각기 개별 사건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와 통제라는 연속선상에서 발생하는 범죄라는 의미를 제도화 속에 담아내지는 못하였다(이나영·허민숙, 2014: 62).
(성폭력 개념 정의로 인해-인용자) 기존의 젠더 규범을 그대로 수용하고 오히려 강화하게 되었다는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의 경험으로 성폭력을 정의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여성들의 모든 성적 경험은 피해로, 남성들의 성적 행위는 폭력으로 해석해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다고 스스로 성찰하기 시작했다(이나영, 2014:186).
따라서 최근에는 성폭력을 젠더 권력관계가 반영된 것이자, 성적인 폭력으로서 젠더-섹슈얼리티에 기초한 폭력(gendered-sexual violence)이라 이해하기도 한다. 성폭력은 개개인간의 우연적이고 사사로운 갈등, 성차에 따라 본질적으로 다른 성적 욕망에 의해서라기보다 우리사회에 공고화된 다양한 권력관계, 사회구조적인 성차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여성의 낮은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문화적 편견(성적 편견), 젠더, 인종, 민족, 계급, 나이 등에 관한 통념 등이 긴밀하게 얽힌 결과이다(이나영, 2014: 187).
3)‘젠더(기반)폭력’에 대하여
정리해보자면 ‘젠더기반폭력(Gender Based Violence, GBV)’은 여성(성)과 남성(성) 간에 사회적으로 할당된 성적 차이와 성역할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행해지는 물리적, 성적, 언어적 폭력을 일컫는 포괄적 용어다(김양희, 2013: 1, 4). 젠더기반폭력은 1)성폭력, 성적 착취, 강요된 성매매, 인신매매, 성희롱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가해지는 폭력 행위와 2)가정폭력, 성기절단, 지참금 살인, 명예범죄, 여성혐오범죄와 같이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 3)전쟁무기로서의 강간 등 집단에 의한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등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물리적, 성적, 언어적 폭력을 포괄한다(김양희, 2013: 4). 젠더기반폭력은 위의 양상이 중첩되는, 즉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력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폭력이 동시적으로 결합되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김양희, 2013: 5).
젠더기반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동일한 용어라고 보기 어렵다. 전자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성성’과 ‘남성성’을 바탕으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통칭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령 군대 내 성폭력, 동성강간, 남아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추행 등은 남성이 젠더기반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례다. 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을 근거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을 지칭하는 용어다. 하지만 젠더기반폭력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여아이기 때문에 젠더기반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은 상당부분 중복되는 경우가 많되, 젠더기반폭력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김양희, 2013: 5).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의 문제가 젠더폭력인 이유는 여성들이 특히 많이 경험하는 폭력의 형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되는 폭력의 형태일 뿐만 아니라, 성별위계질서에 배태한 폭력이자 남성(성)의 권력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기제가 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젠더폭력은 남성성/여성성의 위계적인 (물리적, 상징적) 질서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폭력이 된다(이나영·허민숙, 2014: 82-83).
4)트랜스(젠더)페미니즘과 젠더폭력의 재사유
루인(2013)은 현재의 젠더폭력 개념이 이원젠더 자체를 비판할 때에도 여성과 남성 간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젠더폭력에서 젠더의 의미를 이원젠더라는 인식틀에 제한하는 방식은 폭력의 의미를 복잡하게 살피는 데 있어 한계로 작동한다(루인, 2013: 201). 루인의 비판과 트랜스페미니즘적 재해석은 우리가 젠더폭력을 사유함에 있어 간과했던 성별 이분법을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젠더 혐오 폭력은 섹스-젠더의 필연적 관계를 자연화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발생한다(루인, 2013: 213). 가해자는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사회적 젠더 규범을 기준 삼아 상대방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고 부합하지 않는 존재를 가해 대상으로 삼는다. 즉 트랜스젠더여서가 아니라 트랜스젠더건 아니건 상관없이 젠더 수행, 젠더 표현으로 폭력이 발생한다고 답할 수도 있다(루인, 2013: 214).
(젠더-인용자)폭력이 특정 젠더 규범을 적절히 인용하는 정도에 따라 발생한다면, 얼마나 ‘진짜’ 여성 혹은 남성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루인, 2013: 217). 태어날 때 ‘여자’로 지정받은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여성 젠더 규범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거의 항상 불안과 젠더 경합(gender dysphoria) 3을 겪는다고 한다(루인, 2013: 218).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비트랜스여성은 태어날 때 지정 받은 젠더로 살아가기 위해, 그 젠더를 자신의 젠더로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는 몸 변형을 경험한다. 이런 맥락에서 젠더 경합을 독해할 경우,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가 겪는 젠더 정체성 형성 과정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사건이 된다. 이 사회의 젠더 자체가 불안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욕망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젠더 체화 과정은 불화와 경합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고 불화와 경합을 체화하는 과정이다(루인, 2013: 220).
젠더폭력을 여성과 남성 간의 권력 위계에 따른 폭력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설명 방식은 여성-남성 간 위계구조를 밝힐 수 있지만 여전히 이원 젠더 구조에 머물러 있다. 새롭게 해석하는 젠더폭력은 한 개인이 태어났을 당시 지정받은 젠더로 평생 살아가고 그 젠더 규범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실천으로 체화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즉 젠더폭력은 각 개인에게 여성이나 남성과 같은 특정 젠더 범주를 지정하고 이렇게 지정한 젠더에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압하는 일상 실천이다(루인, 2013: 220).
이러한 재해석은 기존의 젠더폭력 개념이 지니는 젠더불평등에 대한 함의를 일상 정치에서 어떻게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그럼에도 각 개인의 신체에 특정 젠더 범주를 지정하고 각인시키는 실천으로서 젠더폭력을 사유하는 것은 실제적, 정치적, 이론적 이유로 성별 이분법의 구도를 두드러지게 차용했던 젠더폭력 개념의 지평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경험적인 현실에서 나타나는 젠더 권력의 불평등을 주시하면서도 이원젠더의 틀 안에 제약되지 않는 젠더폭력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고민해나가야 한다.
3.젠더폭력의 배경과 효과
1)젠더폭력의 배경
①불평등한 젠더질서
젠더폭력의 가장 주요한 배경은 불평등한 젠더질서다. 경험적 현실을 보다 분명한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성별 이분법을 전제하는 한계를 무릅쓴다면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이 젠더폭력의 가장 큰 요인이다. 젠더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사실상 동일시되는 것은 ‘가해자-남성과 피해자-여성’의 사례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4
섹슈얼리티에 관한 연구에서 여성주의자들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적 억압이 젠더 불평등의 주요 기제라고 보았다.(···)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와 폭력, 착취는 남성지배 체계의 주요한 도구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동등하지 않은 남녀 간 관계에서 성적 쾌락이란 결국 남성만을 위한 것이며, 성적 관계가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과 구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이나영, 2014: 173, 176).
공/사를 막론하고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적 관계가 존재하며, 남성의 성적 충동을 본능이라는 이름하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며 여성에 대한 이분화가 관습이 된 사회에서 젠더 수행은 섹슈얼리티와 분리될 수 없다. ‘여/성’들은 분리된 채 남성들의 관행/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성적 폭력과 착취의 구조 속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이성애 중심의 섹슈얼리티는 젠더에 기반한 권력관계의 표현이 되며, 여성은 남성들 간의 관계를 보증하는 교환 대상이자 남성성 확증을 위한 기표가 된다(이나영·허민숙, 2014: 75).
또한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젠더불평등한 정치-경제적 질서와 지배와 폭력의 남성성에 대한 신화가 강한 문화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지적해오기도 했다.(Heise, 1999:292) 더불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의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히려 노력해 왔다(이나영·허민숙, 2014: 69).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 개인의 불운, 혹은 개인 남성의 병리적 혹은 일탈적 행위가 아닌 사회 전반의 의식과 실천을 통해 공고화된 성차별을 그 원인으로 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59).
헤이즈(Heise, 1999)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한 사회일수록 사적 영역에서 개인 간의 폭력이 쉽게 용인되며, 여성이 상대적으로 위험에 처해질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적영역에서의 폭력에 너그러운 사회에는 공적영역에서 또한 여성이 폭력의 위험에 놓일 확률인 높은데,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소화되고 사사화되는 사회일수록 여성-젠더는 남성지배적인 성적 판타지를 실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헤이즈는 국제비교연구를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 및 젠더 이데올로기를 통해 강화되는 불평등한 젠더 질서가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가족 안의 남성 지배와 사회 속의 젠더 불평등이 긴밀히 결합되어 여성에 대한 폭력 발생률을 높인다고 주장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5).
②남성다움을 확인받기 위한 폭력, 그리고 신자유주의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성은 젠더폭력의 핵심으로 지적되었고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기 이후 남성성의 불안과 위기가 젠더폭력에 가져온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다.
남성중심의 성문화는 구조적인 젠더불평등과 폭력을 매개하면서 유지, 재생산된다. 성적이라는 것, 쾌락이라는 것이 일반 남성의 관점에서 구성되고 실제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의 사적 소유물로서의 여성의 위치가 공고화되어 있는 사회일수록 여성폭력은 남성(성) 욕망과 성적 폭력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성)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기제가 된다(이나영·허민숙, 2014: 69).
이전의 성폭력 논의들은 주로 가부장적 문화가 성폭력의 기초이며 바탕이 된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기든스(Giddens, 1996)에 의하면, 오늘날 남성 폭력의 많은 부분이 흔들리는 가부장제에 대한 불안전감과 부적합성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균열로 인해 남성의 권위가 흔들림에 따라 남성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지자 남성다움을 확인하고 인정받는 수단으로 폭력이 호출되는 것이다(배수희·손승영, 2016: 97-98).
(신자유주의 시대에-인용자) 여성은 ‘폭력사용의 동기’라는 새로운 위험을 마주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0). ‘생계부양자 남성-가정주부 여성’이라는 이성애가족 신화가 헤게모니를 쥐고 대다수의 남성들이 노동자이자 시민의 지위를 가질 수 있던 시대에는 남성이라면 모두 ‘남성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믿었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1997년을 기점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각국은 연이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겪었다. 신자유주의화가 노동시장에 가져온 불안정성은 다수의 남성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더 열악한 지위로 하락하게 만들었다. 헤게모니로 작동해오던 가족모델은 남성 생계부양자의 취약성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고 남성성은 불안정으로 요동치고 있다. 이는 남성 내부에서 계급에 따른 남성성 확인의 각본(경제력/폭력)에 차이를 만들어낸다.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는 기존의 젠더질서가 유동한다고 느껴지는 이 시기, 반동적으로 나타나는 집단적 무의식(불안)과 결합된 개인-남성의 자존감 확인 기제로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이나영·허민숙, 2014: 73). 사회에서 기대되는 젠더규범에 일치하지 않는 남성일수록 여성화에 대한 불안과 ‘나약한 여성’의 위치에 고착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증폭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강한 남성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권력관계에서 소외된 남성일수록 과도한 남성성의 물리적 발현을 통해 남자다움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커진다.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일관된 관계를 통해 확증되는 인간, 남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물리적인 ‘힘-몸’뿐인 남성일수록 증오의 대상(여성성)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수행함으로써 찢겨진 자아에 대한 봉합을 시도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폭력을 초도로우는 ‘사내다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폭력, 또는 남성성의 폭력’이라고 부른 바 있다. (···) 여성-타자에 대한 공격이자 자아에 대한 공격을 통해 남성은 반복적으로 ‘사내다움’을 확인받고자 하지만 결코 보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격성’은 단순히 개인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자아구성과정과 연관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투쟁의 장이다(이나영·허민숙, 2014: 74).
젠더는 늘 수행을 통해 보증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남성이라 할지라도 일상의 수행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때론 과잉으로 때론 결핍으로, 남성들의 젠더 수행은 시계추처럼 도달할 수 없는 ‘정상적인’ 젠더 각본을 향해 유동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4). 그러므로 남성성의 결여나 결핍 혹은 불안만으로 남성의 폭력을 설명할 때 자원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폭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오늘날 남성 폭력은 한편에서는 가부장적·남성중심적 문화에서 기인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그 문화의 균열 속에서 권력과 자원을 결핍한 남성의 불안에 의해 야기된다.
2)젠더폭력의 피해와 효과
젠더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성이 실제로 심각한 상흔(신체적 상흔, 심리적 트라우마 등)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젠더폭력을 신체적 폭력에만 한정시켜 인식하게 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는 과정, 그리고 그 폭력이 여성의 삶에 초래하는 결과가 한 사회 내에서 제대로 이해되기 어렵다(이나영·허민숙, 2014: 76). 젠더폭력이 단지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의 범주에서 이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폭력의 가장 중요한 효과인 공포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함으로써, 실제 젠더폭력이 여성들의 삶에 드리우고 있는 공포와 긴장, 그로 인한 여성통제와 규율효과가 제대로 간파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나영·허민숙, 2014: 78).
낯선 타자에 의한 폭력보다는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이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폭력에 대한 공포는 잠재적이고 상시적이다. 폭력에의 노출 가능성, 이로 인한 공포감은 실제 여성들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권인숙·이건정(2013)은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의 효과가 가부장제하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제이자, 여성의 무력감과 보호받는 자로서의 위치규정을 고정화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통제함으로써 다시금 가부장제 유지의 핵심적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증명한 바 있다(이나영·허민숙, 2014: 79).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무력감과 공격받기 쉽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취약성과 무기력으로 연상되는 공포는 여성성과 쉽게 연결되며, 여성인 것 자체가 공포로부터 분리되기 어려운 조건으로 파악되기 쉽다. 그러나 두려움에 취약한 여성을 정상화하는 이러한 담론, 여성의 비공격성에 대한 신화 자체는 남성우위적인 성별권력과 성별위계질서를 강화하고 고착화한다. 여성에 대한 공포가 기정사실화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면서도 남성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이나영·허민숙, 2014: 80).
실제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은 신체적인 폭력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폭력피해를 자초했다는 사회적 비난, 폭력을 유발한 나쁜 여성이라는 오명, 여성성이 훼손되었다는 낙인, 폭력피해의 사실성과 진실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어디서고 보호받거나 구제받을 수 없다는 절망, 신체적 취약성에 대한 각인, 이미 인식된 특정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러므로 정치경제적 지위에 젠더 간 격차가 심하고 여성답지 못한 여성에 대한 처벌을 합리화하며 가해자의 범죄배경에 관심을 보이며 두둔하는 사회 환경에서 젠더폭력에 대한 여성의 공포와 두려움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이나영·허민숙, 2014: 80).
신체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을 수도 있는 폭력, 그러나 그 상흔의 크기와 깊이가 신체적 폭력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강압적 통제’라는 개념은 폭력의 비가시적 효과를 드러내면서 젠더 분석을 다시 전면화해야 할 중요한 이유들과 비판적 통찰을 제시해 준다. 조롱과 욕설, 위협과 비난, 암묵적 강요와 경멸 섞인 침묵, 고립시키기와 무시하기의 형태로 자행되는 이러한 학대는 사법적 프레임에서 비교적 가볍고도 유사한 폭력으로 간주되거나 혹은 범죄로 정의되지 않는 학대들이다(이나영·허민숙, 2014: 80).
강압적 통제 개념은 육체적 폭력은 물론이고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폭력과 학대에까지 여성이 노출되어있다는 단순한 결론이 아닌, 여성의 일상이 타인에 의해 점거당하지 말아야 할 권리와 이유, 여성의 결정과 행동이 젠더규범과 관련되어서 과도하게 비난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그러한 비난이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인권의 문제라는 것에 대한 당위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젠더폭력이 성차별적 관행과 불평등한 젠더질서에 기인하며 이를 재생산하는 기제가 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81).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막연한 공포와 불안, 그리고 안전에의 위기감은 유달리 취약하고 심약한 한국여성의 심리적 상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마치 넓고 깊은 그물처럼 드리워져 있는 이 사회의 젠더폭력의 연쇄성과 지속성에 대한 표상이다.(이나영·허민숙, 2014: 84).
4.젠더 폭력의 미디어 재현과 담론
1)젠더 폭력의 미디어 재현
①‘잔인한 가해와 참혹한 피해’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왔으나 사소한 일로 여겨진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에 대한 사회 통념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는 그 폭력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하고 위중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었다. 따라서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의제화 과정은 ‘전형적인 희생자 구축’의 전략을 따랐다. 특수한 사회적 관심과 엄중한 국가적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잔인하고 참혹한 피해의 나열은 필수적이면서도 중요했던 것이다. 참혹한 피해자 사진을 전시하는 것, 아동 성폭력 피해가 강조되는 것, 납치되고 감금된 폭력의 희생자로서의 성매매 여성의 재현은 같은 맥락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나영·허민숙, 2014: 63).
이러한 필요와 전략은 ‘순수하고 순종적이며 여성스러운 피해여성의 이미지 구축’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산출했다. 아이와 같은 순결하고 순수한,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여성의 처참한 피해는 전폭적이고 극적인 대중의 지지와 관심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보호받을 만한 자격과 가치를 지닌 여성의 위계를 설정하였다(이나영·허민숙, 2014: 63).
데이트 폭력 재현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부터 데이트 폭력을 다루기 시작한 대중매체는 데이트 폭력 중에서도 가시적이고 치명적인 상처가 있는 신체적 폭력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며, 2010년대에는 데이트 상대에 대한 ‘살해’사건과 흉악범죄에 초점을 맞춘다(배수희·손승영, 2016: 94). 살인, 성폭행, 화학물질 테러 등의 사례는 극도로 심각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지만, 미디어가 위와 같은 극도의 폭력 사건들만 데이트 폭력으로 다룸으로써 데이트 폭력의 범주는 제약된다.
젠더폭력의 본질과 효과가 탐구되지 않고, 또 그것이 탐구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실제 무기(흉기)를 동원했는지, 그리고 그 무기를 휘둘러 실제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는지를 폭력발생과 피해발생 여부의 준거로 삼는다(이나영·허민숙, 2014: 78). 젠더폭력에 대한 이해가 협소한 사회일수록 신체적 폭력 피해만을 피해사실로 간주하고, 손쉽게 피해자를 비난하며, 피해자 자격에 대한 심문을 통해 지속적인 젠더수행을 요구하고 이를 강화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젠더폭력을 지속시킬 뿐 아니라 여성혐오를 통해 더 많은 여성의 희생을 초래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6).
여성에 대한 폭력,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고정된 인식과 편견이 만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형성이 성별규범에 의해 구축되고 이 과정에서 성차별적인 여성성과 여성역할이 재강화된다. 성별규범에 의한 피해자 전형성의 구축이란 과격하고 잔인한 형태의 물리적 폭력,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신체적 상해와 상처, 영구적 장애를 남기는 육체적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여성만을 폭력의 피해자로 인정하고 이에 연민을 느끼는 사회적 태도의 형성을 말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6).
폭력에 대한 이러한 설정과 상상은 필연적으로 순수하고 결백한 피해자의 구축으로 종결된다. 폭력유발에 어떠한 원인을 제공한 바 없는 우연적이고도 불운한 피해자만을 진정한 피해자로 여기는 인식과 태도가 확산되는 것이다. 전형적 피해자의 구축은 폭력을 협소하게 이해함으로써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초래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폭력을 덜 위중하게 다루는 사회인식과 실천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폭력에 대한 적극적이고 합법적으로 대처하려는 여성들을 젠더폭력의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함께 확산시킨다는 데에 있다(이나영·허민숙, 2014: 77).
②‘비정상적인’ 가해자와 ‘어쩔 수 없는 불운’으로서의 피해
미디어는 젠더폭력 사건을 ‘잔인한 가해와 참혹한 피해’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가해자와 마치 재난을 당한 것 같은 피해자로 재현한다. 가해자를 악마화, 병리화시켜 종별적 타자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으로 축소시키는 진단과 대책들은 기존의 차별적 젠더질서를 강화한다. 비정상적인 특수한 가해자 개인만을 강조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의식과 태도, 구조적 변화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차단하고, ‘어쩔 수 없는 불운’에 의한 예측 불가능한 피해임을 암시하게 됨으로써 여성들의 대처 불가능성, 이로 인한 무력감과 불안감을 증폭시켜 결과적으로 (남성 보호자에 대한-인용자) 의존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이나영, 2016: 4).
개인의 불운이 극대화되고 사회적 불안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된 상태가 되면 기존의 전통적 사회적 가치나 질서를 위협한다고 ‘간주’되는 조건이나 사람, 집단을 집중적으로 겨냥하여 불안의 원인을 투사하는 경향이 발생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1). 이에 따라 범죄정책은 범죄의 사회구조적 원인보다는 특정인을 특정 지대에 가둬 넣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예방책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이나영·허민숙, 2014: 72). 경제적, 정치적 공포감의 실체는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가되고 ‘잔인한 폭력에 희생된 처절하고 가엾은 피해자 이미지(아동)’는 힘없는 시민에 대한 국가감시체계의 권력을 증가시키는 알리바이가 된다. 이 가운데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라 정의했던 여성주의 분석과 주장은 비가시화된다(이나영·허민숙, 2014: 73).
주류 언론의 성폭력 재현으로 (···) 공/사 구분에 따른 공간의 안전감에 대한 통념도 재생산된다. 미디어가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설 때 (여성이) 더욱 용이하게 범죄 희생자가 된다는 기존의 가부장적 해석틀을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 젠더화된 공간과 성별이데올로기, 성폭력 간의 긴밀한 동맹관계가 확인된다(이나영, 2016: 4).
결국 성폭력 문제는 역설적으로 남성과 남성 주체 간의 정치적 [협상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로써 제시되는 정책적 대안들의 문제는 1)(피해자에 대한) 기존의 이분법을 재생산할 수 있으며 2)‘전형적’ 유형에 속하지 않는 사건과 대상을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정책의 사각지대를 유발하며 3)특수한 범죄자(유형)를 사회적으로 고립, 배제시킴으로써 성폭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재생산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불평등한 젠더관계 등 성폭력의 원인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봉쇄된다는 점이다(이나영, 2016: 4).
2)남성중심적·가해자중심적 논리와 담론
우에노 치즈코(1999)는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험 인식에 차이가 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전혀 다른 두 가지 ‘현실’이며, 강자의 ‘현실’이 지배적인 현실이 되어 약자에게 ‘상황의 정의’를 강제하게 된다고 주장한다(배수희·손승영, 2016: 95). 남성중심의 지배담론은 성폭력 상황에 대한 여성의 느낌과 감정이 어떠해야 하는 지까지도 남성의 관점으로 규정하고 있다(배수희·손승영, 2016: 109).
남성중심의 지배담론이 갖는 문제는 데이트 폭력에 관해서도 유효하다. 이성애중심적 로맨스 각본과 남성중심적 논리는 데이트 폭력을 사소화하고 로맨스화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의 젠더폭력 재현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들 매체는 남성중심적인 이성애 연애 각본에 따라 데이트 성/폭력을 ‘작업’이나 로맨스로 미화하고 왜곡한다. 대중에게 접근성과 친밀함의 정도가 큰 매체들에서 데이트 폭력을 왜곡 재현함으로써 기존의 남성중심적·가해자중심적 담론이 강화·재생산되며 이성애 연애에서의 젠더폭력을 사소한 것이나 연애 과정의 일부로 오인하게 만든다. 데이트 폭력에 관한 담론이 피해경험자가 아닌 가해자를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데이트 폭력은 더욱 비가시화되고 은폐되며 연애의 일부로 사소화된다. 이는 연애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폭력으로 언어화하고 공적으로 문제제기하며 사회에서 문제가 진지하게 다뤄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5.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의 인식
배수희·손승영(2016)은 주로 ‘데이트 성폭력’ 피해경험과 인식에 초점을 두고 분석하고 있지만, 그러한 분석은 데이트 폭력 일반에도 유효해 보인다. 데이트 폭력은 정서적·신체적·성적 폭력의 연속선상에서 복합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나, 여전히 피해 자체가 의심받거나 비가시화되며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친밀성에 기반한 특성으로 인하여 데이트 폭력은 ‘이것은 폭력이다’라고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한 폭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배수희·손승영, 2016: 95).
이성간의 연애는 사회문화적인 산물로서 주어진 ‘성 각본’에 따라 특정한 젠더역할을 수행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경합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연애 관계는 서로의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정보를 공유하는 ‘둘만의 특별함’으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일상적이고 폐쇄적이며 상호의존적인 특성을 갖는다. 성별 권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일수록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을 즉각 인식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이게 된다(배수희·손승영, 2016: 98-99).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강자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약자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배수희·손승영, 2016: 105).
데이트 성폭력은 상대 남성과의 관계와 피해 맥락을 중심으로 분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피해 당시 가지고 있었던 성과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성폭력임을 자각하는 시점의 인식체계에 대해서도 젠더관점에서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배수희·손승영, 2016: 96). 또한 연애 관계 내에서 여성의 행위는 체화된 성역할 수행과 관계 유지에 대한 욕망과의 협상을 통하여 나타난다. 이로 인해 불편한 행위를 즉각 문제화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사랑과 친밀성 속으로 폭력성이 매몰되고 감추어질 수 있다(배수희·손승영, 2016).
데이트 관계는 ‘이상화된 친밀성’이 작동하기 때문에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은 복잡하고 다양한 행위성을 보인다(배수희·손승영, 2016: 107). (···) 성적 행위 전 과정에서의 성별화되어 있는 현실과 젠더화된 의미로서 피해/가해 행위의 맥락을 살펴보지 않으면 여성이 경험하는 다수의 성폭력 피해를 설명할 수 없다(배수희·손승영, 2016: 108).
6.언어와 ‘곁’의 필요
데이트 폭력을 인식하고 분명하게 명명하며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곁’이 필요하다. 배수희(2015)는 “명명은 명명되는 것의 질과 가치를 정의하며, 명명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실체와 가치를 거부하기 때문에 명칭이 없는 것, 그에 대한 용어나 개념이 없는 것은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용어의 인지 여부에 따라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언어화하지 못하여 폭력 사실이 무화될 수도 있다. 이는 여성운동과 여성학에서 언어를 만드는 작업과 용어의 확산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배수희, 2015: 64).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서구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흐름은 그동안 은폐되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적극적으로 명명하고 가시화하고 문제화했다.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운동 역시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던 젠더폭력을 명명하고 비판했다. 2015년 이후 한국사회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슬로건이 떠오를 만큼 사회 전반에 걸쳐 사소화되고 개인화된 여성에 대한 폭력들이 문제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간헐적으로 사용되었거나 이론적 논의에 한정되어 있던 ‘데이트 폭력’이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을 드러내고 명명하기 위해 재발견되었다. ‘강남역 살해 사건’을 기점으로 ‘여성혐오범죄’, ‘여성살해(femicide)’라는 용어가 크게 가시화되었다. ‘시선강간’처럼 일상에서 수없이 겪는 불쾌한 일이지만 그저 ‘운 없는 일’로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경험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비판하기 위한 언어도 만들어졌다.
명명이 이루어짐으로써 은폐되고 비가시화되었던 폭력들은 비로소 분명한 문제이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 전반에 언어의 생성과 확산이 촉진되면서 많은 피해경험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명명하며 재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언어와 명명의 힘을 목도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고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곁’들을 하나둘 만들어내고 있다.
데이트 성폭력을 둘러싼 담론에서는 가해자 논리가 지배적 논리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행위는 모순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해를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듣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가 중요하며 ‘듣는 사람’의 반응은 피해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배수희·손승영, 2016: 117-118). 윌리엄슨(Williamson, 2010)은 여성의 경험을 듣고 이해해 줄 청중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과 맥락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의 본질과 실상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이나영·허민숙, 2014: 76).
여성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곧 ‘젠더 감수성’을 갖는 과정이며, 남성중심의 지배담론과 가해자 논리에 균열을 가하는 힘은 피해 여성의 인식 전환을 통하여 가능할 수 있었다(배수희·손승영, 2016: 118). 고립되고 언어 없는 이에게 이러한 일은 너무나 거대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언어와 ‘곁’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에 대한 저항이 1970년대부터 축적되어 오고 있는 젠더폭력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흐름과 조우했을 때 우리에게 더 많고 강한 언어와 ‘곁’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리라고 믿는다.
참고문헌
김양희, 2013,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이해와 사례 연구, 한국국제협력단
루인, 2013, 「젠더, 인식, 그리고 젠더폭력」, 《여성학논집》, 제30집 1호
배수희, 2015, 「데이트 성폭력 실태와 담론 분석」, 《젠더연구》, 제20호
배수희·손승영, 2016, 「‘데이트 성폭력’ 피해 경험과 인식의 여성주의적 분석」, 《여성학연구》, 제26권 제1호
신상숙, 2008, 「젠더, 섹슈얼리티, 폭력」, 《페미니즘연구》, 제8권 2호
이나영, 2014, 「성별화된 섹슈얼리티와 여성주의 성정치학」, 『젠더와 사회』(한국여성연구소 편)
이나영·허민숙, 2014, 「한국의 젠더폭력과 신자유주의 젠더질서」, 《가족과 문화》, 제26집 4호
이나영, 2016,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강남 ‘여성 살해’사건 관련 긴급 집담회 (미간행 발제문)
- 섹슈얼리티는 성적(sexual)이라 느끼는 감정, 욕망, 실천, 정체성, 행위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이나영, 2014:168) [본문으로]
-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문제들에 관하여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주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법-권리적 표현.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적 요소는 법학적 논의를 경유하여 여성운동의 담론으로 유입되었으며, 법제정을 위한 입법운동이 게시된 ‘이후’에야 비로소 ‘성폭력’ 개념과 결합하게 되었다.(신상숙, 2008: 23-25) [본문으로]
- 트랜스젠더의 젠더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의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에 불만, 불편, ‘불일치’를 느끼는 경험을 지칭한다.(219) [본문으로]
- 한국사회 젠더폭력의 현실과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이는 이나영허민숙(2014) 64-69를 참고할 것.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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